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낸 털스웨터를 다시 짜는 마음으로...

졸업 사진 속 빨간 스웨터

by 장소영

oo초등학교 6학년 12반!

벌써 30년도 ~~ 씬 지난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본 적이 있다. 싸이인지 밴드인지가 한 창 유행했을 때, 친구 한 명이 올려 준 낡은 흑백 사진 장! 60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삐죽 맨 뒷줄에 서 있던 아이, 빼빼 마른 단발머리의 어린 내가 40대를 훌쩍 넘긴 지금의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참 촌스럽다. 머리 스타일하며 옷이며...

'이 옷은 뭐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꽈배기 문양의 스웨터다.

아, 기억난다. 그때 그 옷!

흑백사진 속 그 진회색의 스웨터는 실제 다홍빛이었다. 엄마가 짜주신 손뜨개 옷다.

그 당시 엄마는 스웨터뿐 아니라 양말, 벙어리장갑, 모자, 목도리, 심지어는 바지까지 짜주셨다.

특히 두 짝 잊어버리지 말라고 끈으로 연결해서 목에 걸고 다닐 수 있었던 장갑과 여러 가지 색이 크로스 된 지그재그 무늬의 통바지는 진짜 예뻤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세련된 스타일이 아니었나 싶다.


털실로 짠 통바지와 스웨터가 낡아지고, 해마다 내 키 쑥쑥 자라면, 엄마는 아무리 내가 좋아하던 옷이라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코 매듭을 찾아내 훌훌 풀어냈다.

그때마다 아깝기도 했지만 털실의 매듭들이 마술처럼 라락사라락 풀려나가는 것이 재밌기도 했다. 엄마는 풀어낸 실을 실패에 돌돌돌 감고, 나는 털실이 잘 풀릴 수 있게 옷의 양 끝을 잡아 슬슬 리듬을 타듯 손을 움직였다.

풀어낸 털실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스웨터도, 그 바지도 아니었다. 수천, 수만 번의 엇갈린 교차를 풀어내 비로소 그 무엇이 되기 전의 상태, 바로 원형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는 또 다른 무언가로 얼마든지 변신을 할 수 있게 됐단 뜻이다.

하지만 털옷을 풀어냈다고 곧바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골오골 꼬부라진 털실로 다시 뜨개질을 하는 건 게이지 맞추기도 쉽지 않고, 털실이 눌려있어 전보다 포근한 맛도 떨어진다. 다시 누군가의 만족스런 무언가로 탄생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했다. 엄마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주둥이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꼬부라진 헌 털실을 갖다 댄다. 꼬불대던 세월의 흔적이 슬며시 사라지고 이내 매끈하고 폭신한 새 털실로 복원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 완전한 준비가 된 셈이다. 코바늘, 대바늘의 엇갈리는 교차 속에 그 전과는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것이다.


한 코 한 코 정성을 들여 완성된 따스했던 털 옷도, 세월이 흐르면 그것이 낡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속절없이 자란 내 키를 탓할 필요도, 흘러버린 세월을 탓할 필요도 없다. 서로에게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풀어버리고, 다시 치수를 재고 모양을 바꿔 내 몸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시키면 된다. 물론 전과 같지 않게 뭔가 불퉁대고 꼬인 곳이 있으면, 끓어오른 주전자 주둥이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쐬 주는 수고 쯤은 각오해야 한다.


만약 지금 당장, 맞지 않다는 걸 알고 그걸 풀어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나 기특한 마음인가!

또한 마음먹었을 때 바로 그 것을 훌훌 풀어내려 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가 말이다. 훌훌 풀어낸 그것이 전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내쳐 버리지 않고, 다시 물을 끓여 수증기를 쐬 줄 생각을 했다면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당장에 버리고 새 옷을 사는 게 어쩌면 더 실용적이고 더 편리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머물렀던 따스한 온기를 기억해 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그 마음을 어찌 실용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오래전 사진 속 빨간 스웨터를 입은 나는, 마흔아홉 해를 살아오며 많은 실용과 합리의 명목 내세워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변했다는 이유로, 수증기 한 번 쐬주지 않은 채 다시 어째 볼 생각도 없이 얼마나 수많은 것들을 버려왔는지 되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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