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작가 협회에서 발행한 월간 <2020 방송작가 2월호> 중 메모하고 싶은 일부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핵심: 방송의 미래는 세계관과 콘텐츠의 질
*EBS 김유열 부사장 인터뷰 일부
미디어 중심이 아니라 콘텐츠 중심으로 사고를 전화해야 한다. 유튜브 시대, 넷플릭스 시대에도 미국의 디스커버리나 HBO는 선전하고 있다. 둘 다 매년 2조 원에 달라는 영업 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도 콘텐츠 중심 사고로 사양산업이라는 신문을 여전히 번영시키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프리미엄 디지털 콘텐츠를 유료화하여 매년 1조 원이 넘는 디지털 콘텐츠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비자가 구독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 만들 수 없느냐가 핵심적인 과제이다.
국내 방송사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미디어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구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능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지상파 방송을 돈을 지불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붙어 있는 광고를 봐주기만 하면 되었다. 구독 경제의 시대라고 한다. 지불가치가 있으면 기꺼이 돈을 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불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집중하고 천착해야 한다. 메가스터디 같은 수능 콘텐츠는 편당 제작비가 100만 원도 넘지 않았을 것이다. BBC의 세계적인 자연 다큐멘터리 <플래닛 어스>는 10부작에 360억 원을 투자했다. 물론 1,2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제작비의 과다와 과소를 넘어 지불가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발견해내는 통찰과 기술이 필요할 때다.
지상파 방송이 이런 통찰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현재 방송의 위기가 외부 미디어 환경변화에서 초래되었다는 데 이견을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미디어는 성공하였고 어떤 미디어는 실패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방식과 관행에 집착하고 있는 미디어는 망하고 있고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발견한 미디어 기업은 흥하고 있다. 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HBO는 이런 미디어의 위기를 콘텐츠로 극복하고 있다.
기존의 관행과 문화를 뛰어넘기
HBO도 1995년 자기 부정을 통해 넷플릭스의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HBO는 1995년 이전 스포츠, 공연 프로그램 중계, 할리우드 영화 등 준 종합편성 채널이었다. HBO의 창의성 부서 책임자인 크리스 알브레히트는 이 같은 편성 구조를 자체 제작 프리미엄 드라마 채널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극단적 프리미엄 전략을 펼쳤다. 제작비를 6배나 올렸다.
R&D 비용도 배 이상 올렸다. 그리고 작가와 PD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주었다. 그 이전에 맛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문법, 극사실주의 드라마가 안방을 강타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OZ>와 <소프라노스>다. HBO의 경영진은 기존의 관행과 문화를 뛰어넘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자”고 했다. 그때의 HBO 철학은 “It’s Not TV. It’s HBO.”라는 슬로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카소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면 동시대 예술을 살해해야죠”라고 말했다. 방송이 살아남기 위해선 동시대에 당연시되고 있는 관행과 방식을 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에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현재 관료화되고 관행화되어 가는 고식적인 방송문화를 살해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와 콘텐츠에 총력을 기울일 때 답이 나올 것이다.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모바일이든 미디어에 상관없이 살아남을 콘텐츠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어떤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책이 살아남고 영화가 살아남듯이 방송도 살아남을 것이다. 문제는 방송이 아니라 방송에 실어 보낼 콘텐츠가 아닐까?
*임종수 세종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인터뷰 일부
구독 플랫폼에서의 스토리텔링: 에픽
자신의 삶에 깊이 침잠해 있는 미디어에서 수용자는 무엇을 얻는가? 광대역 OTT 미디어 양식과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은 어떤 모습인가? 아마도 중심 키워드는 에픽(epic)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의 지향점은 물론 전통적인 디즈니의 콘텐츠 서사도 기본적으로 에픽이었다. 에픽은 장쾌한 스타일로 쓰인 장편 서사문학에서 시작한 것으로, 19~20세기 전후 영화에 적용될 때 장시간에 볼거리와 현실감 있는 액션, 이국적 풍경, 그에 따라 많은 수의 캐스팅과 대량의 예산을 투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은 큰 나라, 세계, 우주를 아우르고, 거대한 배경 하에서 한 국가나 사람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일을 수행해낸다. 서사극영화백과사전에 따르면(Santas, Wilson, Colavito, & Baker. 2014), 서사극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같이 3~4시간짜리 단편영화에서 시작해 현대에 와서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시리즈, 넷플릭스의 시그니처 콘텐츠 <하우스오브카드> 같은 시리즈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트랜스미디어 환경, 수용자 이동성의 강화, 개인 시청의 증가 등으로 인해 한 편의 긴 시간의 콘텐츠에서 시리즈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서사극 형식은 미디어 환경과 그것을 즐기는 신세대의 취향에 따라 유지, 정제, 현대화되고 있다.
에픽의 스토리텔링을 디즈니가 주도했다면, OTT 에픽 시청은 넷플릭스가 그 문을 열었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서사극 시청과 유사한 서사극적 시청(epic viewing) 경험을 유도하는 콘텐츠 서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가 자신의 플랫폼이 시리즈물의 일괄출시와 몰아보기에 적합한 서사극적 시청의 속성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 양식은 이 같은 점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항상 자사의 콘텐츠는 물론 라이센싱된 것마저도 몰아보기 했을 때, 더 나아가 다시보기 했을 때 ‘가장 잘 시청’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에픽 서사가 주는 효능은 몰입의 즐거움이 주는 어떤 문화적 충족감이다. 몰아보기든 뭐든 전통적으로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시청 공동체의 집단성이나 껄끄러운 즐거움(guilty pleasure)일 뿐이었다. 하지만 개인의 삶 속에 깊이 천착한 미디어에서는 오락적 즐거움과 함께 자신의 삶의 가치나 세계관 등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소설이나 철학,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그것도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에 몰두하면서도 전례의 도덕적 비난이 훨씬 적은 것은 그 때문이다.
*<포노 사피엔스>저자 성균관대학교 교수 최재봉 인터뷰 일부
중국 상하이에 보면요, 걸인들, 심지어 나이 많은 노인들이 구걸을 QR코드로 해요. 왜? 아무도 현금을 안 갖고 다니니까요. 다들 현금은 없고 스마트폰밖에 없으니까요. 사람들한테 ‘한 푼만 찍어서 보내주세요’ 하는 거예요. 그렇게 통장에 받은 돈으로 자신도 페이를 하고 다니는 거죠. 중국엔 소매치기도 아예 없어졌어요. 아무도 현금이 없으니까 소매치기가 훔칠 게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조금 이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저마다 새로운 콘텐츠에 도전하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 너머, 그러니까 포스트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어떨까요?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소비자 권력 시대에요. 자기들이 마케팅하고 자기들이 팬덤 만들어서 BTS를 만들고 보람이도 키우고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 방송국의 권력, 정치 권력, 재벌의 자본이 가진 권력이 많이 옅어지고 소비자가 직접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거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봤더니 ‘진정성’이더라는 거예요.
<보람튜브>의 성공 비결이 뭘까요? 보람이가 그냥 노는 거예요. 해외의 일곱 살 라이언도 똑같아요. 아이들이 보는 게 다 똑같은데, ‘쟤는 나하고 노는 게 똑같네. 그냥 재밌게 노는데 나도 보니까 재밌네’ 이거거든요. 또 지금 왕훙이라든가 여러 V로그 하는 사람들도 보면 대부분 유튜브에서 오랫동안 심지 있게 전문성 있게 방송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것과 똑같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저는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 문명의 핵심은 인간의 진짜 마음을 살 수 있는힘, 그 원천은 뭐냐? 휴머니즘이다.’ 이렇게 얘길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요새 마지막 인터뷰하신다면서 한 얘기가 ‘이제 자본으로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고 마음으로 장사하는 시대, 공감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공감을 통해서 팬덤을 만든다는 거죠. 그럼, 공감의 핵심은 뭘까요? 그게 진정성이라고 봐요.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팬덤을 만들어요. 이제 숨길 수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누가 앞에선 바른 척하고 뒤에 가선 마약 파티하고 그러면 금방 끝날 거 너무 잘 알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정말 사랑을 받고 그게 진정한 권력이 되는 시대가 온다, 그게 포스트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팬덤, 진정성, 공감, 휴머니즘…. 방송을 시작할 때 누구나 품었을 그 마음을 새로운 출발의 지점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이야. 어쩌면 최재붕 교수가 말한 포스트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미수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글 일부
그동안 나의 수족처럼 일해 준 이 두 눈의 상태가 경주마가 10kg짜리 모래주머니 열 개를 매달고 달린 꼴이란다. 수백 개의 촬영 테이프와 수백 장의 프리뷰 노트와 매일 씨름하면서 결국 서른아홉 살에 돋보기를 품에 안고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그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경기장에 등판해야 했던 불쌍한 나의 두 눈에게 첫째는 미안했고, 서른아홉에 돋보기를 쓸 정도로 빠르게 노화한 내 신세가 처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