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안아줘>: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
※ 박성은 CP님과의 인터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금지된 사랑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MBC에서 새로운 월화, 수목드라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한 쪽은 <이리와 안아줘>보다는 <검법남녀> 쪽에 가까웠다. 워낙에 스릴러물 마니아고, 스릴러 드라마에서 항상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 정재영 씨의 연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검법남녀>가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리와 안아줘>가 기대 이상이었을 뿐이다. 제목만 가지고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잘 안 왔고, 연쇄살인범의 아들과 그 피해자의 딸의 로맨스는 자칫하면 신파극이 될 수도 있는 소재다. 그러나 8회까지 본 지금, 이대로만 가면 웰메이드 힐링 로맨스 드라마가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흥행하길 바란다. 이토록 무해한 로맨스.
꽃이 아닌 나무가 있을 뿐이야
주연 캐릭터가 연쇄살인범과 그 아들, 그리고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이라고 해서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드라마는 아니다. <이리와 안아줘>는 스릴러 요소가 있기는 해도 힐링 로맨스라는 장르에 충실하다. 그에 맞게 채도진(장기용 역) 캐릭터와 한재이(진기주 역) 캐릭터도 잘 잡았다. 채도진은 담백한 캐릭터다. 박성은 CP는 “아마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남자 주인공 중에서 가장 건전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채도진(본명 윤나무)에게는 재벌 남자 캐릭터의 시건방과 자신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서준희처럼 직진하거나 능글맞은 것도 아니다. 채도진은 묵묵히 속죄를 하는 캐릭터다. 본명 그대로 ‘나무’ 같은 캐릭터다.
연쇄살인범 아버지와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아들, 그리고 첫사랑의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서사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본 걸로는, 한재이(본명 길낙원)가 마냥 수동적인 캐릭터일 것 같지는 않다. 시골 학교에 전학 오자마자 나무에게 “너 나한테 첫눈에 반했구나!”라 말하는 낙원은 맑다. 낙원은 한재이가 되어서도 어머니를 따라 배우가 되고,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는다. 극 전개상 낙원이 고통받는 사건들은 계속 생길 것이다. 상처받았지만 당당한 길낙원 캐릭터가 끝까지 유지되었으면 한다. 낙원이가 단순히 연약한 꽃이 아닌, ‘나무’ 옆에 쭉 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우리도 가족이야
이 드라마에서 단연 악역은 채도진의 친아버지, 윤희재(허준호 역)이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역할에 허준호 씨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꽤나 기대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허준호 씨의 악역 연기는 드라마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 윤희재는 이 드라마 속 지옥을 만든 장본인이다. 매력 있고 사람을 휘어잡을 줄 아는 윤희재는 역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단, 자신의 핏줄만 믿는다. 특이하게도 윤희재는 자신과 닮은 첫째 아들 윤현무보다는 모범생 둘째 아들 윤나무를 더 아낀다.
“내 등에 칼을 꽂지 않을 인간은 내 새끼뿐이니까. 그래, 그래야 내 새끼지. 그래야 이 윤희재의 핏줄이지. 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 아버지를 실망시킨 적이 없어. 잘 자라 우리 아들. 귀하디 귀한, 보물 같은 내 새끼.”
이처럼 윤희재는 핏줄에 집착하는 싸이코패스다. 이에 반해 <이리와 안아줘>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은 혈연만으로 맺어진 가족들이 아니다. 즉, 이 드라마는 혈연이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가족을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에서 부모와 친자식으로 구성된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이 행복하게 등장하는 것은 여전히 드물다. 그래서 더욱 귀한 설정이다. 윤나무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처음으로 애정을 느낀 것이 낙원과 그 가족이었다는 설정은 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건 이후가 중요하다. 나무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던 윤희재의 네 번째 부인, 채옥희는 결국 나무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사건 후 나무가 ‘채도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의 경찰대학 입학식에 채옥희와 채소진이 찾아왔다. 자신의 핏줄만 믿던 연쇄살인범 윤희재가 남긴 지옥 속에서, 혈연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를 쌓고 가족을 만들었다.
낙원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낙원의 오빠, 길무원은 친오빠가 아니다. 인권변호사인 낙원의 아버지가 친부모를 잃은 무원을 입양한 후, 윤희재의 살인사건 전까지 낙원의 가족은 행복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후에도 두 사람은 친한 남매로 지낸다. 길무원이 <킬미, 힐미>(2015)의 오리온(박서준 역)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강한데, 무원이 낙원에게 연애 감정을 느낀다는 설정으로는 안 갔으면 좋겠다. 혈연보다도 진한 가족 캐릭터가 흔하지 않기도 하고, 누구 말대로 너무 뻔하다.
그들도 살아남았다
<이리와 안아줘>에서 가족에 대한 성찰은 꽤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듯하다. 도진은 아버지의 범죄에 대한 속죄로 경찰대에 지원한다. 새어머니 채옥희와 여동생 채소진은 섬에 가서 살고 도진이 이름을 바꾸면서 조금 조용히 사나 싶었다. 그러나 윤희재가 감옥 안에서 자서전을 내고 인세를 자신의 가족에게 준다는 뉴스가 나가자, 세 가족의 신상정보가 털리고 만다. 채옥희가 자신의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협박 전화를 받는 장면은 가해자의 가족이 어떤 고통에 시달리는 지를 보여준다.
윤희재의 가족도 엄연한 피해자다. 채도진은 연쇄살인범 아버지로 인해 사건 이전까지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왔고, 아버지가 잡힌 이후에도 평생 살인자의 아들로 손가락질받았다. 윤희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동거한 채옥희와 채소진 역시 마찬가지다. 채옥희는 딸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들을 윤희재와 같은 가해자로 본다. 그저 그들이 윤희재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범죄에서 가해와 그 가족을 동일하게 보는 편견은 생각보다 보편적이다. 성범죄 가해자의 아내나 딸에게 “너도 똑같이 당해라.”라고 저주하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가정이 파탄 난 사람들마저 비난하는 현상에는 가족주의적 사고가 숨어있다. 이 문제를 인식하는 사회에는 강력범죄 가해자들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영국 등등). 그러나 오늘도 인터넷에서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한국에서는 아직은 먼 이야기 같다.
“우리 아들이 대관절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 썅놈 새끼야!”라 소리 지르는 채옥희가 당신에게 물어본다.
왜 내가 윤희재와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하냐고.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가기를
개인적으로 재난 혹은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아끼는 드라마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SBS <원티드>(2015)와 가정폭력에서 살아남은 모녀의 TVN <마더>(2018), 그리고 결국은 학대 아동을 보듬었던 MBC <킬미, 힐미>(2015)를 뽑는다. <이리와 안아줘>도 그런 드라마일 것 같아 계속 지켜보지 않을까 싶다. 윤희재가 만든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화해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게 될지 기대한다.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우린 살아남았으니까, 이렇게라도 하루하루 살아나가면 되는 거겠지? 우린 전부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으면서도,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