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멍하니 보고 있으면, “그럴 거면 그 속에 들어가”라며 엄마가 나를 붙잡고 집어넣으려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동시간대에 여러 채널에 출연하는 텔레비전 속 모습이 당시 내게 가장 큰 미스터리였기에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손을 가까이 대면 짜릿한 전파가 흘러넘치는 두껍고 커다란 텔레비전. 그 안에는 이순신도 있고 톰과 제리도 있었다. ‘이 전파를 타고 나도 저 안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만약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다. ’라는 걱정에 몸부림 쳐가며 저항했었다.
과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갈수록 그 안에 빠져들어갔다. 걸어 다니면서 책을 읽을 정도로 소설에 빠져 살았던 나는 활자의 잔잔함보다 재밌는 것들을 금방 찾아냈었다. 빨리 다음권이 보고 싶어 바쁘게 종잇장을 넘겨 대던 만화책도 내동댕이 치고 리모컨을 찾았다. 운이 좋으면 마취총을 쏘는 명탐정 코난을 보거나 유령 변신을 하는 대니팬텀, 해리포터를 볼 수 있었다. 하루종일 그 앞에 앉아 엄청난 힘을 숨기고 살아가는 또래 주인공들에 희열을 느꼈다.
평온함이 깨지는 소리가 있다. 쇠끼리 부딪혀 나는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찰칵 소리. 갑자기 열리는 현관문에 나는 화들짝 놀라 전원을 꺼야 했다. 몇 초만에 현실로 복귀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의자에 앉아 풀지 않은 학습지를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다급했다. 코난과 함께 밀실사건을 풀어야 하는데 초조했다. 하지만 과열되어 뜨끈한 모니터로 나의 거짓된 알리바이는 들통이 났고 밀실사건보다 중요한 밀린 학습지에 벌을 받아야 했다. 전선이 잘려 퉁퉁 부은 얼굴로 등교하면서도 전자파를 가득 내뿜는 세계 앞으로 돌아갔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생긴 지나친 자유시간 탓이기도 했다.
머리가 자라 현실을 허우적대는 시절조차도 불쑥불쑥 끼어드는 기억조각들을 지나치지 못했다. 나는 조각들을 붙잡아 크리스마스가 되면 잊지 않고 해리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길바닥에서 길쭉하게 생긴 나뭇가지 근처를 어슬렁 거렸다. 니스칠을 해 지팡이로 만들어 고이 모셔두기도 했었다. 우산을 들면 벽에 있는 붉은 벽돌을 툭툭 쳐보기도 하고 손목시계를 쥐면 마취총이 없나 만지작거렸다. 아몬드를 먹으면 청산가리를 떠올렸다. 내가 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하기를 즐겼다. 좋아하는 것들이 현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만들어냈다.
그런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바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무한한 상상력의 단점이 이렇게 나타났다. 막연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세수하다 거품에 눈이 아려도 꼭 눈을 떴다. 조용한 집에 있으면 옆집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도 숨이 턱턱 막혔다. 집에 돌아오면 늘 그렇듯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매일같이 방문을 열어 집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누군가 침입해 집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놓지 못했다.
자다 깨어 불 꺼진 집 안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서히 잡히는 시야 속에서도 나는 상상을 했다. 벗어 놓은 옷가지와 걸어 놓은 수건이 사람의 형체나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나는 나의 인기척에도 겁을 먹어 숨을 죽여야 했다. 울면서 전화를 거는 내내 들리는 신호음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잡히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극이 달했던 나는 다시 그들에게 위로받기도 했다. 전원을 켜 전파의 열기를 맞이하면 차가웠던 공간이 따뜻해졌다. 내 주위에 가득했던 귀신과 얼굴 없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익숙한 주제곡을 부르는 이들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들이치는 상상력에 괴로워하고 온 하루를 쏟아내던 시기는 지나갔다. 그래도 그때를 추억하며 스크린 앞에서 같이 울고 웃기도 한다. 어두운 책상 밑에, 옷장 안에 형체 없는 것들도 스치듯 떠오르기만 한다. 내 하루는 보다 무섭기도 더욱 즐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애정하는 주제곡을 들으며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달려가 보려 한다. 다음화는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명탐정 코난 1기 오프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