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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24. 2020

변기 속에 버려진 깍두기

서로 다른 거니까 울지 마!

  폴란드 살 때 일이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역만리, 마음 붙일 곳 하나 없 하루하루를 보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학교 간 아이들을 기다리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게 다였다.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혼자 놀기를 터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무료하고 외롭게 버텨냈다. 남편과 아이들 없이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다가 집 근처 마트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우유 하나, 치즈, 소시지 하나를 살 때도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단어를 검색해 가며 제품 설명을 꼼꼼히 보고 물건을 골라야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  잘도 흘러갔다. 그렇게 매일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마트 가는 것이 내겐 아주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야채랑 고기가  엄청 저렴하네. 양 좀 봐. 이 가격에 이렇게나 많이?'


농산물과 축산물의 가격이 한국보다 많이 저렴한 것도 장보는 맛을 돋우었다.

 가지, 무, 오이, 호박뿐 아니라 각종 육류! 

 그런데, 사다 놓은 식재료로 할 줄 아는 음식은 뻔다.

 한국에서야 일한다고  집에서 음식을 잘 해먹지도 않았,  엄마가 해주신 반찬들이 넉넉했에 요리에 취미가 없던 내가 굳이 음식을 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지만 상황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다양한 음식 재료를 사들이면서 엄마 찬스를 대신할 아주 친절한 포털의 도움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요리법을 찾아 '음식 뽀개기'에 도전했다.

겁 없이 도전한 대망의 첫 음식은 바로 김치!

당장 먹을 김치가 없기도 했고, 타국에서 만난 익숙한  배추가 신기해 덜컥 몇 포기를 골라 담은  것이다. 폴란드 배추는 우리 배추 하곤 다르게 줄기 부분이 더 길쭉했다. '식재료도 그 나라 사람을 닮는 것인가, 길다 길어.' 이런 생각을 하며 양파, 파, 통마늘 등 김치  담그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사들고 왔다.

그런데,


'난감하네~~'


다른 사람들이 친절히 올려놓은 방법을 보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더니, 막상 하려고 보니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배추를 절여야 하는데 씻어서 절이는 건지 절이고 씻는 건지도 헷갈렸다. 포기김치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썰어서 담그는 막김치를 기로 했다. 그런데 또 이 배추를 어느 정도 사이즈로 썰어야 하는 건지. 배춧잎을 '만지작만지작  들었다 놨다' 주물러 터트릴 지경이었다. 어찌어찌 절이고 나서도 안절부절이었다. 이쯤이면 됐으려나 싶어 들쳐보면 덜 절여진 것 같고, 한참 후 배춧잎이 어느 정도 축 늘어진 것 같아 씻으려 줄기는 아직 쌩쌩, 뻣뻣하기만 했다. 불안한 마음에 절인 배춧 잎을 들고 계속 뜯어먹다 보니 짠 것도 같고 싱거운 것도 같고 점점 아리송하기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마냥 둘 수가 없으니 절인 배추를 씻었다.

'근데 몇 번을  씻어야 하는 거지!'

정말 뭐하나 수월한 게 없었다.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나중엔 인터넷 속 블로거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보는 글마다 방법이 조금씩 다르니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멋모르고 시작한 도전이 후회스러웠다.

배추를 절여 씻어놓고 나서보니, 지금까지 보다 더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젓갈을 넣으란다. 멸치 액젓이든, 까나리 액젓이든. 새우젓갈이든 뭐든 한 가지는 들어가야 한단다.

여기 액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지도 않은 부분이다. 젓갈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절인 배추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답게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렸다.

'멸치? 새우? 까나리? 다 바다에서 나는 거네. 그럼 바다에서 나는 비슷한 것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

 집에 있는 것 중 바다에서 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황태!

황태를 잠시 불렸다가 마른 멸치와 마늘을 넣고 푹 끓여 육수를 우려낸 다음 냉장고에 넣어 식혔다.

이것도 해산물인데 아쉬운 대로 젓갈 대신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해낸 스스로가 엄청 대견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 고비, 양념만 하면 되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춧가루, 설탕, 황태육수를 섞어  갖은양념을 만들었다. 양념에 매실 액을 넣으면 좋다는데 그것 역시 있을 리가 없다. 냉장고 속에 있는 비슷한 것을 또 찾아냈다.

'아로니아 원액'

폴란드에서 유명한 열매로 만든 아로니아 원액은 단맛보단 약간 시큼한 맛이 나지만 이걸 넣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매실액을 대신해 넣어보았다. 찍어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양념을 배추에 넣고 버무렸다. 제법 김치 냄새가 났다. 집어 먹어보니 맛도 그럴듯했다. 절인 배추부터 양념에 버무린 김치까지 너무 많이 집어 먹어 속이 더부룩했지만 통에 김치를 담아 놓고 보니,

세상 이렇게  뿌듯할 수가!

내 생에 첫 김치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다. 아침부터 신경을 썼더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오면  보여줄 생각에 입가엔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오자마자 아침부터 있었던 김치 대장정을 늘어놓았다. 젓갈 대신 황태를 생각해 낸 것과 아로니아 원액을 넣은 것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며 수다를 늘어놓았다.

"와, 정말? 대박! 그럼 오늘 먹을 수 있는 거야?"

"먹어 볼래?"

익지도 않은 김치를 한쪽 입에 넣어주었더니, "음! "

 반응이 영 시원 치않아 아쉬웠지만 익으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김치를 담가놓고 다음날 다시 열어 한쪽 집어먹어 보았다.

'세상에나, 어제  금방 해서 집어 먹을 땐 괜찮은 것 같았는데, 맛이 왜 이래!'

쓰무리 하니 완전 맛이 없었다. 이대로 버려야 하나 싶었다. 뒤늦게 위에 소금을 더  뿌려보았다. 버릴 각오를 하고 하루를 더 기다려보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김치에서 잘 익은 김치 냄새가 났다. 용기를 내 한쪽  집어 먹어보니, 새콤하니 먹을 만했다. 솔직히 맛있는 거 같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빨리 먹여보고 싶었다.

엄마의 첫 김치 시식 타임!

거룩한 엄마의 김치를 시식하도록 라면을 끓였다. 라면엔 김치가 제격이니까.

"와, 엄마! 진짜  맛있어. 며칠 전에 먹어본 김치 맞아. 맵지도 않고 정말 맛있어.'

아이들이 라면을 다 먹을 동안 앞에 바싹 붙어 앉아 몇 번이나 진짜 맛있는지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자꾸  듣고 싶었다. 맛있다는  말을... 이 나이에 배추김치 한 번 해 놓고 이렇게 좋아할 일인 건지,  참 철도 없는 주책바가지 엄마다.




  그렇게 엄마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오늘은 뭘 해줄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점점 할 줄 아는 음식들이 늘어났다. 하루는 마트에 가니 주키니 호박이 아주 싸고 신선해 보였다. 큼직하고 쪽 뻗은 것으로 2개를 사 왔다. 편수를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님이 여름이면 가끔 해주셨던 개성식 만두로 여름에 호박과 양파를 넣고 만드는 만두인데 김치나 고기만두와는 다르게 개운하고 깔끔한 맛이 아주 별미다. 워낙 만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만두는 여름에 입맛 없을 때 먹으면 제격이다.

  만두소를 만들기 전에 먼저 만두피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중력분인지 박력분인지 그런 것도 몰랐던 시절이라 마트에서 아무거나 사다 놓았던 밀가루에 달걀과 소금, 후추로 간을 해 반죽을 만들었다.

만두피 반죽을 만들어 놓고 주키니 호박을 채 썰어 소금에 절인 후, 채 썬 양파와 당근을 살짝 볶았다. 절여진 호박의 물기를 짜내고 볶은 후에 미리 볶아둔 양파와 당근을 함께 섞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개성식이 아니라 내 식대로 내 편한 대로 만든 만두피와 만두소를 넣고 폴란드  편수를 투박하게 빚었다. (밀대가 없어 만두피를 만들 때 와인 병을 씻어 밀대로 사용했다.) 큰 찜 솥도 없고, 베보자기도 없어 작은 찜솥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들러붙지 말라고) 만두를 쪄 다. 잔치 국수처럼 멸치 육수를 내어 편수를 띄워 먹어도 맛있지만, 양념간장에 바로 쪄낸 뜨끈한 만두를 찍어 먹어도 한 자리에서 후딱 한 판을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아삭한 야채의 식감과 두툼하고 쫄깃한 만두피의 식감은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은 아이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폴란드에도 편수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피에로기'라고 두툼한 만두피에 감자나 다진 고기, 치즈, 과일, 야채 등을 넣어서 찌거나 튀겨낸 음식이다. 크림소스나, 피시소스, 퐁듀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이 있다. 내가 그 당시 만든 편수의 모양은 개성식 편수보다는 투박한 폴란드 피에로기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한식의 양식화인지 양식의 한식 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적이 불분명한 편수가  먹고 싶어 진다.

한국에 와선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편수,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올여름에는 그때 생각을 하며 편수를 만들어 봐야겠다.

출처: 블로그 https://blog.naver.com/dark3979/220908315665 피에로기

  아이들이 다니던 국제 학교에는 한국인이 명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여러 국가의 아이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가기도 하고, 친구들이 가끔 싸 보내는 엄마표 김밥에도 관심들을 보이며 좋아하더란다. 심지어 바르텍이라는 아이는  김치를 아주 좋아해서 시락에 쬐끔 싸 보낸 김치를 선뜻 집어 먹곤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처음엔 학교에서 급식을 하기도 하고, 근처 음식점에서 사 먹기도 했는데, 학교 아이들이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얘기에 자주 도시락을 싸 보다. 그 아이들은 우리나라 김밥을 스시라고 불렀다. 김밥을 스시라고 부르는 것이 못마땅해 아이들에게 스시가 아니라 김밥이라고 다시 알려주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 양도 넉넉히 싸 보냈다. 참치 샐러드 김밥, 돈가스 김밥, 햄치즈 김밥, 불고기 김밥, 갈비 김밥, 연어 김밥 등등  김밥 속 재료도 점점 다양해졌다. 점점 김밥 고수가 되어가는 기분이랄까!

김밥에 김치 하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도시락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 아이들 도시락을 싸면서 하루는 배추김치 대신 레디쉬로 담가 놓은 깍두기를 곁들여 보냈다.

수분이 많은 빨간색 무는 샐러드처럼 아삭한 식감이 더해져 신선하고 맛있었다. 당연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니까 깍두기도 좋아하겠지 어 망설임 없이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한 참 후에야 들은 얘기는 너무 놀라웠고 슬펐다. 깍두기를 먹던 큰아이가  폴란드에서 있었던 깍두기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었다.

"진작 말하지 왜 말 안 했어?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 속상할까 봐 말 못 했지!"


  어느 날 큰 아이가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는데, 작은 아이가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의 손에는 아침에 싸 보낸 도시락 반찬 통이 들려 있었다고 한다.


"깍두기 변기에 버렸어. 애들이 냄새난다고 막 뭐라 하잖아."


  발효된 김치의 냄새가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다른 걸까!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작은 애 앞에서 코를 틀어막고 화를 냈다고 한다. 작은 아이는 그게 너무 창피해서 반찬통을 들고 나와 수업 시간에 몰래 변기에 버렸던 것이다.


"울지 마. 그 애들도 처음이라 그래. 우리도 그러잖아. 다르니까.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 그리고 엄마한텐 말하지 마."


  아삭하고 새콤한 깍두기에 그런 마음 아픈  추억이 있었다니, 너무 속상했다. 지금도 아이들은 깍두기를 좋아하지만 깍두기를 먹을 때마다 가끔 그때 얘기를 꺼내곤 한다.


'자기들은 냄새나는 치즈도 잘 먹으면서.... 우리가 보기엔 너희들도 이상한 음식 많거든.  뭘 애한테 그렇게 상처를 주고 그래. 아무리 애들이지만 너무하네.'


 하는 맘도 들었지만, 다르니까 그런 거라는 아이의 넓은  마음에 슬쩍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난 타지 생활이 나만 외롭고 힘든 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이 견뎌낸 시간을 난 그 좋은 경험이었다고만 생각했었다. 영어도 배우고 외국인 친구들도 생기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이다. 큰아이는  좋은 추억이 더 많았지만, 사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 집에 올 때까지 매시간 긴장했었다고 한다. 자기들도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엄마 생각해서 그 얘길 끝까지 하지 않은 두 녀석의 마음 씀씀이에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릿해 온다. 그것도 모르고 난 꽤 여러 번 깍두기를 싸주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아침에 가자마자 몰래 변기에 깍두기를 버렸다고 한다.

그냥 말하면 안 싸줬을 텐데, 속이 깊어도 너무 깊은 아이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녀석들이다.


  큰 아이 말대로 처음이니까, 잘 모른다는 이유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음식뿐이겠는가. 삶 속에서 많은 다름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낙인찍어 쉽게 손가락질하고 외면해 버리기 일쑤다. 내가 속한 그룹만, 내가 속한 사회, 문화만이 옳고 나와 다른 것은 도외시하는 태도로 어디선가 지금도 변기에 깍두기를 버리며 울고 있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어리고 미숙한 나의 편협한 사고와 행동으로 상처 받고 아파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아직도 깍두기만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는 아이에게 깍두기에 얽힌 예쁜 추억 하나 만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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