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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Jan 26. 2019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3

시간이 흘러 길고 길던 나의 중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날, 안동 권 씨 집안의 자랑스러울 32대손 나 권우성을 축하하기 위해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동원되었다. 엄마에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건만 역시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가족은 모름지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동고동락해야 함을 철저히 실천하고 계신 엄마에게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나의 졸업식은 그렇게 거국적 가족 모임의 자리로 거듭났다.

진정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졸업식 내내 무슨 상을 그렇게 많이 주는지 호명된 아이들이 일어나고 대표가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고, 우리들은 동원된 박수부대마냥 영혼 없는 박수를 쳤다.

“3년 성적 우수상! 3학년 2반 박무진”

난 무진이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듣고 단상으로 올라가는 무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역시 무진이가 받는구나! 무진이라면 받을 만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진이와는 몇 번의 만남과 대화가 전부였지만 이상하게 진한 여운이 남는다. 무진이를 향한 알 수 없는 친근함에 마음속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뒤에 참석한 가족들 중 무진이의 부모님도 계실 텐데 ‘엄청 좋아하시겠다.’  

순간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슬며시 박수를 멈추었다. 미리 나눠준 졸업식 안내장 수상 명단에 분명 내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셨을 텐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혹시 당신의 자랑스러운 손자 이름이 불리지 않나 고개를 한 치는 빼고 계실게 분명했다. 하, 진정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길고 긴 시상식과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 대표, 선·후배들의 인사말들이 오가고 난 후, 졸업식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중학교 생활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나왔다. 아이들은 영상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잠시 잠깐 울컥하기도 했다.

 졸업식을 행사를 마치고 정렬했던 아이들의 대열이 흩어지자 참석한 가족과 아이들이 뒤엉켜 강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마다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친구, 가족, 선생님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엄마가 원하는 포즈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교실과 복도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녀석들마다 끌어안고 추억을 저장했다. 그러다 2반 교실에서 무진이를 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무진이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뭐야, 맨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만 짓더니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녀석이었어?’

 자그마한 아주머니 한 분이 조용히 무진이를 찍고 있었다. 무진이 엄마신가 보다. 난 엄마 앞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어보았던 적이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진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한껏 장난스럽게 친근함을 표출했다.

“야, 무진아 우리도 사진 한 장 같이 찍자. 남는 건 사진뿐이자나. 빨리 찍자 찍어”

“어, 우성아. 그래. 같이 찍자. 엄마 내 친구 권우성이야. 우성아, 우리 엄마야 인사해.”

엄마 소개를 하면서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무진이의 표정을 보면서 굉장히 특별하고 귀한 사람을 소개받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무진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소란한 졸업식장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차분한 어머니의 모습과 무진이의 상기된 얼굴이 참 이색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짜식, 뭐가 저렇게 좋아!’

그때 낯익은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우성아,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한참 찾아다녔네. 이제 대충 사진 다 찍었지? 할아버지 할머니 힘들어하셔서 아빠가 차에 먼저 모시고 가셨어. 다 했으면 그만 가지?”

“어, 알았어. 나도 이제 가려고 했어. 무진아! 나, 간다. 졸업 축하하고 고등학교 가서 보자.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엄마가 반색을 하며 알은체를 하셨다.

“어머, 네가 무진이구나. 와, 무진이는 키가 엄청 크네. 아까 졸업식 때 대표로 상도 받던데? 진짜 축하한다.”

무진이는 쑥스럽게 웃으며 자기 엄마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무진이의 시선이 머문 무진이 어머니에게 한껏 상냥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셨다.

“안녕하세요. 무진이 어머니? 전 우성 엄마예요.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아, 네.”

“무진이 아까 큰 상도 받던데, 축하드려요. 좋으시겠어요.”

무진이 상 받은 얘기를 도대체 몇 번을 하시는 건지 꼭 나 들어보라고 그러시는 것 같아 괜히 눈치가 보였다.

 “무진이도 oo고등학교 됐죠? 고등학교 가서 우리 우성이랑 같은 반 되면 좋겠다. 무진아, 고등학교 가면 우리 우성이랑 친하게 지내고 집에도 놀러 오고 그래라.”

“아, 네.”

무진이 어머니는 무진이의 손을 잡으며 웃으셨다. 집에 놀러 올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닌데 엄마의 오버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기다리신다며... 얼른 가요. 무진아, 잘 가. 안녕히 가세요.”

나는 서둘러 무진이와 무진이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도 엄마는 무슨 촉을 느낀 건지 무진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셨다.

“우성이 너 무진이랑 같은 반 했던 적 있어? 엄마는 너랑 걔랑 친구인지 몰랐네. 무진이가 너랑 같이 과고 썼다가 2차에서 떨어진 애 맞지? 그래도 걘 공부를 잘하긴 잘했나 보네. 대표로 상도 받는 거 보면...”

‘엄마 기준에 과고 떨어진 애들도 급이 있나 보다. 공부 잘하는데 운이 나빠 떨어진, 상도 받는, 무진이 같은 애, 그리고 그냥 떨어진 애, 나!’

“근데 무진이네 엄마는 직장 다니시나? 무진이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데 무진이랑 그 엄마에 대한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거 같네. 어디가 아픈가? 아까 보니까 애도 어쩐지 좀 그늘이 있어 보이고 엄마도 표정이 영 밝지가 안 턴데...”.”

“우리 아들 졸업식에 뭔 남의 집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셔! 안 그러냐. 우성아? 우리 아들 중학교 3년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다. 좋아하는 소 실컷 먹고 힘내서 화이팅하자!”

아빠가 중간에 끊지 않으셨으면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진이 얘기로 드라마를 한 편 쓰셨을 거다.

암튼 몹시 피곤하고 길었던 나의 졸업식은 그렇게 끝이 났고, 그날 먹은 소는 너무 맛있었고, 나는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오늘은 국어 학원에서 끝나고 혼자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사발면에 물을 부어 놓고 핸드폰을 뒤적이다 갤러리에서 쓸데없는 사진들을 좀 정리하려고 사진 폴더를 열었다. 웃긴 짤들이나 게임 캡처 사진들을 삭제하다가 졸업식 날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찍기만 했지 제대로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다. 불과 1년도 안된 사진 속 친구들 모습이 엄청 오래된 추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다가 무진이와 찍은 사진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처음에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사진은 시꺼멓게 실루엣만 보였고, 두 번째 사진은 빛 반사가 있었는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고 뿌옇게 보였다. 다행히 마지막 한 장은 그날 본 무진이의 환한 웃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을 보니 그날 무진이와 사진을 찍으면서 역광이라 잘 안 나온다며 이쪽저쪽 방향을 바꿔 사진을 몇 장 찍었던 기억이 났다. 사진을 찍기만 했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 그때 사진이 이렇게 나왔었는지 몰랐다. 실루엣만 담겨 있는 사진, 안개처럼 뿌연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더없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무진이의 사진을 보면서 ‘왜 이렇게 사진에 현실감이 없는 거 같지? 17살짜리 얼굴에 무슨 사연이 이렇게 많아 보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사진이 사용자의 모든 기기에 있는 icloud 사진 보관함에서 삭제됩니다.’

‘사진 삭제’

‘취소’          

삭제 버튼과 취소 버튼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화면을 닫아 버렸다. 사발면 뚜껑을 열고 살짝 불은 라면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입속에 넣었다. 여지없이 기침이 났지만 면치기로 빠르게 면을 흡입했다.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 사발면 국물을 들이켠 후 유튜브 게임 영상을 틀었다. 밥을 먹는 동안 멍하니 영상을 보고 있다가 마지막 국물까지 들이켜고 군것질 거리 몇 개를 사들고 수학 학원으로 올라갔다.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1시간 정도 남았다. 아직 애들이 오지 않아 교실에 들어가 웹툰을 뒤적이다 오랜만에 라마 작가가 쓴 『내일』을 열었다.

 최근에 올라온 일곱 번째 에피소드 ‘서쪽하늘’ 16편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저승사자 특별위기관리팀 임륭구의 과거에 얽힌 이야기다. 자살로 죽은 사람은 현생에서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살했다 환생한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저승사자 륭구의 애끓는 사랑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은 살아생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연결돼 있던 인연의 끈이 끊어져서 다시 못 만난단다.

한 편 한 편 담담하게 스크롤을 올리며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울대가 콱 막히고 가슴 밑이 뻐근해 오는 것 같았다. 좀 전 보았던 사진 때문인가 보다. 우연찮게 읽은 웹툰 주인공의 이야기가 꼭 무진이와 무진이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너희 엄마 다신 못 만난다잖아, 새끼야. 왜 그랬냐.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건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렇게 죽어 버리냐.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지. 누구든 너 얘기 들어줄 사람 하나 없을까 봐. 멍청한 새끼’

만화는 만화일 뿐인데 마음 한 편이 먹먹하고 안타까웠다.     

 졸업식 날 엄마가 하신 말씀처럼 중학교 내내 한 번도 한 반을 한 적이 없던 무진이와 고등학교에 와서 한 반이 되었다. 무진이는 여전히 누구랑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도 그렇다고 혼자 외톨이로 지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래도 나름 무진이와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진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급식을 먹으러 가는 패거리들에 무진이가 끼어있었고, 점심시간에 농구를 할 때 가끔 무진이가 거기 있었다. 물론 무진이는 많은 시간을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거나 멍하니 애들 까부는 걸 보며 웃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문제집을 풀고 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문제 상황을 만들지 않았던 무진이는 죽기 며칠 전에 병규와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그 상황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애들 얘기론 병규가 마시던 우유를 무진이가 일방적으로 바닥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왜 무진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날 그 일은 병규의 걸쭉한 욕설 몇 마디와 반장과 내가 대걸레를 가져와 우유를 닦아냄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기말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아 다들 예민하고 피곤해 있던 터라 그날 일은 웃지 못할 작은 해프닝으로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무진이가 했던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무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 반 무진이의 책상 위에는 아직 꽃 한 송이가 무진이의 존재감을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 학교에서는 더 이상 무진이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시한폭탄 같은 우리들을 조심조심 다루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유명한 인성 교육 강사들을 초빙해 ‘자존감’ 이니 ‘꿈’ 이니 하는 주제로 주옥같은 말씀을 시도 때도 없이 듣게 해 주셨다. 이런 학교의 세심한 배려 덕에 우리들은 그 시간에 한껏 높아진 자존감으로 꿈을 꾸며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무진이는 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충격은 조금씩 더 옅어질 테고  ‘내 일이 아니어서, 내 가족의 슬픔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일상을 무사히 살아갈 터였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속 무진이의 사진 때문일까 무진이의 죽음이 어제 일처럼 다시 생생해졌다.

‘무진이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정말 소문대로 성적 비관으로 죽은 게 맞을까?’

 저녁 시간 내내 사진 몇 장으로 시작한 생각의 꼬리들을 잘라내듯 지혁이가 내 책상 옆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앉았다.

“야, 우성! 오늘 숙제 뭐였냐? 숙제 없었지?”

“숙제? 오늘 없을걸.”

“너희 학교도 이번 주 금요일 방학이지? 아, 드디어 방학이구나!”

“방학하면 뭐하냐? 월요일부터 방과 후 수업 때문에 학교 가는 건 똑같은데.”

“하긴 방학이래도 학원 특강이다 뭐다 놀 시간도 없긴 하다. 오늘 학원 특강 스케줄 나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여름방학은 학원 순례하다가 끝날 각이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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