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울타리를 친 방목 : 엄마라는 엔지니어

2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중생활 (환경 편)

by 신지용


1. 리모컨을 쥐여주지 않은 엄마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었지만, 나를 치마폭에 싸서 키우지 않았다. 엄마의 교육 철학은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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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이 아니라,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 방목한다."


학교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 때도 달랐다. 보통의 선생님 엄마들은 아이의 스케줄을 꿰뚫고 있는 관제탑이었다.

"지금 3시다. 학원 차 올 시간이니까 빨리 나가라." "가방에 숙제 챙겼니?"

그들은 밥상을 차려 입까지 떠먹여 주는 친절한 매니저였다.


하지만 엄마는 쿨했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의 매니저를 자처할 때, 엄마는 정말로 내 스케줄을 외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셨다.

"오늘 학원 무슨 요일이지? 몇 시에 가지?"


엄마는 '학원 등록'이라는 울타리만 쳐주었을 뿐, 그 안에서 움직이는 '시간 통제의 권한'은 철저하게 나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엄마가 스케줄을 챙겨주지 않으니,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학원을 빼먹게 되고, 그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던 친구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 떠먹여 주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수동형 인간'이 되었다. 반면, 나는 비록 덜렁대고 실수는 잦았을지언정, 내 시간과 일정을 스스로 장악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야생마 같던 내가 지금 이 복잡한 프리랜서의 삶을 스스로 경영해 나갈 수 있는 건, 그때 엄마가 나에게 '리모컨'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2. 급식소가 불타던 날


이러한 엄마의 '방목형 양육' 스타일은 학원 스케줄을 넘어, 가장 본능적인 영역인 '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급식소 화재로 한동안 도시락을 싸 다녀야 했다. 공교롭게도 내 단짝 친구의 어머니도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 친구는 쪼르르 엄마 연구실로 달려가 알뜰살뜰 챙김을 받으며 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우리 엄마도 바로 근처 교무실에 계셨지만,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 또한 굳이 엄마를 찾아가지 않았다. 엄마가 냉정해서가 아니었다. 엄마는 '공과 사'가 확실한 분이었다. 선생님들이 모여 식사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에 어린 딸을 데려와 밥을 먹이는 게 동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게 훨씬 편했다. 엄마가 있는 교무실에 가면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각 잡고' 얌전히 밥을 먹어야 했다. 숨이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교실은 달랐다.


"야, 너 반찬 뭐야? 소시지네? 나 하나만!"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반찬을 뺏어 먹고 나눠 먹는 그 시간이 나에겐 뷔페보다 즐거웠다.

오히려 엄마의 챙김을 받는 친구가 답답해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엄마의 울타리(교무실) 밖에서 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훨씬 자유롭고 재밌었으니까.


엄마는 나를 끼고돌지 않았고, 나 역시 엄마 치마폭보다는 친구들과의 놀이터를 택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 '쿨한 거리두기'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엄마 없이도 밥 잘 먹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 만렙의 야생마'로 자랄 수 있었다. 엄마의 배려(혹은 방목)가 나의 독립심을 키운 최고의 영양제였던 셈이다.




3. 하기 싫으면 관둬 (선택의 무게)


엄마는 내 변덕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선택의 무게'를 가르쳤다.


해금에 소질이 보이자 엄마는 입시를 권유하셨다. 단, 조건은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그 말에 내가 '그럴 자신은 없다'며 쭈뼛거리자, 엄마는 그 길로 바로 레슨을 끊어버리셨다. 설득이나 회유 따위는 없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보다 진도가 빨랐고 재능도 있었지만, 지루해하며 연습을 게을리하자 가차 없이 학원을 끊겼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단, 네 결정에 후회하지 마라."


처음엔 쾌재를 불렀다. 지루한 반복 연습에서 해방되었으니까. 나는 '악보 따위 없어도 느낌대로 치면 그만이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피아노는 치지만 악보는 전혀 못 보는 '음악적 문맹'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후로 몇 년간, 내 머릿속에는 멜로디가 둥둥 떠다니는데 그걸 기록할 방법이 없어 허공에 날려 보내야만 했다. 마치 말을 할 줄 알지만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처럼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제야 엄마의 말이 뼈에 사무쳤다.

'아, 그때 엄마가 끊은 건 학원비가 아니라 나의 오만함이었구나.’


결국 그 '결핍'과 '후회'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한참 뒤, 나는 자존심을 굽히고 제 발로 찾아가 엄마에게 말했다.

"저... 다시 피아노 치고 싶어요. 악보 보는 법 배우고 싶어요."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 등쌀에 떠밀려 칠 때는 죽기보다 싫던 악보 공부가, 내가 필요해서 덤벼드니 스펀지처럼 흡수되었다. 1년 걸릴 진도를 순식간에 떼버렸다.

이것은 ADHD의 핵심 특성인 '흥미 기반 신경계(Interest-Based Nervous System)'가 제대로 작동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시키면 안 한다. 꽂혀야 한다."

엄마는 이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엄마는 냉정한 투자자였다. '열정'이라는 담보가 확실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투자를 회수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배웠다. 내 욕망을 증명하지 못하면 지원은 끊긴다는 것을. 그것은 ADHD인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생존 경제학이었다.


엄마는 나를 끼고돌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게 만들었다. 그 차가울 정도로 단단한 훈육이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나에게 '절제하는 법'과 '책임감'이라는 브레이크를 달아주었다.


지금 내가 마감을 지키는 작곡가이자, 개인사업자의 대표로 살 수 있는 건, 8할이 그때 엄마가 쳐준 단단한 울타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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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 토막 상식] 중요함 vs 흥미로움


ADHD 분야의 권위자 윌리엄 도드슨(William Dodson)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뇌는 '중요함'과 '결과'에 의해 움직인다고 합니다. 학교 숙제니까, 안 하면 혼나니까, 돈을 주니까 하는 것이죠.


하지만 ADHD의 뇌는 다릅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중요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뇌 스위치는 오직 4가지 자극에만 반응하여 켜집니다.


1. 흥미 (Interest): 재미있는가? 2. 도전 (Challenge): 어려운가? 3. 새로움 (Novelty): 신기한가? 4. 긴박함 (Urgency): 지금 당장 해야 하는가? (ICNU)


남들이 볼 땐 게을러 보이지만, 사실은 뇌의 시동 키가 다른 것뿐입니다. 우리는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할 때 비로소 천재성을 발휘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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