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소설
한 두 달 전쯤부터 자꾸 환경, 재난 같은 단어들에 마음이 갔다. 그 전에도 환경콘서트를 간다거나 재활용 쓰레기 분류법을 일일이 찾아보는 등 약간씩은 관심이 있었지만 특정 키워드에 '마음이 가는 것'을 나는 일종의 대중적 시그널로 여긴다.
신기하게도 최근에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UN 기후 정상회의가 열리기도 했고, 9/20-27이 국제 기후 파업 주간이기도 했다. 물론 그전부터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뜨거웠는데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던 찰나에 타이밍 좋게도 닐 셔스터먼과 재러드 셔스터먼의 책 <드라이>를 접하게 됐다.
내 최애 드라마는 '워킹데드'다. 본 드라마는 많지만 '재밌어서' 끝까지 본 드라마는 손에 꼽는데, 워킹데드는 두 번이나 정주행 했다. 재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악한 본능과, 그럼에도 피어나는 가련한 인간애가 뒤섞이는 복잡함이 좋다. 이 책은 워터 좀비다. 물론 진짜 좀비는 아니고, 목마름에 판단력을 잃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드라이>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단수가 지속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약 일주일 정도, 짧은 기간의 기록이지만 너무 강렬해서 체감상 한 달은 함께 한 것 같다.
이 재난의 진짜 공포는 자연스러움이다. 평범한 어느 날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꾸르륵 소리가 나더니 물이 나오지 않는다. TV에서 앵커가 수자원 위기에 대해 떠들기는 하지만, 쓰나미가 덮친 것도 아니고, 대규모 화재로 폐허가 되어버린 것도 아니니 뉴스에서는 이 사안을 크게 다루지 않는다. 금방 조치를 취할 것 같다. 가족들은 '설마 죽기야 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물을 사러 코스트코로 향한다.
코스트코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다들 불길한 느낌을 숨긴 채 고상하게 카트를 밀고 있지만 누군가 발이라도 헛디디는 순간 곧바로 불도저처럼 생수 칸으로 돌진할 기세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불길한 기운은 점차 마을을 덮쳐온다. 정부 차원에서 해변의 물을 끌어다 쓸 정화조를 준비했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전부 해변으로 몰려 간다. 주인공 얼리사의 부모님도 그녀와 어린 남동생 개릿을 집에 남겨둔 채 떠난다. 하지만 금방 올 줄 알았던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고, 얼리사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 모험길에서 세 명의 또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잘 알겠지만 때로는 순수할 줄 알았던 십대 아이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중간에 십 대 아이들 특유의 중2병스러운(?) 독백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극 전체에 걸친 몰입도와 처절함이 마음을 건드린다. 충분히 멋진 재난 소설이다. 따뜻한 주제의식도 좋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스핀오프 버전이 궁금하다. 십 대 아이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만큼 안쓰럽고 뭉클한 지점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또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인 '빌어먹을 세상 따위'가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화도 확정되었다고 하니, 꼭 챙겨 볼 생각이다. 아래는 읽던 중 마음에 들어서 밑줄 쳐 놓은 구절들이다.
사람들은 수도꼭지가 말라 버린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지도 몰라. 대통령이 암살된 순간을 기억하듯이.
왜, 가끔 첫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얼마나 목말랐는지 깨달을 때 있지 않나? 지금 내 느낌이 그랬다. 그저 냉장고 안을 한번 훑어봤을 뿐인데.
소피아의 단답형 대답이 가슴을 쿡 찔렀다. 평소라면 돈을 준다 해도 좀처럼 입을 다물지 않는 애였다.
호화 주택 단지가 하루아침에 고급 시체 안치소로 둔갑한 셈이다.
마치 다른 지역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이벤트로 전락한 듯했다. 내 기억에 나는 늘 다른 지역의 피해 소식을 접하는 쪽이었지, 재난의 한 복판에 있어 본 적은 없었다.
디즈니랜드 정상화를 알리는 첫날이었다. 에메랄드 게이트 너머로 입장 대기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소년은 그제야 감이 왔다. 사람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왜 이곳에 와야만 했는지.(중략) 빛나는 에메랄드 게이트가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돌아온 인간성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