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중생활 (환경 편)
나의 어머니는 선생님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집에서의 엄마는 나에게 삶의 리모컨을 넘겨주는 쿨한 '방목형'이었지만,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의 엄마는 달랐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권 선생님'이었고, 나는 학교 어디를 가도 24시간 CCTV 아래 놓인 기분이었다.
"선생님 딸이 왜 저래?"라는 무언의 압박감.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는 그 답답함은 역설적으로 내 안의 '청개구리 스위치'를 눌렀다.
그 결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교장실에 밥 먹듯이 불려 가는 문제아면서, 동시에 전교 부반장이자 시험 올백을 맞는 우등생. 세상은 나를 '모범생'이나 '양아치' 중 하나로 정의하고 싶어 했지만, 슬프게도 둘 다 나였다.
이것은 고지능 ADHD, 일명 '2e(Twice-exceptional)'들이 겪는 전형적인 '비동기적 발달'의 비극이었다. 머리는 복잡한 수식을 푸는 어른인데,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마음의 브레이크는 세 살짜리 유아용 자전거였던 셈이다. 나의 하드웨어는 서로 다른 사양의 부품들이 삐걱거리며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2e'는 영재성과 장애를 동시에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교육학/심리학 용어입니다. 지능은 상위 2%에 속할 만큼 비상하지만(첫 번째 예외), 동시에 ADHD나 난독증 같은 학습 장애를 가지고 있는(두 번째 예외) 경우를 말합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비동기적 발달(Asynchronous Development)'입니다. 지적 능력은 또래보다 훨씬 앞서가지만, 정서 발달이나 충동 조절 능력은 오히려 늦되는 현상이죠.
ADHD 분야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할로웰(Edward Hallowell) 박사는 이 상태를 두고 "당신은 페라리 엔진을 달고 있습니다. 다만 브레이크가 자전거 브레이크일 뿐이죠."라고 비유했습니다.
이 불균형 때문에 2e 아이들은 흔히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 "게으르다", "성격이 이상하다"는 오해를 받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좌절하기 쉽습니다.
나의 비상한 머리는 교과서의 난제를 푸는 데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히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도구였다. 나는 종종 물건을 훔쳤다. 친구의 지우개, 교실에 있던 빵... 내 주머니 속에는 항상 출처를 알 수 없는 전리품들이 들어있었다.
나를 움직인 건 탐욕이 아니라, 뇌가 타들가는 듯한 지루함이었다. ADHD의 뇌는 만성적인 '도파민 기근' 상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숨이 막히는 흑백영화 같았다. 어른들은 그것을 '도덕적 결함'이라 불렀지만, 내 뇌에게는 숨을 쉬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질식할 듯한 권태 속에서 나를 깨울 수 있는 건 훔칠 때의 그 짜릿한 자극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뒤처리 과정에서 나의 '지능'이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위기가 닥치면 내 전두엽은 '반성'을 하는 대신 초고속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보통 아이들이 당황해서 울거나 얼버무릴 때, 내 머릿속에서는 0.1초 만에 인과관계가 딱딱 맞는 완벽한 서사가 만들어졌다.
"아, 이거요? 아까 복도에서 주웠는데 주인을 찾아주려고 챙겨둔 거예요. 선생님한테 바로 가려고 했는데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뱉어내는 나의 말은 너무나 논리 정연해서, 어른들은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나조차 내가 만든 시나리오가 진실이라고 믿어버릴 정도였다.
그 순간, 남을 속이겠다는 악의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비난이 쏟아지기도 전에 내 높은 지능은 이미 상황을 모면할 가장 완벽한 방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작동한 고지능의 '가면 쓰기(Masking)' 전략이었다.
"너 정말 똑똑하구나." 어른들의 칭찬은 독이었다. 나의 영악함은 '똑똑함'으로 포장되었고, 가면은 점점 두꺼워졌다.
거짓말로 시나리오를 쓰던 나의 뇌를 구원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였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훔친 물건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을 때 느끼던 희열과, 백지에 소설을 쓸 때 느끼는 희열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과학 시간에는 시체처럼 잤지만,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는 몇 시간이고 미친 듯이 집중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바다', '모험', '비밀' 같은 제시어 몇 개를 적어주고 짧은 작문을 시켰을 때였다. 선생님이 원한 건 그저 단어가 들어간 두세 줄짜리 문장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 귀찮아" 하며 대충 빈칸만 채우고 엎드려 잤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에게 그 제시어들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었다. '바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거대한 파도가 치고 해적선이 뒤집히고 있었다. 주인공은 누구인지, 비밀은 무엇인지, 내 뇌가 묻지도 않은 뒷이야기들을 제멋대로 생성해 내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듯이 펜을 잡았다. 선생님은 한 문장을 원했지만, 나는 A4 용지 앞뒤를 빽빽하게 채워야 직성이 풀렸다.
초등학교 3학년 '시화 그리기 대회'에서 6학년 언니 오빠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뇌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입력받는 수업 시간에는 '절전 모드'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모드일 때는 슈퍼컴퓨터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거짓말쟁이의 '상상력'이 작가의 '창의력'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했다. 고삐 풀린 야생마에게는 트랙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내게 해준 인생 최고의 선물은, 8살 때부터 7년간 시킨 '논술 그룹 수업'이었다.
ADHD의 머릿속은 '확산적 사고'의 연속이다. 폭죽처럼 아이디어가 터지지만, 정리하는 그물망이 없어 연기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주어와 서술어를 맞추고 '기승전결'을 짜야 했다. 사방으로 튀는 생각을 하나의 결론으로 모으는 '수렴적 사고'를 강제로 훈련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때 영화 <일본 침몰>을 보고 수업에 갔을 때였다. 잔뜩 흥분한 나는 영화의 스펙터클한 장면을 늘어놓기 바빴다.
"와, 진짜 다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 선생님은 차분하게 물으셨다.
"그래서, 너는 정말 일본이 침몰할 거라고 생각하니?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뭐지?"
선생님은 나의 감상을 논리로 바꾸기를 요구하셨다. "재미있다"는 통하지 않았다. "왜?" 그리고 "근거는?"이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7년 동안의 훈련은 내 머릿속의 무질서한 폭죽들을 '체계적인 불꽃놀이'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내 전두엽에 없는 '정리 담당 직원'을 종이 위에 고용한 셈이다.
지금 내가 작곡가로서 멜로디를 짓고, 사업 시스템을 설계하고, 이렇게 책을 쓸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때 내 뇌에 '논리'라는 뼈대를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 뇌에 '논리'라는 소프트웨어를 강제로 깔아주신 엔지니어였다. 만약 그 훈련이 없었다면, 나는 엔진 소리만 요란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고장 난 스포츠카로 남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