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고장 난 게 아니라 사양이 다른 겁니다 (기질 편)
나를 구원한 문장은 심리학자 톰 하트만(Thom Hartmann)의 '사냥꾼 vs 농부 가설'이었다. 그는 ADHD 성향을 질병이 아닌, 인류의 생존 전략 중 하나로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려보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농부가 아닌 사냥꾼이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몇 달이고 기다려야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밭을 갈고, 가뭄과 홍수를 견디며, 반복되는 지루함을 참아내는 '인내심'과 '꾸준함'이 최고의 미덕이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 사회(학교, 회사)는 철저하게 이 농부들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사냥꾼은 다르다. 그들은 울창한 숲속에서 생존해야 했다. 그들에게 '꾸준함'이나 '한곳에 집중하는 능력'은 미덕이 아니라 죽음을 의미했다. 오직 농사만 생각하며 땅만 보고 걷는 사냥꾼은 뒤에서 덮치는 호랑이를 보지 못해 잡아먹힌다.
사냥꾼은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한다(산만함). 어디선가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즉각적으로 고개를 돌려야 하고(충동성), 저것이 토끼인지 호랑이인지 0.1초 만에 판단해서 창을 던지거나 도망쳐야 한다(과잉행동).
남들이 "예민하다"고 핀잔주는 그 감각이, 숲속에서는 부족의 목숨을 살리는 '초고성능 생존 레이더'였다.
사람들은 ADHD가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틀렸다.
우리는 집중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 동시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농부의 뇌는 '중요한 것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자극을 차단하는 필터가 있다. 하지만 사냥꾼인 나의 뇌는 그 필터가 없다. 맹수의 발소리, 바람의 방향, 새의 울음소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뇌가 24시간 풀가동 중이다.
그래서 나는 피곤하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선생님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형광등의 깜빡임, 짝꿍이 다리 떠는 진동, 복도 발자국 소리가 전부 '메인 뉴스'처럼 내 뇌로 쏟아져 들어온다.
남들은 그걸 '산만함'이라 불렀지만, 나는 억울했다. 나는 딴짓을 한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숲 전체를 스캔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나의 뇌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사냥꾼에게 '산만함'은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맹수를 피하고 사냥감을 낚아채기 위해, '안정성'을 희생하고 '민감성'을 극대화한 고성능 사양이었을 뿐이다.
� 사냥꾼(ADHD) vs 농부(일반인) 특징 비교
이 사냥꾼의 본능을 이해하지 못한 학교 시스템에서, 자극이 차단된 교실은 나에게 수면실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늘 '문제아' 아니면 '아픈 아이'였다.
중3 때 담임 선생님은 졸업 후에도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걱정하셨다.
"OO아, 비염 수술 꼭 해라. 네가 코가 막혀서 뇌에 산소가 안 가니까 수업 시간에 맨날 자는 거야."
과학 선생님은 내 얼굴을 졸업식 때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으니, 선생님들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억울했다. 물론 나에게 비염이 있긴 했다. 하지만 코가 좀 막힌다고 해서 사람이 기절하듯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나는 내 졸음의 원인도 모른 채, 그저 '잠이 많은 아이'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진짜 위기감을 느낀 건 20대 초중반, 사회에 던져지고 나서였다.
내 친한 친구는 몇 시간을 일해도 눈이 항상 똘망똘망했다. 녀석은 늘 의욕이 넘쳤고 실행력도 좋았다. 반면 나는 기상 후 딱 3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방전된 장난감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항상 내 눈이 풀려있다고 했다.
'나는 왜 쟤처럼 에너지가 없을까? 아, 내가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하구나.'
나는 뇌가 아닌 몸을 탓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장(PT)에 가서 무거운 쇠질을 하고, 체력을 키우겠다고 복싱 도장까지 다녔다. 근육이 붙으면 그 지긋지긋한 졸음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단련해도, 책상 앞에만 앉으면 내 뇌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것은 근육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진짜 범인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ADHD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약이 뇌에 전기를 공급하자, 내 세상은 180도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까지 눈이 똘망똘망했다. 친구들이 말하던 "개운하다"는 감각이, "의욕이 생긴다"는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나를 잠재운 진짜 범인은 콧물도, 저질 체력도 아니었다. 꽉 막혀 있던 건 코가 아니라, 꺼져버린 '뇌의 각성 회로(저각성)'였다.
선생님, 저 비염 수술 안 해도 됐었어요. 콘서타가 산소 호흡기였거든요.
나의 뇌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단지 '목적'이 달랐을 뿐이다.
신은 나에게 '평온한 일상'을 견디는 능력을 뺏어간 대신, 맹수를 피하고 사냥감을 낚아채기 위한 '폭발적인 순발력'과 '미친 감각'을 주었다.
비극은 단 하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맹수가 우글거리는 긴박한 정글이 아니라, 칸막이로 막힌 조용한 사무실이라는 것.
내 유전자는 "저기 덤불이 움직였어! 뛰어!"라고 외치는데, 세상은 "가만히 앉아서 엑셀 칸이나 채워"라고 말한다. 내가 겪은 고통은 내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야생의 유전자'와 '문명의 시스템' 사이의 불화였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상황 파악이 빠르고, 위기에 강하고, 남들이 못 보는 길을 뚫어내는 나의 기질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타이밍뿐이다.
나는 농경 사회에 불시착한 사냥꾼이다.
나는 밭을 갈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빌딩 숲이라는 새로운 정글에서 나만의 방식대로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나의 산만함은 호기심이 되고, 나의 충동성은 추진력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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