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는 같이 보는 사람 수만큼 재미가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선수가 플레이 하는 장면을 보면서 같이 소리 지를 상대가 없으면 어쩐지 재미가 사그라들곤 한다.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고, 공감 할 상대가 있을 때 느껴지는 연대가 꽤나 큰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비단 스포츠에만 해당 되는 현상은 아니고, 이러한 현상이 최근의 일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판소리를 들을 때는 고수가 옆에서 맞장구를 쳐줘야 더 흥이 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영화 상영을 할 때는 영사기가 끊기는 동안 변사가 맛깔 나게 리액션을 해줘야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다.
혼밥, 혼영 등이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맞춰 함께 TV를 시청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다. 오랜 친구와 만나 밥 한끼 먹으려고 해도 일주일전부터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그런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을 TV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패널, 더 정확하게는 스포츠 캐스터와 해설위원이다.
그들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물론 우리는 모르는 선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세밀한 경기력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상대인가! 선수들과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하고, 때로는 함께 격분하기도 하는 해설위원들을 보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더구나 월드컵은 올림픽처럼 다채롭지 않고 오직 ‘축구’라는 한 종목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해설위원과의 궁합이 어느 대회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디지털 해설위원으로 아프리카BJ 감스트를 위촉한 MBC의 행보를 주목하고 싶다. 감스트는 스스로를 ‘동네 형’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축구-감스트=0’일 정도로 워낙 축구에 미쳐있는 재야 축구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시범 중계로 MBC 디지털 해설위원 데뷔를 치렀다. 경기 내내 눈을 떼지 못하며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컨디션까지 분석한 그의 해설에서 축구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물론 냉철한 분석력도 해설위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지만, 결국 스포츠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우리와 같은 눈높이에서 나눌 수 있는 해설위원이 있어야만 신나게 경기를 볼 수 있다. 그는 지상파 방송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중계를 어떤 식으로 할 지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MBC의 선택은 단순히 새로운 도전이 아닌, 시청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은 나 이전에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MBC의 김병철 스포츠 PD는 아프리카 BJ를 섭외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K리그 경기장에서 초중고생들이 감스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저들이 저토록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었다.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는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시청자를 먼저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친구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지 오랜 시간 숙고한 끝에 ‘못 먹어도 고’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김PD는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조금씩 새로운 MBC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묵묵히 도전할 것이라고.
MBC가 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과 발맞춰 걷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들여다 본 MBC는, 그렇게 느리지만 확실하게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감스트 뿐 아니라 MBC의 중계가 기대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메인 캐스터와 해설위원들 간의 케미다.
안정환은 날카롭고 비판적인 경기 해설로 유명하다. ‘고개를 들어라. 그래야 시야가 좁아지지 않는다’, ‘지금 선수들 중에 중심축이 없다’와 같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해설을 해주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뻥 뚫어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무조건으로 한국팀에게 유리한 해설보다는 ‘짚어줄 건 확실히 짚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리버풀 대학교 대학원에서 축구 산업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2001년부터 MBC의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해 온 베테랑이기도 하다. 선수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물론, 한국과 외국을 넘나드는 축구 시장 전반에 대한 그의 통찰력은 예리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기대되는 캐스터 김정근 아나운서. 그는 워낙 성실하고 생각이 깊은 캐릭터인데다가, 최근 예능에 출연 하며 순수하고 인자한 모습도 보여줬다. 때문에 날카로운 두 해설위원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줄지, 이 세 사람의 콤비가 어떻게 버무려져 차별화를 줄 지가 기대된다.
다음 달부터 시작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우리 선수들을 지켜보는 동시에 중계석에도 유심히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