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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22. 2020

방문 앞에 놓인 사랑

밥상을 차린다는 것! 그것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자식  키워 제 갈 길 보내 놓고 늘 노심초사하는 게 부모 마음일진대, 요즘 같은 시국에 자식이 멀리 타지에 나가 있면 그 부모 마음이 오죽할까!!


"거기서 혼자 아플까 걱정돼서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데, 혹시라도 들어오다가 감염될까 봐 그것도 걱정돼 선뜻 오라고도 못하겠고, 혹시 왔다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주고 위험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것도 겁나고..."


친구의 아들은 지금 유학생활 중이다. 아무 일 없이 지내도 먼 타지 생활이 걱정일 텐데, 지금과 같은 위험상황이라면 그 마음이 어떨까 짐작이 간다. 쉬이 오랄 수도, 마냥 거기 둘 수도 없는 마음일 터!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귀국을 결정하고, 들어온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돌아온 아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먼발치서 마스크 너머로 인사만 나눴다고 한다. 아들은 서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친구는 아들이 지나간 자리를 구석구석 소독했단다. 어찌 보면 참 야박하고 정 없게 느껴질 일이다. 하지만 그간 코로나 19가 안겨준 우리의 경험치들에 의하면 이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서로를 위해서 말이다.

  친구는 아들이 오기 전부터 아이가 2주간 자가격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방에만 있어야 하니 각종 군것질거리와 소독제 등 생필품을 챙겨 넣어두고, 아이가 돌아온 후부터는 갇혀 지내는 아들을 위해 매 끼니 사식(私食) 아닌 사식(思食)을 방문 앞으로 배달했다.

정임이의 내리사랑

외국생활에 지쳤을 아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을 테지만, 현실은 꽃 쟁반에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담아 방문 앞에 놓아주는 게 다였다.

 

"잘 먹었어요. 담엔 그냥 시리얼로 주세요."


시리얼 얘기를 하는 거 보, 제 딴에는 매 번  다른 음식을 정성스레 내주시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그동안 애 혼자 잘 못해먹었을 텐데 잘 먹여야지 싶어서 정성껏 차려. 완전 싹싹 비운 거 보면 그래도 흐뭇하네. 요리 못하는 에미가 1년 치 할 요리를 아들 덕분에 기쁘게 하고 있네."


하긴 하나 있는 아들 유학 보내 놓고,  편과 둘이 먹자고 요즘처럼 매일 갖가지 반찬 하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찍어 보낸 아들의 자가격리 밥상을 보고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우리 정임이 진짜 애쓰네.'

매 끼니마다 참 예쁘게도 차려 냈다. 딴에는 영양소도 따져가면 차렸나 보다. 고기반찬에 신선한 야채와 과일까지... 언뜻 보면 꼭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기도 하다. 정임이는 오늘도 아들의 밥상을 차리고 증거사진을 남기고 있겠지! 나도 누가 저런 밥상 매일 차려주면 참 좋겠다.

요리하기 싫어하는 엄마도 주방으로  불러들이는 힘, 자식은 부모한테 그런 존재인가 보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니 '생활 속 거리두기'니 서로의  간격을  강조하게 되면서, 거리두기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닌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의 가족도 우리 가족도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대학들이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면서, 우리 집도 자취를 하던 아들 녀석 작년 겨울방학에 왔다가 올 5월까지 눌러있게 된 것이다. 내년이면 소위로 임관하고 직업군인의 길을 걷게 될 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체력단련을 위해 운동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안 하던 시집살이를 시킨다투덜면서도 오랜만에 함께하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매 끼니 현미밥에 단백질과 염분기가 적은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주었다.

아들이 와있는 동안 나 역시 정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뭘 제대로 해 먹었을까, 시켜먹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니 집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싶은 마음에 귀찮았던 마음도 곧 누그러고 만다.


  마침, 나 역시 코로나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들을 위평소 잘 안 해 먹던 음식도전해보기도 하 '냉장고 파먹기'도 시작했다. '쳐나는 콩나물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두부를 붙일까 조림을 할까!' 냉장고 속 식재료를 떠올리 메뉴가  정해지면 곧장  뚝딱뚝딱 음식을 다.


" 오랜만에 콩국 먹고 싶다. "

지나가듯 했던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냉장고 속에 넣어두었던 생콩가루를 꺼냈다. 마다 친정엄마는 노란 백태를 말려서 생콩가루를 만들어주신다. 그 생콩가루를 넣고 끓인 김치 콩국은 작은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푹 우린 멸치 육수에 김장김치 쫑쫑쫑 썰어 넣고,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솔솔  생콩가루를  뿌려 넣는다. 그러면 몽골몽골 콩가루 꽃이 피어오른다. 한 소끔 끓어오를 때 불을 줄이고 살짝 끓이면 '김치 콩국'완성!

시원한 김칫국과 고소한 콩국의 맛은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입맛을 돋운다. 애들이 얼마나 맛있게 잘 먹을까!

한 입 집어 먹고 엄지 척을 해주는  큰 아들의 모습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박을 외쳐주는 둘째의 리액션을 떠올리 바람에 저절로 손이 빨라진다.


"늙으신  부모를 위해 이렇게 하라고 하면 힘들다고 엄청 투덜댔을 거야. 자식한테 하는 건 이렇게 기쁘게 생각하면서 말이야."


정임이는 아이를 위해 밥과 반찬을 차리면서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엄마 아빠에게 내 손으로  차린 음식을 대접한 적이 언제였나 싶다. 한참 눈을 껌뻑거리며 떠올려보려 해도 언제 적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생신 때나 기념일에 기껏해야 음식점 가서 밥 한 끼 하는 게 고작 뿐, 그것으로 할 도리 다했다고 후련해했었다.


밥상도 내리사랑인지 철철히 해주시는 김치, 오이지, 고들빼기, 깻잎, 각종 반찬들 얻어다 먹을 줄  만 알았지 한 번도 해 드려 볼 생각은 안 했었다. 손 큰 엄마의  손 큰 사랑을 그저 당연하게 받고만 살았던 것이다.

아들이 딱 한번 차려준 밥상은 그렇게 좋아라 자랑 자랑해놓고, 그 좋은 걸 난 엄마 아빠를 위해 해 드려 본 적이 거의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밥상은 역시 내리사랑인가 보다.


아! 그런데 치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가 있긴 하다.

정숙이는 다치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평생 일손을 놓지 않으시는 엄마를 위해  가끔 주말이면 음식을 해가곤 한다. 부모님께 받은 거 절반도  못한다고 말은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다. 부모님께 받은 거 절반이라도 해야 하는 거라면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정숙이 치사랑

  내리사랑이건 치사랑이건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는 것! 그건 사랑이다.

 누에게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 음식을 하거나 밥상을 차리면서  화내지 마. 화가 난 상태에서 음식을 하면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도 그건 먹는 사람에게  독이  돼. 그건 안주느니만 못한거야."

뭐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무슨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얘기다.  식물을 키울 때 사랑의 말을 많이 해준 식물과 나쁜 말을 들려준 식물의 성장이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내 음식을 먹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음식을 한다는 것,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그저 귀찮은 일거리 일뿐이다. 마음 없이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말이다.

지금 누군가 당신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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