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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30. 2020

내 똥꼬 냄새 맡을래?

나는 관종입니다만,

  일하는 엄마때문에 어린 시절 집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던  작은 아이는 유난히 겁이 많았다.집에 혼자 있을  때면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  5층 살때는 걸어올라는 계단이 무서워 1층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하면서 올라가야 했다.


"엄마,강아지 키우면 안돼?집에 강아지 있으면 혼자 있어도 안무서울거 같은데..."


강아지 한 마리 입양하는 것이 아이 한 명키우는 것과 같다는 얘길 하도 많이 들어서 쉽게 결정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명을 하나 키우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가볍지 않음을 알기에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작 강아지  마리를 가족으로 맞아 들였다. 하얀 색 말티즈! 1키로그램도  안되는 고 작고 여린 생명의 존재감이라니. 집안 가득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6년 전 어느 봄 날 '봄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반려견은 처음이라 우리 가족은 서툴고 부족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시간을 공유해야 함에 당황스럽기도 했었다.하지만 서서히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봄이는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혼자 있을 봄이가 신경쓰여 서둘러 집에 오게 되었고,밥시간을 넘길까봐 안절부절했다. 동이 조금 달라지면 어디가 아픈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동물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양쪽  뒷다리 슬개골 탈구 수술,눈의 염증수술,요로결석 수술 등'

봄이는 크고작은 병치레를 했다.동물 병원은 갈 때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봄이를 키우기  전에는 솔직히 동물이 아프다고 몇 백만원씩 들여 수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바 아니냐며 사람도 아니고 동물한테 그렇게  쓸 돈이 어딨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에는 인간과 동물이, 더군다나 가족으로 받아들인 반려 동물에게는 절대 차별이 있을 수 없단 생각이다 .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파서 축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돈은 나중 문제가 된다. 봄이가 가족에게 준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돈으로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작디작은 것일  뿐이다.



 외출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봄이는 문 앞에서 고개를 바짝들고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입구쪽 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종일 그 자리에 앉아 가족이 오길 눈빠지게 기다렸을 테지.'


그래서일까.봄이는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나갈 준비를 하면 이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나가려는 식구들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고,  애착인형을 물어띁으며 화풀이를 한다.

'또 나만 두고 어딜 가려는 거냐고, 그만 좀 나가라고...'

 애착인형이 너덜너덜해 솜을 토해내고 있다.

애착인형에게 화풀이 중인 봄이

  미안하고 짠한 마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만 대충 갈아입고 봄이와 산책을 나간다. 비가 오는 날이나 피곤하고 귀찮아 거르는 날도 종종있지만,  대개는 늦은 시간이라도 잠시 동네 공원 한바퀴 돌고 온다. 봄이와의 산책은 나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다.


봄이는 매일 가는 공원길인데도 처음 가본 길인냥 꼼꼼하게 살피고 냄새를 맡는다. 강아지 노즈워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친구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하니 충분히 냄새맡을 시간을 주며 천천히 걷는다.

공원에 도착해 비슷한 시간대에 산책나온 강아지들을 만나면 봄이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얼굴을 맞대고 살피다가 이내 똥꼬 냄새를 맡는다. 상대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나면 쿨하게 돌아서기도 하고, 계속 같이 놀기도 한다. 그런데 또 어떤 강아지한테는 만나자마자 와구와구 짖어대며 흥분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희 애가 겁도 많고, 사회성이 부족해서..."

라며 말을 흐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강아지에 대한 내 상식이 부족한 것인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주로 색깔있는 유색의 강아지에게 짖는다는 그간의 경험치로 유색 강아지를 보면 다른 길로 피해가거나 줄을 짧게 움켜잡는다.  우리 봄이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종종 텔레비젼에서 강아지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문제견들은 주인의 양육 태도에 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희안하게 사람과 닮았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에게 문제 부모가 있는 것처럼.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쉽게 흥분하고 마구 다가가 똥꼬 냄새를 맡고, 그러다 짓거나 상대 강아지가 자신의 똥꼬 냄새를 맡으려고 하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피하는 봄이.

강아지가 서로의 똥꼬 냄새를 맡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악수를 하거나 눈빛을 주고 받는 인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서로의 취를 나눔으로써 상대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심리 상태인지, 건강은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라니 우리가 보기엔 조금 민망해 보이는 그 행동이 왠지 성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봄이는 남의 똥꼬 냄새는 맡으면서 자신의 똥꼬 냄새는 맡지 못하게 슬금슬금 피한다.


"너에 대해 궁금해. 그러니까 너에 대해 좀 조사를 해야겠어. 그렇지만 나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마."

"냄새를 맡아보니 넌 내 취향이 아냐."


뭐 이런 태도인걸까.봄의 인사는 늘 그렇게 일방적이다.

그래서 난 봄이에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인형이 너무 좋은 봄이


'사회성'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사회 기준에 벗어나지 않고 성장해 가는 것, 성격이 원만하여 타인과 충돌 없이 지내며, 쉽게 친해지고 집단생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적 규범들을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 우리는 이것을 '사회성'이라고 한다.


원만하게,
타인과 충돌없이,
쉽게 친해지고,
집단 생활에 적극적으로,

 이런 것이 사회성이라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요즘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원만하지 못하고,
타인과 충동하고,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집단 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렇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봄이는 그런 나를 닮았나 보다. 일방적으로 다가갔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모습이 꼭 나를 닮았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며칠 전에 친구를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나."

난 늘 내가 주인공이 아닌 자리가 불편했고, 내가 돋보이지 않는 상황이 언짢았던 것 같다.

내 안의 관종끼, 어째냐 하나. 대놓고 앞에 나서는 것은 싫어하면서 남들이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

관종DNA가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특히 다른 사람들이 피우는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 위주로 돌아가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함께하려고 했고, 나를 압도하는 냄새에는 주눅이 들어 뒷걸음질치며 도망치려 했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때나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댔고, 큰 소리로 짖어댔다. 상대의 감정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그런 모습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괴롭다. 마음에 지옥을 품고 사는 기분이랄까.

어찌 세상이 내 위주로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당치도 않은 기준선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다.

깨지고 고꾸라지면서 점점 자존감만 낮아진다. 상처를 주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 괴롭다. 누구 때문이라고 욕을 해주고 싶은데, 욕할 대상이 '나'라서 아프다.


봄이와 산책을 하면서,

때론 운전을 하면서,

간혹 텔레비젼을 보다가고,

스스로의 생각에 침잠한다.

요즘처럼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누군가 내  민낯을 눈치챌까 봐, 누군가 내 똥꼬 냄새를 맡고 나의 못난 내면을 알아챌까봐 전전긍긍. 일그러지고 비똟어진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는 것은 몹시 아프고, 괴롭고, 힘든 일이다.


얼마 전, 나의 이기심으로 틀어졌던 관계의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전화를 한 것도 결국은 내 이기심에서이긴 하지만.


"이젠 연락하고 지내지 않아도 괜찮아졌어요."


마음에서 나를 내보냈다는 말에 그냥 묵묵히 내 얘기를 했다. 내가 만든 스스로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기에 내 똥꼬 냄새를 더 이상 맡고 싶지도 않다는 그 사람에게 내 똥꼬에서는 이런 냄새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듣고 내 똥꼬 냄새를 맡을지 말지는 이제 그 사람 몫이다.

그저,

'내 냄새를 맡고 싶다면 난 이제 준비가 되었어.'

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친구는 내 말을 이해했고,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이다.서로의 얼굴은 마주 보았지만, 이젠 서로의 똥꼬 냄새까진 궁금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똥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타이밍이 있었던 것!

  가끔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유기견이나 학대견들이 사람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봄이만 봐도 그렇다. 자기도 다른 강아지에게 영문을 알 수 없이 덤벼들고 짖으면서도,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냈던 강아지를 다시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치며 피한다. 물론 견주의 세심한 노력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번 생긴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려질 뿐. 좋은 기억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탄탄히 쌓이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사람의 관계 속에 생긴 트라우마도 그럴 수 있을까. 세심한 서로의 노력이 있다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이미 타이밍이 지나가버린거라면.

그렇게 사람의 관계는 정리되고, 다시 이어지고 하는 것인가 보다.


반백의 나이에 아직 사회성이 한참 부족한 나.

좌충우돌 뒤죽박죽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 상대의 똥꼬 냄새를 맡고 싶다면, 나의 똥꼬 냄새도 맡게 해주는 여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의 똥꼬 냄새가 남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불안해 하지도 말자.

내 똥꼬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똥꼬 냄새도 있는 것이니까. 취향 존중!


오늘은 봄이가 산책길에서 만나는 강아지에게 한 번쯤은 자신의 똥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봄이와 나의 사회성이 +1되는 날, 우리의 산책 코스를 조금 넓혀봐야겠다.

산책해서 행복한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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