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에서 노동이란 (feat. 정신적노동)

제주살이 100일 no.4

by 치즈미

첫날, 내 머릿속 질문은 하나였다. 게스트 하우스 스텝은 얼마나 친절해야 할까.

나는 이전까지 딱히 서비스업에 종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친절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일단 강제로 남의 비위를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장기 여행자’ 일뿐인데? 돈을 받기는 하지만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택도 없다, 쉬고 즐기러 제주에 왔지 감정 노동하며 나를 갉아먹으려고 내려온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했다. 목소리는 이 정도까지만, 웃음은 이 정도까지만. 먼저 질문하지 않는 이상 챙기지 않기.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서 나를 힘들게 하지 않기. 제주에 온 이유가 없어지니까.


그래서 약 두 달 반 정도는 게스트에게 관심이 1도 없었다. 그저 뭘 달라면 주고, 퇴실 시간이 되면 게스트가 나갔건 아니건 청소를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시간 1분 1초가 아까운데 왜 기다려줘야 해? 안 나간 게 잘못이지.’ 그래,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이기적이고 싶었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내 할 일은 실수 없이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듯했다. 내 시간도 지키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내 몫도 해내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게도 어떤 스텝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게스트가 불편한 게 없는지 계속 주시하고, 더 친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괴로워하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스스로를 힘들게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스리슬쩍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았다. 힘든 건 없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살갑게 하이톤으로 응대를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모두에게 똑같이 하는 부탁이라고 했지만, 순간 나를 지탱하던 끈이 끊어졌다. 기분이 확 상했다. ‘내 일에 실수도 없고 게스트 기분이 상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더 잘하라고?’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하기 싫은 이놈의 자존심. 그래서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칭찬은 커녕 더 많은 걸 바라지 말아달라는 (ㅋㅋㅋㅋㅋ그 땐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되게 웃기는 애네) 의사를 전달했다. 기분이 내키지도 않는데 고정적인 서비스직처럼 생글생글하게 웃고 하이톤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구기고 싶지 않았다. 내 나름 대로의 따뜻함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나를 잘라내야 하는 서비스업과 억누르기 싫은 자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는 노력은 꼭 필요했다.




그렇게 찜찜하고 조금은 화가 난 마음을 안고 지냈다.

그리고 조식 준비를 하려고 일찍 일어난 어느 날.

한 게스트가 찾아와 다짜고짜 한라산을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이미 출발하기에는 다소 늦은 시각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 출입이 가능한지도 확실치 않았다. 일단 홈페이지를 확인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실은 미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핸드폰 번호도 없단다. 나는 빨리 조식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곤란했다. 딱히 등산복이나 장비도 없고 사전 정보가 아예 없어 보였다. 심지어 친구에게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부탁했다는데 명단에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제주에 온 이유가 한라산 등반이기에 꼭 오늘 가야 한다고 했다.

성인에게서 느끼기 힘든 순수한 무지였다.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한라산 쪽에 전화를 하고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하는 동안 게스트는 급하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 아침을 먹었다. 이렇게까지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한라산을 간다니? 너무 고생길이 훤해서 짠할 정도였다. 그래서 평소답지 않게 이것저것 다 물어보고 챙겨드렸다. 저녁에 슬쩍 보니 다행히 그분은 조난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계셨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서툰 한국어로 더듬더듬 종이에 버스 노선을 적어 온 사람도 있었고,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에 열정을 쏟은 적이 없는 것 같아 한 달 동안 제주를 걷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점차 게스트가 그냥 귀찮은 존재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적인 연민이랄까. 그래, 우리 다 같이 행복하고 싶은 건데, 하는 마음. 적어 놓고 보니 참 진부한 말이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을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지친 인생에 하루 이틀이나마 바깥공기 쐬고 싶어 귀한 휴가를 쪼개 왔을 사람. 똑같이 여행 전 날 설렜을 사람. 이 하루를 기대했을 사람. 그 사람의 시간이 내 것만큼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친절한 영업사원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적어도 게스트들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저 정보 저장쯤으로 여겼던 게스트와의 대화가 이제는 '소통'으로 느껴졌다.




얼마 전 우연히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첫인사가 ‘너 인상이 착해졌다’였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고 하기엔 무리겠지만,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덕분에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갈 때 과도한 방어기제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저 사람도 나처럼 감정이 있겠지. 나처럼 막막하고 헷갈리고 불편하고 조금은 우울하겠지. 하지만 즐겁게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있겠지.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지, 한 걸음 앞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장족의 발전이다. 기쁘다.


결과적으로 나는 단 한순간도 남을 위해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자 기를 썼으나

남에게 마음을 쓰는 게 꼭 소모, 혹은 손해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네 잘못이 아니야, 스스로를 위해 살아라, 뭐 이런 종류의 책이 유행이고 힐링인데, 나는 기본 값이 이미 나를 너무 소중히 여긴다는 게 뭔가 웃기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정신적인 노동만 이야기했지만,

다음번에는 육체적인 노동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보고 싶다.


무슨 사진을 올려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냥 예쁜 세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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