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미 May 03. 2019

넷플릭스 <페르소나>에 관한 솔직한 감상

2019년 NETFLIX 4부작 옴니버스 드라마

ep.1 러브세트
결혼, 안 하면 안 돼요?

치기를 숨기지 못하는 서투른 청소년의 모습이 어울리지만은 않는 아이유. 아니, 캐릭터 자체는 재미있지만 표현 방식이 잘 와 닿지가 않았다. 단시간에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기에 외국인 친구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 아빠에게 매달려 무작정 떼쓰는 모습 등은 좀 부족한 것 같다. 뭔가 다른 상황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영화가 좀 더 길어서 저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뭔가 1차원적인 스포일드 차일드의 모습만 보여서 아쉬웠다. 아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좀 더 드라마틱하게 굴욕적이었다면 연민이라도 느끼며 캐릭터에게 애착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도 갑자기 '결혼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불쑥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장면은 조금 괜찮았다.


또 배두나 캐릭터도 왜 '네 남자 친구랑 결혼해라'라고 딜을 거는지, 왜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건지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났다. 손끝으로 전해진 동성애인가? 배두나가 아이유에게 거는 딜 자체가 쫄깃하지 않으니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게임 과정에 크게 감정이입이 되지를 않았다. 다 보고 나서 이게 끝인가? 싶었다. 동성애로 해석해내기가 나는 조금 어려웠다. 역시 나는 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걸 좋아한다.


하지만 배울 점도 분명 있다. 우선 특별한 색감이 있다. 마냥 눈이 시리게 싱그럽지도 않고 마냥 분위기 잡고 묵직하지도 않다. 살짝 뿌옇고 바랜 듯 하지만 청량한 색감이 새로워서 마음에 든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리듬감도 좋다. 복숭아를 먹을 때, 테니스를 칠 때, 벤치에 앉아 고개를 돌릴 때. 운동을 가장한 섹슈얼한 몸짓과 소리는 분명 사람의 시선을 끈다. 예술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쥬시 쥬시한 첫 장면은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광고 같다. 배경음악을 무난하게 깔리는 부수적 요소로 취급하지 않고, 전면에 내세워 가지고 노는 연출을 좋아한다. 스토리보다는 색감과 소리를 포함한 통통 튀는 연출들이 좋았다.



ep.2 썩지 않게 아주 오래
꼭 A 다음에 B가 아니고,
1 다음에 꼭 2가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야.

제목을 보고 단번에 아이유 노래가 생각났는데 역시나 인터뷰를 보니 '아이유 씨의 '잼잼'이라는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스토리다'라고 하더라. 뭔가 블랙 미러처럼 콘셉트는 좋은데 블랙 미러만큼의 떡밥이나 스토리가 없는 게 아쉽다. 짧은 에피소드라도 블랙 미러를 보고 나면 '아!' 혹은 '맞아..' 하는 감정적 연결고리를 느낄 수가 있는데 페르소나는 뭔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리송하다.


처음에는 폴리아모리(polyamory)를 설명하려는 영화인가 싶었는데, 아이유는 딱히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는 데다가 결말까지 보면 결국 그런 사람은 전부 마녀라는 맥락으로 가버리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유는 단순히 심장을 수집하는 마녀였다. 끝. 그 이상의 뒤통수를 때리는 메시지가 안 보였다. 그녀가 심장을 수집하는 마녀지만 사실 그게 그녀만의 사랑방식이었다거나..? 뭔가 더 배운 변태 같은 결말을 보여줬다면 좋았을 텐데. 다만 다른 리뷰에서 남자가 실제 심장을 주며 죽어가는 모습이,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결국 그들을 망가뜨린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있었다. 오호. '남자는 여자와 자기 위해 대화하고 여자는 대화하기 위해 남자와 잔다'는 대사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메시지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거다. 여자가 남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기도 하고 남자도 대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감독의 시선이 그렇다면야.


게다가 뜬금없이 심장이 실제로 튀어나와 버리는 것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판타지가 재미있으려면 world building이 탄탄해야 한다. 그냥 막 이것저것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게 판타지가 아니라 그 세계만의 규칙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감독의 전작을 보니 판타지 장르가 몇 개 있는데 단편 영화라 그런지 마지막에 뜬금포로 심장이 튀어나오면서 '사실 장르가 판타지지롱' 해버리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이유의 치명적인 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연기에서 마녀의 요염함, 섬뜩함, 처연함 등 다채로운 감정이 느껴졌다면 재밌었을 텐데 내가 보기에 아이유는 심통난 표정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루해졌다. 다른 배우(예를 들면 천우희,, 김민희..?)가 연기했다면 훨씬 빨려 들어갔을 것 같다.


커피숍 씬에서 다른 말들은 다 멩,, 싶었지만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린다는 이유를 들어 신이 여자에 가깝다고 생각한 점은 신선했다. 나로서는. 또 박스 안의 세계가 연극 연출 같아서 그것도 재밌었다. 처음에 박스 안 남자의 목이 잘릴 때 기대감이 확 상승했었다. 그 후의 심정 변화도 더 기이하고 직관적으로 보여줬다면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았을까.



ep.3 키스가 죄
너네 아버지도 다쳐봐야지.

가장 아이유에게 맞는 옷을 입힌 각본. 내가 좋아하는 '어설픈 작당'이다. 귀엽고 가벼운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를 불태워 죽여버린 건가? 그렇다면 정말 임팩트가 강한 영화다..



ep.4 밤을 걷다
언니는 죽는 순간에 입을 벌렸어. 안간힘으로 마지막 숨을 쉬고 싶어서. 그렇게 입을 벌리고 죽었어. 그래서 나는 절대 죽을 때 입을 벌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죽을 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삶에 저항하겠다고.


아.. 뭐랄까. 오랜 시간 투병을 한 가족이 생각났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던 모임도 생각났다. 나는 입을 다물고 죽겠다는, 그래서 피가 흘러 코로 숨을 쉴 수 없는데도 입을 다물고 죽었다는 그 심정이 너무 처절해서 애정이 갔다. 마지막 숨을 들이켜고 싶어서 미라처럼 입을 벌리고 탐욕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다 사라지고 밤뿐이네.

<밤은 걷다>는 네 작품 중 가장 긴장하면서 봤다. 아이유의 다정한 듯 무표정한 얼굴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귀신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서 그럴까? 이 느낌이 <썩지 않게 아주 오래>에서 살았다면 마녀 아이유를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다. 죽은 애가 남자의 꿈속에 왜 찾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집중해서 결말 부분에 뭔가 반전이 드러나고 아이유가 남자 뒤통수를 때리고 서늘하게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 많이 상상했나 보다. ㅋㅋ 예상과는 빗나갔지만 이 영화 그대로도 좋다. 특히 회상 공간이 꿈이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꿈은 깨고 나면 당사자조차 기억을 못 하니까. 그냥 그렇게 영원히 사라지니까. 정말 똑똑한 콘셉트이다.



기획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는 곳에 꽤 많은 정답이 있는데
많은 쪽이 안전한 데서 답을 찾으려고 하더라.

기획자 윤종신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동감. 그런 의미에서 멋있는 도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의연인 보보경심: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