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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13. 2020

손 큰 엄마의 손 큰 사랑!

손 많이 가는 딸년을 위한 파반느

  "요즘 뭐 먹고 사니?"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의 안부가 궁금하신 엄마는 늘 뭘 먹고 사는지 물으신다. 그냥 안부가 아니라 진심 걱정이 잔뜩 묻어 있는 그 전화를 받을 때면 부러라도 밝은 목소리를 내게 된다.

프리랜서인 딸이 코로나 여파로 꽤 오랜 시간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형편이 어지간히 걱정되시나 보다. 워낙 두 분 다 '다정도 병'인 양반들이라서 괜찮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으신다.


"엄마가 반찬을 좀 해놨는데, 언제 와서 가져갈래?"

"콩나물이랑 마늘쫑을 좀 사놨는데, 아주 맛있더라. 가져가서 해 먹어봐."

"농산물 갔다가 멸치랑 오징어채를 좀 샀는데, 많이 샀으니까 갖다 먹으려면 와."

"엄마 오늘 열무김치 좀 담가봤는데... 너희도 김장 김치 다 먹지 않았어?"

"오빠가 왔다 갔는데, 엄마가 한 닭볶음탕이 맛있다고 밥을 두 공기나 먹고 갔어. 너도 좀 해줄까?"


  엄마는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매일 전화를 해서 뭘 해먹고 사는지 물으시고 자꾸 뭘 가져가라 하신다.

그런데,

 노는 딸년은 바쁜 것도 없으면서 거만하게스리 단번에 가져다 먹는 법 없다. 며칠을 튕기다가 몇 번의 전화가  온 후에야 지척에 있는 엄마네로 발걸음을 한다.


  어느 날, 엄마가 준 콩나물이 아삭하니 맛있다는 소리를 했다가, 그만 콩나물 세례를 받고 말았다. 손이 커도 너무 크신 우리 엄마, 딸 맛있다고 한 그 소리를 그냥 넘기리가 없다. 콩나물 한 박스를 아낌없이 턱~~!!

"한 박스에 삼천 원 밖에 안 해. 싸지?"

장사하는 집도 아니고 가정집에서 콩나물 한 박스라니... 그 날부터 우리 가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콩나물 국, 콩나물 무침, 콩나물 제육볶음, 콩나물 밥, 심지어는 인터넷까지 뒤져 콩나물 요리를 찾아보고 콩나물을 넣고 전도 부쳐먹고 샐러드까지 해 먹었다. 그렇게 한 동안 콩나물 지옥에 빠져 살아야 했다.

"콩나물 다 먹을 동안 다들 끼니마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먹도록!! 할머니가 생각해서 보내주신 건데 썩혀서 버릴 순 없잖아."

남편과 아이들에게 콩나물 섭식에 대한 책임감까지 부여해 주었다.

  많기는 해도 아삭한 콩나물은 솔직히 끼니마다 먹어도 맛있긴 다. 특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먹었던 엄마표 콩나물 찌개는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냄비 가득 콩나물을 씻어 담고 자박하게 물을 부은 뒤 식용유 서너 큰 술, 마늘 한 큰 술, 파 한주먹, 맛 간장 두어 큰 술, 고춧가루 두어 큰 술을 다 때려 넣고 뚜껑을 덮으면 끝이다. 파르르 끓을 때쯤 중불로 살짝 줄이고 적당히 끓여내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진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 찌개가 완성된다. 특별히 육수를 내지 않아도, 고기를 넣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훌륭한 별미다.

콩나물 찌개 (출처 naver 이미지)

  엄마에게 만드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입과 머리의 기억으로 그 맛을 얼추 비슷하게 내는 거 보면, 음식은 역시 오감과 심상이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음식을 혼자 해 먹을 때 엄마의 맛이 그리워 레시피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다.

'적당히 휘휘 한 바퀴 정도, 대충 한 움큼 집어서 훌훌, 적당히 푹 푹 푹 끓여.'

도대체 그 레시피를 듣고 적당히가 어느 정도 인지, 대충 한 움큼은 얼마만큼인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세월의 시행착오 덕분인지, 이 나이쯤 되니 적당히 훌훌~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 내 요리 레시피도 엄마를 닮아 제법 엄마 맛을 낼 줄 알게 되었다.

콩나물을 다 먹어갈 즈음,

"오늘 농산물 가서 콩나물 좀 사 왔는데...."

"읖~엄마 아빠 많이 드셔~~"

못 말리는 우리  엄마!!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엄마의 딸 사랑은 차고도 넘쳐 퇴근길 잠깐 들르기라도 할라치면 허둥지둥 냉장고를 뒤져 뭐라도 하나 더 챙겨 주시려던 분인데, 먹고 살기 빠듯한 요즘 같은 때는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는 당신 냉장고를 통째로라도 들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실 다.


"잠깐만 있어 봐 봐라. 뭐 더 줄게 없나! 고들빼기는 있니? 갓김치는? 애호박 있는데 그거 줄까? 파랑 마늘 얼려 놓은 거 있는데? 봐봐라.. 뭐 빠진 거 없나 보자."

"엄마,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또 오면 되지. 그런 거 다 있어. 그리고 그건 줘도 애들 잘 먹지도 않아."

"그럼 고기 주까? 오빠네가 사다 준 건데 너 갖다 먹어. 엄마는 또 사다 먹으면 돼. 벌써 많이 먹었어."

"아니 됐어 엄마! 오빠가 엄마 아빠 드시라고 사다 준걸 왜 내가 가져가. 그냥 엄마 아빠 두고 드셔."


말도 참 밉게 한다. 맡긴 거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얻어다 먹는 주제에 '애들이 먹네 안 먹네'하면서 그렇게 말을 해야 하냔 말이다. 괜한 퉁명을 떨며 나온 양 손에는 기어이 오빠가 낸 고기와 손질된 갈치와 조기, 불린 콩, 마늘장아찌, 애호박, 얼린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 등등등 먹거리가 가득하다. 조수석과 뒷자리까지 가득하게 먹거리를 싸들고 돌아올 때면 '참 손 많이 가는 딸년'인 것이 죄스러워 목울대가 먹먹해진다.

코로나가 끝나면 엄마는 또 어떤 이유로 딸네 냉장고를 채우시려나! 생각해보면 코로나는 그저 핑계일 뿐, 엄마는 늘둥바둥 사는 딸이 안쓰러워 내내 안절부절이셨던 것 같다.


  콩나물과의 행복한 전쟁이 끝나갈 쯤, 엄마가 갈아 탄 주요 식자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닭!!


"엄마, 이왕 사주실 거면 한우 꽃등심이나 갈비 이런 걸 주는 건 어때?"

"마트에서 닭 세일을 하길래  몇 마리 샀어. 너네 애들 잘 먹잖아."


엄마는 내 농담을 귓등으로 쳐내시곤, 꿋꿋이 계속해서 닭을 사다 주셨다. 지난번 사다 준거 아직 안 해 먹고 다고 해도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필요할 때 해동해서 해 먹으란다.

'못 말려. 정말!!'

  어린 시절 닭은 가난한 밥상에 간혹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아주 귀한 식자재였다. 엄마가 시장에서 닭 한 마리를 사 오시 날이면  어김없이 해주시던 음식이 있다.

푹 삶은 닭을 건져내 살과 뼈를 발라내고, 큰 들통에 뼈만 넣고 다시 푹푹 끓여 낸다. 그 국물에 닭고기 살과 굵은 대파 한 단을 쑹덩쑹덩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고추장, 마늘, 고사리를 넣고 다시 한번 푸욱 끓다.  대파와 고사리가 흐물흐물하니 닭고기 살과 어우러지면 매칼 하고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을 한다.

 강렬한 빨간 맛! 진하고 알싸한 국물과  흐물흐물한 대파의 단맛, 담백하게 씹히는 닭고기 살이 어우러져 밥 한 공기를 푹하고 말아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닭개장'

들통 가득 펄펄 끓고 있는 닭개장은 그 시절 우리 다섯 식구의 든든한 보양식이었다. 닭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았을 텐데, 엄마는 유독 닭개장을 많이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닭 한 마리다섯 식구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최선의 요리가 '닭개장'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그때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다.  한 마리에 살코기가 그렇게 많았었나! 우리 삼 남매의 닭개장 속에는 파보다 하얀 닭고기 살이 넉히 들어 있었다.

닭개장( 출처 naver 이미지)

  엄마가 사준 닭으로 저녁 오랜만에 닭개장을 해볼 생각으로 부지런히 닭을 삶아 닭살을 발라내고 국물을 우려 나만의 업그레이드 버전 닭개장을 만들어 보았다. 대파랑 고사리만 넣으면 건져먹을 게 너무 없을 것 같아 표고버섯, 목이버섯, 느타리버섯을 넣고, 콩나물에 닭고기도 듬뿍 넣고 계란도 풀어 넣었다. 고명으로 부추까지 곁들이면 파는 음식 못지않게 근사한 한 그릇 음식이 된다.  오랜만에 옛날 기억도 나고 그때 그 맛이 생각나 먹기도 전에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예전 그 맛이 아니었다. 재료도 훨씬 많이 들어가고 양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뭔가 2% 부족한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해준 맛이랑 비슷하다고 하는데... 내 입맛엔 영 아니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뼛국물을 덜 우렸나! 간을 덜했나! 고춧가루가 덜 들어갔나! 파가 너무 적게 들어갔나!


"근데 엄마, 할머니 닭개장보다 뭐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건더기가 너무 많아."


서야 아차 싶었다.

'과유불급'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때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맛을 낸 '엄마의 닭개장'과 최대한의 재료를 때려 넣은 '나의 닭개장'은 과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말을 절감하게 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요즘 같은 때, 배달 앱을 열어 손가락 몇 번만 누르면 정갈하게 포장된 음식을 손쉽게 받아먹을 수 있고, 가까운 편의점만 가도 반 조리 식품이 넘쳐난다.

이렇게 음식의 풍요 속에 그때 그 시절 최소한의 재료로 만든 엄마의 닭개장에 내 욕심을 한 가득 들이부었으니 그때 그 맛이 날 수가 없지.

 뭔가를 더하기보다 덜어내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과감히 뭔가를 덜어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보이게 되는, 느끼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닭개장 얘기를 하다가 별스럽게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된다.

"덜어냄의 미학"이랄까!뭐 그런...


그나저나,

"엄마, 이젠 엄마 냉장고만 덜어내지 말고, 엄마 마음속에 있는 딸 걱정도 좀 덜어내고 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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