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적허용 Jul 18. 2023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아름다웠지만 쓸모없지는 않았던 파리백수시절


이미 사표는 던져졌고, 무작정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언니가 유학 갔던 그곳에서 오로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바라며 살아보기로 했다. 예로부터 전해져 온 성공의 법칙. 대학은 중퇴를 해야 하고, 비행기는 편도를 끊어야 한다는 것. 대학 중퇴는 이미 늦었지만 편도 비행기만 타도 반은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그럴 리 없지만) 왕복 항공권보다 비싼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 급하게 읽은 책의 일부를 인용하며 꽤나 몽글몽글한 말들로 운영 중인 블로그에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글을 남겼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저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말했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 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찢어지게 까지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게 가난했고,

남부럽지 않게 겁많았고,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생각할 만큼 마음의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서른이 되어

완벽하진 않더라도 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5년 넘게 일한 회사를 그만두면서 유럽여행을 계획하다가 3개월은 짧은데- 하던 찰나에

프랑스 워킹홀리데이가 생각이 났다.


백세인생이라는데

백 년 중 일 년정도는, 인생의 100분의 1 정도는, 아름답고 쓸모없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파리, 파리 노래 부르던 그 파리에서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비자가 붙은 여권이 도착했다.


거창한 것 같지만 내 쭈굴쭈굴한 삶에 이 정도 일이면 좀 거창할만하다.

모든 일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아등바등 살았다. 잠시만이라도 노력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헤밍웨이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파리에서 먹고 놀면 좋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더 좋은 일이었고, 인생 최대 업적이 되었으며,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나를 따라다닌다. 그즈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남자 주인공 김신은 이런 대사를 한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파리에서의 모든 날이 나에게도 그랬다. 은탁과 함께한 신의 모든 날이 좋았듯 파리에 있는 나의 모든 날이 좋았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도 파리지앵들의 불친절함도 파리를 미워하게 될 구석이 되지 못했고, 가끔 친구들이, 더 가끔 가족들이 생각나긴 했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그리움을 가질 틈을 주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만큼 내 마음은 차올랐다. 즐겁다. 신난다. 재밌다. 보다는 충만하다.라는 단어가 적당한 날들이었다. 온 세상이 유용함을 쫓는데 나 하나쯤이야 무용해져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에게 새삼 다시 고맙다. 이건 특급 칭찬이야.

작가의 이전글 프로백수 1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