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 뇌에는 '소음 차단기'가 없다

[1부] 고장 난 게 아니라 사양이 다른 겁니다

by 신지용


1. 왜 나는 너처럼 둔감하지 못할까?


남자친구와 나는 둘 다 음악을 하고 도파민을 쫓는 예술가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가 '다른 종족'임을 확인한다. 그에게는 불편함을 무던하게 견디는 힘이 있다.


우리가 함께 쓰는 작업실 의자가 불편해도 그는 "좀 참지 뭐"라며 묵묵히 앉아 있는다. 그에게는 '새 의자를 검색하고 바꾸는 에너지'가 '엉덩이의 불편함을 참는 에너지'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농부의 뇌는 불필요한 변화보다 '안정적인 현상 유지'를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나는 엉덩이가 배기는 순간 작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로 새 의자를 결제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에게는 '불편함을 참는 것'이 가장 큰 에너지 낭비이자, 비효율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 나를 두고 '충동적이다', '물욕이 많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부정을 인정으로 바꾸고 나니 계산법이 달라졌다. 나는 안다. 내가 한번 "하고 싶다", "사고 싶다"고 꽂힌 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 내 손에 넣고야 만다는 것을. 나의 뇌는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기가 막히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 거라면, 지금 사는 게 이득이다. 고민하느라 일주일을 날리는 것보다, 지금 당장 결제해서 일주일이라도 더 빨리 편안함을 누리는 게 낫다. 어차피 나갈 돈이라면, 그 돈으로 '일주일의 시간'과 '고민하는 뇌의 에너지'를 사는 셈이다.


그러니 이것은 충동구매가 아니다. 미래의 내가 결국 저지를 일을 미리 앞당겨 처리하는 '시간 효율화 전략'이다. 명언도 있지 않은가.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고.



2. 내 뇌에는 '배경음'이 없다 : 감각의 차이


물론 농부인 그에게 이런 나의 '속도전'은 그저 유별난 성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건 단순히 소비 패턴뿐만이 아니다. 내가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와 나의 '감각' 자체가 다르게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수면 시간'이다.


나는 잘 때 완벽한 어둠과 진공 상태에 가까운 정적이 필요하다. 아주 미세한 공유기 불빛이나 거실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려도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못 잔다. 뇌가 그 작은 자극을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다. 그는 일정한 '백색 소음'이 있어야 잠이 온다고 한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심지어 우르르 쾅쾅거리는 천둥 번개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꿀잠을 잔다. 불빛도 마찬가지다. 나는 칠흑 같은 암흑을 원하지만, 그는 "너무 캄캄하면 이상하다"며 은은한 무드등을 켜둔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뇌과학에서는 이를 외부 자극을 걸러내는 '감각 게이팅(Sensory Gating)'의 차이로 설명한다. 남자친구 같은 일반인(농부)의 뇌는 '검문소'가 튼튼해서 불필요한 시계 초침 소리나 냉장고 소음 따위는 가볍게 '음소거(Mute)' 해버린다.


하지만 사냥꾼인 내 뇌는 다르다. 내 뇌의 검문소는 문짝이 뜯겨 나가 있다. 내 뇌에는 '배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 시계의 째깍거림, 윗집의 발소리, 원치 않는 음악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중요한 '메인 멜로디'와 똑같은 볼륨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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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트랙의 페이더가 Max라면 : 과부하의 고통


작곡가인 나에게 이것은 모든 악기 트랙의 볼륨 페이더(Fader)가 Max로 올려져 있는 상태와 같다. 남들은 "그냥 안 들으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나는 그 소리들을 '안 듣는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뇌가 비자발적으로 모든 소리 정보를 처리하느라 과부하가 걸리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플 수밖에.


내가 유별난 게 아니다. 단지 내 뇌의 오디오 믹서가 'All Pass(모두 통과)' 상태로 세팅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그 모든 스위치를 물리적으로 끌 수 있는 '완벽한 정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4. 결함이 아니라 다른 종족일 뿐


나는 평생 이 예민함이 불편했다.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무던하게 넘기지 못할까? 왜 내 뇌는 작은 자극 하나도 걸러내지 못하고 과부하가 걸릴까?'


나의 예민함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명백한 '결함'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고장 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른 종족'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죄책감을 씻어준 한 문장,

"당신은 농부가 아니라 사냥꾼입니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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