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로 남더라도 처음 보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by 구칠일

주말 오전 6시, 편의점에 좀비가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할까.


나의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편의점이었다. 손님이 많이 와봤자 한 시간에 두 세명 꼴로 오는 한적한 매장이었다. 겨울 아침은 유독 해가 안 떠 어둡고 고요했다. 잠긴 매장 문을 열고 상품을 진열하고 포스기에 있는 돈까지 다 세고 나면 귀에 익은 유행가에 졸음이 찾아오고는 했다. 바람에 매장문이 열렸다가 닫히거나 중력에 진열대에서 물건이 툭 떨어지는 의미심장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화들짝 잠에서 깬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 좀비가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까?


무료한 일터에서 보는 <워킹 데드>는 자극적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캐릭터가 죽는 바람에 담배 진열대를 붙잡은 채 오열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결국 그 일로 드라마를 하차했었다. 하지만 한동안 좀비에 대한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다양한 음식이 많으니 문만 잘 잠그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다. 가장 빨리 상할 김밥은 먼저 먹어치우고 나머지는 천천히 아껴먹으면 되겠다.’ 사람들에게 구조될 때까지 체계적으로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 좀비가 오면 어떤 물건을 무기로 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였다. 금방 다른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잊힌 짧은 상상이었다. 그 당시 생존의 키워드는 안전한 공간과 식량이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아르바이트 대신 다음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다. 내 목표는 간단했다. 내 할 일을 끝낸다. 무수히 많은 끝나지 않는 할 일을 끝내기 위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알람 시간보다 두 시간 더 자고 나온 나는 책상 위에 놓인 공책과 노트북을 모른 척하며 늘어지는 일상을 보내기도 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티셔츠에 묻은 라면국물을 빨지도 않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사람과 함께 마음이 달라지기도 했다. 달라진 마음조차도 금방 지치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만 빅스비에게 시간을 묻고 창 밖에 해가 지지 않기를 빌었다.


이상하다. 집에 갇혀있는 것처럼 군다. 모든 것들이 갖춰진 안전한 우리 집에는 식량도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탈출을 시도했다. 커다란 검정 백팩에 노트북과 태블릿을 넣었다. 외부 소음을 차단할 이어폰도 넣고 배터리가 떨어지는 참사를 대비해 충전기는 두 개 챙겼다. 연필과 공책도 빼먹을 수 없었다. 카페는 에어컨을 세게 틀기 때문에 자칫하면 냉방병이 걸릴 수 있어 위험했다. 고민 끝에 얇은 겉옷을 집어넣었다. 강한 햇빛에 의한 각막 손상에 대비해 선글라스까지 챙기면 얼추 준비가 다 되었다. 묵직한 가방에 오른쪽 승모근이 당겼다. 손으로 가방 끈을 바짝 당겼다. 짐을 짊어지고 나서는 발걸음이 먼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설렜다. 도착하는 곳은 카페 아니면 도서관이겠지만 밖으로 나서면 세상이 새로웠다. 수년간 편의점에 홀로 갇혀 고립되어 있다가 겨우 탈출해 사람들을 만난 것 마냥 반갑고 행복해졌다.


건너편에 모르는 여자가 문제집을 펴 놓고 핸드폰을 한다. 2시간 째인 듯하다. 그 모습이 익숙했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들이닥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코백을 맨 중년의 여성이 그 옆자리에 슬쩍 가 앉았다. 여자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린다. 집에 가서 잔뜩 혼이 나려나 아니면 어제의 나처럼 자괴감에 휩싸이려나 웃음이 났다.


카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들거나 핸드폰을 한다. 나는 거북목을 하고 화면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저 사람들도 어둡게 불 꺼진 방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겠구나. 현대인의 증표와도 같은 자세. 저 모습 그대로 고립된 시간을 모두가 가졌겠구나. 세상에 나만 동 떨어진 기분을 모두가 느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최후의 1인만큼 끔찍한 일이 있을까. 안전한 곳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좀비한테 물리더라도 다 같이 좀비로 사는 삶이 더 즐겁지 않을까 싶다. 거기서 함께 어떻게 사람이 될지 궁리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썩어 문드러져 고약한 냄새가 나는 좀비 떼 속에서 방향 못 잡고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가도 즐거울 것 같다. 혹시 모른다. 좀비끼리 눈이 맞아 영화 웜바디스처럼 심장이 뛰어 생기를 되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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