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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Jan 17. 2021

<'場글Book'>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림책<빨간 벽/브리타 테켄트럽>



'마음 쓸 꼰대' 맘이 전하는 마음의 이야기


'생각할 꼰대' 맘이 나누는 책 이야기


경계는 기성품처럼 준비된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 내가 가장 무서운 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마치 솥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말야.                            <태고의 시간들/올가 토카르 추크 中>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세상은 나를 비껴 빠르게 흘러간다. 4차 산업혁명이니, 빅데이터니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은데... 나만 모른 채 흘러가는 세상이 두려워 소심하게 곁눈질을 해 본다. 그럴수록 속도감이 느껴져 초조해진다.

  감염병이 휩쓸고 간 세상은 이전과는 다를 거라고 한다.  마스크를 시원스레 벗어던지고 돌아갈, 예전의 일상을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막연한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나이 탓일까.


아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말이 있다.

"엄마, 그건 넘사벽이지."

넘사벽?

넘어설 수 없는 차원의 벽!

"넘사벽이 어딨어. 해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말해. 그렇게 자신이 없어?"

스스로의 한계를 짓는 말 같아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욱'하곤 한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릎을 꿇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런 뜻으로 쓴 말이 아니란 건 알지만 유별나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뾰족해진다.


 얼마 전 읽은 이노우에 히로유키의 '내가 찾던 것들은 늘 내 곁에 있었다'.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마주한  문장에서 오래도록 생각이 머물렀다.


'노력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무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력은 좋은 것이지만, 그 노력 때문에 몸이나 마음에 무리가 생긴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애먼 욕심을 부리고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해도 안 되는 일에 아등바등하다 보면 사실 지옥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무리한 노력과 도전이 없다면 과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구분이 가능할까!

'넘사벽', 그 넘을 수 없는 벽은  스스로 만든 나약함에서 오는 한계가 아닐까!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가 끝인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른 채 늘 거기 공고히 서 있는 빨간 벽돌의 높은 벽!

붉은색 넘사벽 안에 사는 많은 이들은 나름의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벽이 자신을 지켜줄 보호막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곳에 그 벽이 있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도 하고,

벽 너머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떠는 이도 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빨간 벽>의 이야기이다.

그림책 <빨간 벽> 표지

모두가 자신의 방식대로 그 벽 안의 삶 속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을 때, 영웅 스토리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작은 꼬마 생쥐다.


"난 정말 궁금해. 벽 너머에 뭐가 있을까?"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벽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꼬마 생쥐!

여러 동물들을 찾아가 벽 너머의 세상에 대해 물어보지만 이렇다 할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다.


"벽 뒤에  뭐가 있든 무슨 상관이야... 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늙은 곰의 모습이, 행복한 여우의 모습이 어딘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늘 그렇듯 튼튼하게 자리 잡은 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초지일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동물들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너무 유난스럽게 굴지 마. 평범한 게 좋은 거야."


 평범함을 미덕이라 생각하는 이런 태도가 때론 아이들을 구속하는 말이 돼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평범하고 순하게 자라주었다. 하지만 둘째 녀석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해, 한 마디로 엄마 뜻대로 요리(?)가 되지 않는 아이였다.


   어렸을 때는 '벌러덩'으로 유명했다. 말을 못 하던 아기 때 자기 뜻이 통하지 않으면 일단 '벌러덩' 아무 데나 누워 떼를 부리기 일쑤라 생긴 별명이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벌러덩'은 사라졌지만, 따박따박 하고 싶은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

그리고 궁금한 것은 또 어찌나 많은지 묻고 또 물었다.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먹으랴 말하랴 이것저것 꼬치꼬치 질문을 하랴 바빴다. 그게 귀엽기도 지만 어쩔 때는 번잡스럽게 느껴 지청구를 놓기도 했다.


"원래 그런 거야. 크면 다 저절로 알게 돼. 그리고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자. 이제 그만 좀 말하고 얼른 먹어.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이는 떨어지고 넘어지고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별나다 별나.'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둘째 아이의 그런 모습이  왜 그렇게 유별나 보이고 걱정스럽게만 보였을까 싶다.  다  저마다의 모습이 있는 것인데...

아마도 아이의 자유분방한 호기심과 나름의 도전 정신이 , 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종적으로 살아온 나에버겁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엄마 노릇한다는 핑계를 대며 '훈육'이라는 말로 아이를 평범하게 모나지 않게 키우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겠지.


그런데 자기주장이 강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아이는 대학 입시라는 벽 앞에서 넉다운이 돼 기가 꺽여버렸다.


"엄마, 난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진 것 같아요."


 뭐든 좋아하면 끝장을 보던 아이였는데....

자전거를 좋아할 때는 내내 자전거에 관한 것은 거의 모, 타는 것에서부터 부품 디자인, 조작 원리 등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흠뻑 빠져 살던 아이였는데...

축구를 좋아할 때도 축구 얘기만 하면 눈 반짝반짝 빛던 아이였는데...

자라면서 수시로 마주했던 벽쯤은 엄마의 만류에도 거뜬히 넘던 아이였는데...


지금 아이는 입시, 진학이라는 벽 앞에서 맥이 빠져 버렸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벽을 폴짝폴짝 잘도 넘던 아이 스스로 거대한 넘사벽을 쌓아 버린 것 같다. 안타깝고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어떤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까?



 모두가 벽 안의 세상에 머물러 있을 때 빨간 벽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하던 꼬마 생쥐! 그 생쥐는 파랑새의 도움으로 벽 너머의 세상을 보게 된다. 그때 파랑새가 꼬마 생쥐에게 해 주었던 말!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파랑새가 되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거기가 끝이 아니라고...넘사벽은 마음이 만드는 거라고... 넘고 보면 벽은 처음부터 거기 없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벽 너머에 세상에 가면 다시 무언가 길이 보일 거라고....




 반 백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난 넘지 못할 것 같은 수많은 넘사벽을 꾸역꾸역 넘어왔다. 때론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주저앉고 싶었던  적도 많다.


준비 기간 촉박한 강의를 맡았을 때 일이다. 강의 준비를 위해 읽어야 할 책도 많고, 다른 수업도 많아서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담당자 전화번호를 열였다 닫았다 하며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문자를 보낼까, 전화를 할까.'

'아냐 못할 게 뭐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휴, 할게 너무 많아. 지금이라도 포기해? 어쩌지.'


 이건 도저히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며칠을 괴로움 속에 시간을 보내면서도 책임감 때문에 정말 꾸역꾸역 준비를 해나갔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되자 멘탈을 틀어잡고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못할 것만 같았던 일은 무사히 끝이 났고, 일을 해치우고 나서의 해방감과 성취감은 정말 짜릿했다.


'이 맛이지.'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을 넘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맛!


 리고  되돌아보면, 그 넘사벽스스로가 만든 한계일 뿐 더 이상  넘지 못할 벽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 처음부터 벽따윈 거기  없었던 것처럼.'말이다.


크고 작은 성공의 맛, 넘사벽을 무너뜨리고 그 벽을 당당히 넘어섰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은 그다음 도전의 원동력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매 순간 마주하는 벽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아직도 새로운 벽을 대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때론 가족이, 때론 친구가, 때론 동료가, 때론 책과 경험과 나의 사유가... 파랑새가 되어준다.  


늘  생각하고 마음 쓸 꼰대 맘

넘사벽 앞에 주저앉은 님들을 위

한 마리 파랑새가  되어

책으로 마음을 전하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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