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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Feb 26. 2023

04. 경력직의 역할과 나의 태도

입사 후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내게 중요한 미션이 주어졌다. 자사브랜드 중 하나인 빅브랜드의 새로운 메인 카피를 쓰는 일이었다. 잘만 한다면 글로벌 영상광고, 옥외광고, 제품 패키지, 각종 SNS 등 내가 쓴 카피가 브랜드 전반의 모든 홍보물에 입혀지는 굉장한 포트폴리오가 되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 업무를 주며 리더는 내게 말했다.



이 일에서는 네가 전문가이고,
그래서 팀원으로 채용한 것이니
 그에 맞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 얘기는 그 뒤로도 몇 번을 거듭해 들었다. 솔직한 심정은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신이 없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직전회사였던 에이전시에서는 같은 일을 팀 리더가 주도로 하여 팀 프로젝트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처럼 큰 브랜드는 진행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한 번도 리딩해본 적 없는 더 큰 규모의 업무를 홀로 리딩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사원 4년 차로 입사한 아직은 주니어급이었기에, 전문 에이전시에서 리더급이 팀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작업을 나 홀로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팀 내 선배들에게 조언은 구할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니어급이라 할지라도 '경력직'이라는 타이틀 앞엔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했다.


어쨌든,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아니, 잘해야만 했다. 그래서 업무시간은 물론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개인적으로 관련 책도 구입해 스터디를 했다. 정말이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업한 결과물을 중간중간 선배들에게 보여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배들의 피드백은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선배들의 의견을 반영해 개선해 나갔고, 팀 리더에게 보고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부족하고, 아쉽다는 반응이었다.(싸늘했다) 팀 리더는 이 작업이 답이 없는 일이라 내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경력직으로 온 만큼 나의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당연히 자신도, 선배들도 적극 도와줄 거라는 고마운 말과 함께.




그 뒤로 몇 번의 보고의 과정이 있었지만 부족한 결과물에 리더와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그에 따라 난 계속해서 주눅이 들었다. 이제는 그들의 시간을 빼앗아가며 보고를 하겠다는 것도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쳐갈 무렵, 이 업무는 팀에서 잠시 잊혀 갔다. 당장 급한 다른 업무에 더 집중했다. (에이전시와는 다른 인하우스의 특징이기도 한 기한이 없는 업무 프로세스다)



돌이켜보면, 나의 업무 태도는 늘 수동적이었다.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리더의 눈치를 보는 쪽이 더 컸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나는 강하게 채찍질하면 오기가 생기는 타입이 아닌, 오히려 더 주눅이 드는 사람이었다. 나도 처음 알게 된 나의 모습이었다.


또한,   프로젝트를  믿고 나한테 맡기는 건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를 발판 삼아 주도적으로 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나의 이러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없었을 거라는 것도 이제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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