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복과 발차기 : 기질의 차이

[1부] 고장 난 게 아니라 사양이 다른 겁니다 (기질 편)

by 신지용


1. 내복과 회초리 : 순응형 농부 vs 반항형 사냥꾼


어린 시절, 나와 오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처방은 똑같았다.


"둘 다 나가!"


한겨울 복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내복 차림으로 쫓겨난 두 아이. 그때 오빠와 나의 행동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얼마나 다른 종족인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비교 실험이었다.


오빠는 현관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얌전하고 처량하게. 속으론 억울했겠지만, 겉으로는 반성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묵묵히 부모님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순응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미친 듯이 발로 차고, 문 열라고 동네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문 열어! 잘못했다고! 추워!!"


오빠가 "야, 창피하니까 조용히 좀 해"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공포나 반성보다는 분노가 앞섰고, 내 안의 에너지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폭발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한, '충동 조절 버튼'이 고장 난 아이였으니까.


심지어 엄마가 문을 살짝 열고 "잘못했다고 빌래? 아니면 나갈래?"라고 최후통첩을 날려도,

오빠는 1초 만에 "잘못했어요" 하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갈 때, 나는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버텼다.


그럴 때면 나는 한두 층 위로 올라가 계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아예 놀이터로 나가버렸다. 부모님이 나를 찾아다니며 걱정하게 만들려는 나름의 시위이자 복수였다.

하지만 최근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하나. 부모님은 내가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나는 추위에 떨며 '지금쯤 걱정하고 있겠지?'라고 김칫국을 마셨지만, 정작 부모님은 평온하셨던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차이는 '사랑의 매(회초리)' 앞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오빠는 종아리를 걷고 엄살 한 번 없이 묵묵히 매를 맞았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회초리를 들어 올리기만 해도, 아직 내 종아리에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뼈가 부러진 사람처럼 울고불고 난리 부르스를 쳤다.


"으아앙! 아파요! 사람 살려!!"


나의 그 기막힌 '선(先) 오열, 후(後) 방어' 전략. 남들은 엄살이라 했지만, 사실 내 뇌에서는 위협을 감지하는 순간,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미처 작동하기도 전에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급발진을 일으킨 것이다.

나의 헐리우드 액션에 질려버린 아빠는, 결국 나를 세 대 때릴 거 한 대밖에 못 때리고 혀를 내두르셨다.


"쟤는... 도저히 못 때리겠다."


부모님에게 오빠는 '손이 덜 가는 무던한 아이'였지만, 나는 감정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시한폭탄'이자, 본능에 충실한 '야생의 아이'였다. (사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도 그런 난리법석이 일상이었으니까.)




2. 보행기를 탈출한 아기 짐승 : 자극 추구


사실 이런 극과 극의 성향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영유아기 때부터 이미 완성형이었다고 한다.

오빠는 보행기에 태워두면 그 안에서 얌전히 놀았다. 할머니가 "가위 만지지 마라" 하면 절대 안 만지는, 할머니가 한의원에서 한 시간 넘게 침을 맞을 때도, 오빠는 옆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보행기에 가둬두면 문이 열릴 때까지 꽝꽝 들이받고 소리를 질러대서, 결국 보행기를 거의 못 탔다.


금지? 나에게 '금지'는 곧 '도전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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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티비 앞 코까지 다가가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가지 말라는 길을 기어이 탐험하고, 만지지 말라는 물건을 조물딱거렸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혀를 차셨다.


"어유, 저 청개구리."


하지만 억울하다. 내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원했고, 호기심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물리적으로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나는 '자극 추구(Novelty Seeking)' 성향을 강하게 타고난 유전자였다. 나의 뇌는 '도파민 수용체(DRD4)'가 남들보다 둔하게 설계되어 있다. 쉽게 말해, '도파민을 담는 그릇에 구멍이 뚫린 상태'인 것이다. 남들에겐 평온한 일상이 나에게는 뇌의 시동이 꺼지는 '지루함'이자 '고통'이다.




3. 알약과의 레슬링 : 감각 방어


나의 예민함은 '생존 본능'과 직결되어 있었다. 특히 무언가를 삼키는 감각(촉각)에 극도로 예민했는데, 알약을 먹는 건 내게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살기 위해 영양제에 약까지 한 주먹씩 털어 넣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땐 작은 알약 하나가 식도의 숨통을 조여오는 돌멩이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장소는 학교 보건실이었다. 당시 엄마는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감기에 걸린 나에게 약을 먹여야 하는데, 내가 죽어도 안 먹겠다고 버티니 점심시간에 나를 보건실로 끌고 가신 것이다.


"선생님, 죄송해요. 얘 약 좀 먹이고 갈게요."


엄마는 보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더니, 보건실 침대에 나를 눕히고 흡사 레슬링 기술을 걸듯 내 팔다리를 제압했다. 엄마 입장에선 딸을 낫게 하려는 절박한 사랑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선 목구멍을 막으려는 암살 시도였다.


엄마는 억지로 내 입을 벌리고 알약을 밀어 넣었다. 혀끝에 닿는 알약의 까끌까끌한 감촉,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그 역한 이물감. 내 뇌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위험하다! 뱉어라!"


그 상황이라면 억지로라도 삼킬 법도 한데, 나의 청개구리 심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눕혀진 상태에서 기어코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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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엄마의 얼굴, 혹은 허공 어딘가로 날아갔다. 보통의 엄마라면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을 상황. 하지만 엄마는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매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못 삼키겠으면, 이렇게라도 먹어."


엄마는 그 자리에서 알약을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루로 만들고는, 물에 개어 내 입에 넣어주셨다. 그것은 최악의 타협이었다. 코팅된 알약 속에 숨어있던 날것의 쓴맛이 혀 전체를 강타했고, 물에 덜 녹은 가루들이 모래알처럼 입안을 굴러다녔다. 나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그 쓰디쓴 반죽을 울며 삼켜야 했다. 차라리 눈 딱 감고 알약을 삼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더 혹독한 처방이었다.


그 처절한 저항은 뇌가 보낸 '감각 방어(Sensory Defensiveness)' 기제였다. 엄마가 정성껏 갈아준 알약은 명백한 '사랑'이었으나, 내 예민한 신경에는 견딜 수 없는 '고문'으로 입력되었다.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서로 다른 감각의 주파수를 가진 채 각자의 행성에서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4. 인간 지각 알림이 : 거리가 가까울수록 늦는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은 베란다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일 정도로 코앞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내가 1등으로 등교해야 했지만, 나는 전교생 중 가장 유명한 지각 대장이었다. 등굣길에는 재미있는 공식이 하나 있었다.


"저기 000이 나타났다 = 지금 뛰지 않으면 지각이다."


친구들은 등교하다가 멀리서 내가 보이면, 시계도 보지 않고 비명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내가 등교길에 보인다는 건, 이미 지각 커트라인이 2분도 채 안 남았다는 확실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여유로웠다.


"어? 얘네 왜 뛰지? 아직 시간 괜찮은데."


가까울수록 더 늦는다는 이 아이러니. 그것은 고장 난 내 '시간맹(Time Blindness)'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일반인의 뇌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감각'으로 느낀다. 하지만 시간맹인 나의 뇌는 '지금(Now)'과 '지금 아님(Not Now)'이라는 두 가지 시간 대밖에 없다. 학교가 눈앞에 보인다는 강력한 시각 정보(물리적 근접성)는 내 뇌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목적지가 바로 앞이네? 그럼 시간은 충분해!"라고 뇌가 '미래 근시'를 일으키는 것이다. 실제로는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숨겨진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의 뇌는 그 과정을 계산에서 통째로 삭제해 버린다. 그래서 내 뇌 속의 시계는 항상 현실보다 10분쯤 느리게 갈 수밖에 없었다.




5. 기질은 죄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유별난 아이', '말 안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모든 것은 '높은 호기심'과 '민감한 감각'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보행기를 탈출하던 그 힘으로 나는 지금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고, 알약을 뱉어내던 그 예민함으로 섬세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때의 부모님은 나를 키우느라 등골이 휘셨겠지만, (엄마, 아빠 죄송해요 사랑해요!) 덕분에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명력'을 가진 야생의 어른으로 자라났다.


한겨울 내복 차림으로 현관문을 걷어차던 그 깡다구.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험난한 정글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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