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남의 손에 나를 맡겨보기 - 세신샵

나를 대신 씻겨줄 다정함이 필요할 때

by 아템포
tempImageuiw19v.heic
tempImageAk9chW.heic

목욕탕 키즈로 자란 사람은 알 것이다. 목욕이 끝난 후 개운함의 가치를.

나는 집안 대대로 별 일이 없는 이상은 매주 일요일은 꼭 일가친척들과 목욕탕을 갔다. 이른바 목욕 매니아 집안. 그때는 엄마부터 이모, 할머니, 숙모까지 함께 가서 서로의 때를 박박 밀어주곤 했는데 이제는 밀어줄 사람도 없거니와 제 한 몸 하나 온전히 때를 밀 수 없는 힘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슬퍼하기는 이르다. 힘과 월급을 교환했다는 것은, 때를 밀 힘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세신을 받을 정도의 돈은 번다는 것이다. 물론 자주 받을 수는 없지만..


혼자서도 종종 목욕탕을 가곤 한다. 뜨끈한 탕에 들어가, 온몸이 데워지는 감각을 지나 땀나도록 온몸 구석구석 때를 미는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의 신성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진땀을 뺀 만큼 뽀득뽀득해지는 피부만큼이나, 마음의 묵은 때도 사라져,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게 해주는 기분 전환 코스. 샤워에 비해 품은 들지만 그만큼 효과는 엄청나다.


1인 세신샵이라는 목욕계의 신성 등장

그런데 코로나라는 역병이 닥치고, 나의 최애 힐링 플레이스이던 대중목욕탕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시설이 깔끔한 곳을 찾아가니,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주말에는 만 탕이었으며 또 작은 목욕탕을 가자니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1인 세신샵. 이런 훌륭한 서비스가 있다는 것에 감동하며 냉큼 예약을 했고, 처음 경험한 세신샵은 민망할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설을 앞두고 마음도 몸도 싱숭생숭해지는 어느 날. 나를 위한 플렉스로 퇴근 후 세신샵을 예약했다. 마음이 다급했는지 예약금도 바로 보내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원래 갔던 세신샵과는 다른 곳을 예약한 것이 아닌가. 일상 속의 작은 사치를 누리려고 했는데, 동네 목욕탕을 옮겨둔 듯한 인테리어의 세신샵으로 가게 된 것이다. 급하게 잡은 시간이라 취소도 되지 않아, 가성비 세신샵은 어떤지 새로운 곳을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부끄러움은 잠시 개운함은 최소 3일

대망의 예약일. 후천적 외향인은 이럴 때마다 불쑥 내향인의 성향을 꺼내곤 한다.

이상하게도 대중목욕탕에서 세신을 받는 것보다 더욱 긴장이 되었다. 보는 사람은 한 명인데 왜 더 부끄러울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대중목욕탕은 모두가 나체이고, 세신샵은 나만 나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단 속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라는 결론에 이를 때쯤 이미 몸은 뜨끈한 반신욕 욕조에 들어가 있었다.


밖이 추워서 잔뜩 긴장한 근육들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에 들어가자 천천히 풀어졌다. 준비해 주신 얼음물을 마시며 화장을 지우고 있으니, 어느새 세신타임. 차디찬 베드에 나 혼자 올라가려니 민망함이 앞섰지만, 눈을 질끈 감고 올라가니 뜨끈한 물을 수건에 적셔 몸 위에 얹어주셨다. 거기에 클렌징까지 싹싹해주시고, 차디찬 팩을 얹어서 눈을 감을 명분까지 주시는 센스까지. 그 이후로는 철저하게 세신사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프라이팬 위의 생선처럼 이리저리 열심히 몸을 뒤집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부끄러움 따위는 떨어지는 묵은 때와 함께 사라졌다. 보통은 세신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포즈 지령만 내려주시는데 오늘은 신기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발 각질이나 상처에는 안티푸라민이 최고라는 이야기나, 관리 주기 같은 팁들 위주였는데 정신을 차리니 이미 세신이 끝나 있었다. 오히려 수다를 떠니 민망함도 사라졌다. 역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즐거움은 있는 듯하다.


세신샵이 최고인 또 하나의 이유는 머리까지 감겨주고 두피 마사지도 해준다는 점이다. 정말 이 닦는 것을 제외하고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목욕의 프로세스를 끝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럭셔리가 아니겠는가.

머리 물기까지 꼭꼭 짜내어 수건까지 동여매주시고 몸의 물기도 닦아주시면 관리는 끝. 피부는 반들 반들하고, 혈액순환이 잘 되었는지 칙칙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어쩐지 눈도 조금 더 잘 보이는 느낌. 온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꼼꼼하게 머리를 말리고, 힘차게 인사를 하고 세신샵을 나서는 순간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오늘 하루 나의 속을 썩였던 수많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

하루쯤은 나를 위한 작은 사치가 절실해지는 어느 피곤한 날, 남의 손에 나를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1. 1인 세신샵을 찾기 힘들다면, 목욕탕 세신을 받아서 나만의 럭셔리를 즐겨보자.

2. 온몸에 힘이 없어서 세수조차 하기 힘들 때 더욱 추천하는 풀목욕코스.

3. 목욕 후 뚱바 혹은 맥주 한 캔으로 극락을 느껴보자.




이전 05화[4번째] 축하 선물과 손 편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