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박성은CP님 인터뷰
MBC 드라마에 힐링 바람이 분다
요즘 한국 드라마는 검찰, 경찰, 법 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자극성과 쫄깃함이 주는 쾌감도 분명 존재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지친다. 뉴스에서도 연일 사건들이 터지는데 드라마로까지 같은 그림을 보고 있자면 피로하다. 권력 다툼보다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진솔한 내면을 이야기한 드라마로 치유 받고 싶다. 그런 와중에 MBC에도 ‘위로’를 키워드로 내세운 드라마가 나왔다. 제목부터 따뜻하다.
<이리와 안아줘>.
박성은 CP님은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1, 2화는 재미있게 봤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드디어 MBC에서 볼만한 드라마가 나왔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다녔다. 그런데 8화까지 본 지금,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과연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며 위로 받고 있을까? 분명 벚꽃 휘날리는 예쁜 그림들이 많이 나오고, 적당한 스릴러로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불편하다’는 막연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자주 이러쿵저러쿵 글을 쓴다. 이번에도 그 이유를 이리저리 뜯어내어 미숙하게나마 글로 옮겨보고자 한다.
첫사랑의 절절함보다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낙원과 나무의 사랑은 절절하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서로의 꿈에 나오고 눈물을 흘릴 만큼 애틋하다. 인물소개를 참고하자면 낙원은 나무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애적, 구원자적 모티프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CP님께서 인터뷰를 통해 두 주인공이 ‘함께’ 시련을 헤쳐 나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주셨기 때문이다. 메인 포스터의 카피 ‘지켜줄게 너를. 반드시.’도 서로가 서로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공감하기 힘든 것은 애초에 낙원이가 그토록 사랑에 빠진 이유다. 벚꽃 휘날리는 길에서 낙원과 나무는 서로를 처음 발견하고 길게 쳐다본다. 그 과정에서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후에 그들이 가까워지고 함께 무서운 일을 겪는 것도 10년이 넘는 세월의 절절함을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내 아름다운 낙원을.’과 같은 나무의 내레이션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생겨도 난 널 좋아 할 거야. 평생.’ 과 같이 못을 박는 낙원의 대사는 당황스럽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둘이 충분히 감정이 쌓이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너무나 깊은 사랑에 빠진 느낌을 받는다. 마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대뜸 ‘죽을 만큼 당신을 사랑 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벚꽃과 눈물, 음악이 어우러져 매우 절절해 보이지만, 시청자가 압도 될 만큼 서사가 촘촘하지는 않다. 아마도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충분히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뒤의 이야기를 아직 펼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두 사람의 절절함 그 자체보다는 이유를 보여줘야만 몰입해서 끝까지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목함에 대한 과한 판타지인가
낙원이네 가족은 화목하다. 힘을 합쳐 가족사진을 걸고, 작은 일도 지나치지 않고 서로 칭찬해준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소녀의 전형답게 낙원이는 늘 웃고 긍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이 화목함이 어딘가 불편했다. 이렇게 말하니 성격파탄자인가 싶지만, 화목과 가식은 한 끗 차이다. 자연스러운 가족의 모습보다는 ‘우린 화목한 가족이야!’라고 온 몸으로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낙원이에 대한 오빠(길무원)의 사랑은 너무 노골적이라 집착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무리 남매 사이라도 다 큰 사람들이 낯간지러운 말을 주고받고 손을 잡고 다닌다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이 모인 집단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을 풀지 않고 살얼음판 위에서 웃고 있는 것보다 들추어내어 싸우고 또 싸우는 편이 인간관계를 더 돈독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열하게 들이받고 화해하며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가족은 건강해 보인다. 그런데 서로에게 너무나 친절한 낙원이네 가족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감정의 교류라기보다는 연극 같다.
물론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어떤 드라마는 그 허구를 통해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진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시청자들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캐릭터의 진심을 느낀다면 그 드라마를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 할 수 없다.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시청자가 진심으로 위로 받기를 원한다면 다소 과하게 먹은 착함착함 열매를 뱉어내도 좋을 것 같다. 비단 낙원이네 가족뿐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착하거나 긍정적인 캐릭터는 시청자의 마음에 와 닿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따뜻한 사람들이 만든 드라마라면
개인적으로 늘 하는 말이 있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자신만의 멋진 철학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그 역사서가 바로 자신의 작품들이라는 말이다.
모든 작품에는 제작자의 성향이 묻어난다. <이리와 안아줘>가 끝날 때 잘 보면 ‘동물 촬영 장면은 전문가와 함께 동물의 복지와 안전을 보호 하며 촬영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CP님에 의하면 연출가가 대단한 동물애호가라고 한다. 철창에 갇힌 개를 표현할 때도 개의 스트레스를 우려해 인형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또 한재이(길낙원)의 직업을 배우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쭤봤을 때, 상대적으로 2차 피해자가 되기 쉬운 배우의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점을 잔뜩 들고 찾아갔지만, CP님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생각했다. 이토록 따뜻한 사람들이 만든 드라마라면 괜찮은 힐링 드라마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CP님은 인터뷰 말미에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을 언급하셨다. <이리와 안아줘>의 한 줄 메시지와도 같다고 하셨다. 꼭 누굴 이기지 않아도 지지 않으면 된다.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낙원과 나무가 그렇다. 두 주인공이 ‘함께’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청자들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될까? 앞으로 펼쳐질 <이리와 안아줘>의 섬세한 감성과 힐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