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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Feb 20. 2020

대중대중 열매의 끝판왕 <사랑의 불시착>

2020 상반기 tvN 토일 드라마

*아주 주관적일  있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기본정보

작가: 박지은 (KBS 넝쿨째굴러온당신 SBS 별에서온그대 KBS프로듀사 SBS 푸른바다의전설)

감독: 이정효 (tvN 로맨스가필요해1,2 tvN 굿와이프 OCN 라이프온마스 tvN 로맨스는별책부록)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장르: 판타지 로맨스



로그라인

어느 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절대 극비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셀링포인트

캐릭터/ 대본구성/ 연출/ 배우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대중대중 열매 먹은 연출과 캐릭터다. <사랑의 불시착> 보면서 가장 많이 뱉은 말은 '이게 드라마지!'였다. 뻔뻔하게 대중성을 팍팍 뿌려 넣는데 그게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좋았다.


[금기를 깨부수는 목숨 건 사랑]

남한 여자와 북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둘 다 돌아가야 하는 집이 있다. 둘의 사랑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자동적으로 금기가 생긴다. 금기는 늘 재밌다. 만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목숨을 거는 건 언제나 옳다. 목정도는 걸어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덕분에 마지막에 윤세리와 리정혁이 남북 금단선 넘어서 껴안는 씬은 매우 극적이다. 솔직히 이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 철조망 씬 뺨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통한다.



[대중적인 유형의 캐릭터 모음]

대중대중 열매를 먹은 <사랑의 불시착>은 잘 팔릴 캐릭터 투성이다. 예전부터 수많은 대중 작품에서 사랑받았던 유형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똑 부러지는 부잣집 아가씨와 잘생긴 사기꾼의 진실된 사랑 (서단-구승준)
-멋있는 대장과 뽀시래기들 (리정혁-부대원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 몸을 내던지고도 행복만을 빌어주는 남자 (윤세리-리정혁)


고전부터 해서 생각 나는 작품이 많지 않은가? 다른 캐릭터의 탈을 쓰고 나와도 모두가 또 볼 거다. 새롭지 않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 설정이다. 덕분에 메인 커플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탄탄하게 느껴졌다. 특히 개인적으로 <타이타닉>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서브 커플 서사가 메인 커플보다 더 좋았다. 또 자신들의 캐릭터를 부각한 부대원들의 연기와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연출이 잘 맞아떨어져서 모든 캐릭터가 다 살았다.



['재미와 놀이'파트는 영혼을 갈아서라도 재미있게]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Save the Cat!>이라는 시나리오 작법서에 따르면 모든 영화에는 '재미와 놀이' 파트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부분, 아이디어의 멋진 부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이다. 액션 영화라면 추격전, 로맨스라면 고백 장면 등이 해당될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가장 특이한 건 '북한'이다. 남한 혹은 북한에 떨어졌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되는 건 문화 차이로 벌어지는 소동이다. 드라마는 부대원들을 통해 이 부분을 정말 팍팍 살려줬다.

그밖에도 윤세리가 북한에 떨어져서 헤맬 때 '천국의 계단' ost가 나오며 패러디 식으로 연출이 된다. 똑같은 숲길을 헤매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장면을 멋지게 살려냈다. 16부작이나 되는 드라마에서 힘을 줘야 하는 장면을 아는 게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파를 드라마로 만드는 연출]

보통 한국 드라마는 너무 눈물을 쥐어짜서 싫다고 한다. 일명 신파. 가장 친한 친구도 그 이유로 한드를 안 좋아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었다. 나도 기부금 내게 하려고 일부러 슬픈 장면만 보여주는 광고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캐릭터와 같이 우는 게 따뜻해서 드라마가 좋았다.


리정혁이 리무혁 죽는 순간의 녹음을 들으면서 우는데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였는데, 누군가는 이걸 보면서 또 신파라고 할까? 도대체 왜 어떤 장면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어떤 장면은 눈물이 나는 거지? 사실 아직까지도 답은 모르겠지만 얼마나 설득하느냐의 차이겠지. 누군가의 마지막 숨소리를 듣는 건 일면식 없는 사람일지라도 가슴이 쿵한다. 가끔 뉴스에 급발진으로 사망한 사람의 블랙박스가 나올 때처럼. 그러니 형이면 오죽할까. 나는 그래서 설득됐다. 이미 세상에 없는 형의 사랑을 녹음기로 연출한 게 좋았다. 드라마에는 이 외에도 두세 번 정도 녹음기를 이용한 속마음 연출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드라마의 본질은 공감에서 나오는 눈물이라는 생각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신선한 소재, 뭔가 강렬한 전개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의 섬세한 사연으로 감정을 건드리는 것, 우리를 평범한 그 사람의 사연 속으로 끌어들여 특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역시 그게 드라마인 것 같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여성 캐릭터]

Jtbc <초콜릿>과 번갈아 보면서 생각했다. 같은 로맨스인데 왜 하지원은 재미없고 손예진은 재밌는가? 물론 연기력도 있겠지만 캐릭터의 당당함에서 오는 차이가 큰 것 같다. <초콜릿>의 하지원은 색깔이 없었다. 남을 위한 천사표가 되느라 자기 마음이 뭔지도 모르는 느낌이었다. 반면 손예진은 '어서 가세요'머리를 하고도 눈에 띄지 말라는 정혁의 말에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리고 남한으로 넘어온 후엔 세련된 옷을 입고 '서울은 내 구역이야'하고 멋지게 웃으며 부대원들을 지켜준다. 이런 뼛속까지 가식 없는 자신감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개선점

솔직히 드라마 보면서 메모하기가 귀찮을 정도로 재미있게 봤다. 가끔 유치하긴 해도 충분히 애틋한 사랑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개선점을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누군가의 불행을 이용하는 씬에 대한 고민]

완급조절이 가장 어려웠을 텐데 남도 북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메시지는 전반적으로 잘 전달한 것 같다. 그러나 가끔씩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편견을 적극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꽃제비 에피소드가 그렇다. 세리와 정혁의 따뜻한 인간성을 보여주기 위해 꽃제비를 이용한 억지 감동을 연출하는 게 불편했다. 먹거리를 받은 꽃제비는 동생에게 돌아가 행복하게 웃는다. 사회학자도 아니고, 그들의 가난을 본격적으로 해결해주는 게 드라마의 목적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은 아니었으면 했다.


먹을 것 쥐어주고 다 해결된 것처럼 따뜻한 연출은 보는 사람을 위한 행복이지, 저 애들은 하루만 지나면 또 굶어야 할 거다. 물론 다큐가 아니라 드라마지만 북한은 가상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곳이기에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쉽게 가지 않고 조금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어디 취직을 시켜주는 식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갑자기 아들이  리정혁?]

로맨틱 코미디는 공식이 많다 (이전에 <또 오해영!>을 보며 정리해둔 게 있는데 나중에 올려야겠다). 그중 하나는 남녀의 성질을 명확히 구분해 재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젠더 이슈가 가속화되면서 로코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장르적 특성이니 어느 정도는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혹은 영리하게 <동백꽃필 무렵>처럼 재빨리 전략을 바꿔 또 시청자를 끌어들인 케이스도 있었다.

 

<사랑의 불시착>도 북한에선 리정혁이, 남한에선 윤세리가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으로 힘의 무게를 공평하게 주려고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읭?싶었던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윤세리가 남한에서 게임하는 리정혁을 나무라는 씬이었다.

요즘 부부 예능을 봐도 흔히 나오는 게 5분만 게임한다고 눈치 보는 남편과 그를 째려보는 아내다. 나는 늘 이게 이해가 안 됐다. 일단 게임하는 남편을 철부지 취급하는 것부터가 편견 가득한 시선인 것 같았고, 아내는 동반자이지 엄마가 아닌데 왜 이런 그림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지 이상했다. 엄마와 아들 같은 이미지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닭살이 돋았다.


리정혁과 윤세리의 애틋한 로맨스는 좋았지만, 뜬금없이 아들을 혼내는 잔소리 엄마 모드의 윤세리가 튀어나올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로코에서의 남녀 특징에 대해 더 고민해줬더라면 싶어 아쉬웠다.


[갑자기 빠진 구승준과 급비혼주의자가 된 서단]

구단 커플의 캐릭터 유형은 좋았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10년 동안 사랑인지 집착 인지도 모른 채 자신 안에 갇혀 살던 서단은 구승준을 통해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듯했다. 그런데 구승준이 죽어버렸다. 그것도 잘 집중하지 않으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두 커플의 서사가 쏙 빠져버린다.

로코는 특히 장르 규칙이 명확하다. 시청자도 대강의 흐름을 안다. 우연히 만난 남녀가 알고 보니 운명이어서 여러 위험에 처하다가 결국 사랑을 이루는 거겠지. 다 알고 있지만 바로 그게 보고 싶어서 선택하는 거다. 그러니 해피엔딩은 일종의 약속인 것이다.  따라서 굳이 새드엔딩이라면 그만큼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절절한 여운 같은 것. 그런데 구승준의 죽음은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고 서단은 번갯불에 콩 볶듯이 나 이제 비혼주의자!하고 끝나버리니 이 커플은 왜 존재했나 싶다. 시기적절하게 메인 커플들을 위해 이용만 당하다가 끝나버렸다. 둘이 영국으로 건너가는, 아니 서로를 추억하는 한 장면 정도만 보여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타깃 적중률/시청률/화제성

tvN 타깃은 2049. 특히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 구조, 그리고 (물론 권상우 소라게가 계속 짤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2003년 방영된 <천국의 계단>과 최지우를 계속 언급한 것으로 봤을 때 30대 후반-40대 여성을 핵심 타깃으로 잡은 것 같다.


시청률은 마지막 회 21.7%로 역대 tvN 최고다. 화제성도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힐 만큼 뜨거웠던 것 같다. 현빈 손예진에다가 최초로 북한을 묘사하는 드라마이니 기대할 수밖에. 게다가 별그대 박지은 작가, 라온마/로필 이정효 감독이니 믿고 볼만했다.


한 기사에서는 <스토브리그>와 함께 비주류 소재가 대박을 친 것으로 보아 새로운 소재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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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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