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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Feb 22. 2020

알록달록 감성SF<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드라마화 성공 가능성: 3


김초엽.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생화학 석사 학위도 가진 젊은 작가다. 어릴 적 과학 소설의 매력에 빠져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한국에 SF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감성적인 제목의 소설집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김초엽의 글은 SF의 이미지와 달리 잔잔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중 마음에 들어온 두 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스포일러있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음반으로 치면 타이틀 곡과 같은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가장 그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셀링포인트

[캐릭터/가장 낭만적인 비효율]

물건을 사려고 블로그 리뷰를 보다 보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자신처럼 각종 방법을 동원해 최저 중의 최저가로 사지 않으면 바보라는 뉘앙스의 글을 볼 때가 그렇다. '이런 건 기본이겠죠?ㅎㅎ'하며 웃는 게 얄미웠다. 극강의 효율을 따져야만 승리하는 사회가 가끔 버거웠다.


안나 할머니는 출발 날짜도 없는 티켓을 가지고 우주정거장에 앉아있다. 가족들이 오래전 이주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이미 폐쇄된 정거장. 직원이 찾아와 지구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겠다고 하자 그녀는 몰래 자신의 셔틀에 올라탄다. 그리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제는 길이 끊겨버린 행성을 향해 떠난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애니메이션 <업>이 생각났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도 생각났다. 객관적으로 바보 같아 보이지만 확신에 차서 자신의 길을 떠나는 사람. 한없이 미련해 보이는 고구마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만, 잘 연출하면 냉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잊고 싶지 않은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할머니가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똑똑한 과학자인 덕도 있지만 젊은이의 태도를 다 이해한다는 듯 굉장히 담담하기 때문에 한심하기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아도 하는 거야.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보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외로 SF가 그런 장르인 것 같다. 김초엽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주제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비효율적인 걸 알면서도 기꺼이 웃으며 그 길을 걷는 캐릭터, 참 매력적이다.



[주제/냉동인간에 대한 고찰]

아주 잠깐이지만, 모든 불행의 해결책일 것 같던 냉동인간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비(非) 죽음. 그러나 역시 이론적으로 따져봤을 때 최선의 선택이 꼭 행복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냉동인간에 관한 드라마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철학적인 대주제로 선정하기 좋은 것 같다.



관내 분실

단번에 블랙 미러가 떠올랐다. 사실 뇌만 보존하면 똑같은 사람일까? 하는 물음은 여러 형태로 이야기되어 왔다. 웹툰 <기기괴괴>의 에피소드로도 있었던 것 같고, 15년 전 논술학원 지문으로도 나왔었다. <관내 분실>에서는 납골함 대신 뇌 데이터를 도서관에 보존하는 방식으로 망자와 대화할 수 있다. 또 꽃 대신 꽃을 모방한 데이터 조각을 넣어 조의를 표한다.


셀링포인트

[죽은 엄마를 이해하는 서사]

이 단편이 좋았던 이유는 딸이 뒤늦게나마 죽은 엄마와 교감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SF 장르는 화려한 과학기술도 좋지만 결국 서사가 중요하다. 인간에 대한 어떤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내가 딸이라 그렇겠지만 엄마가 한 개인으로 인정받는 서사에 늘 마음이 간다.

어떤 친구는 누나와 철없는 남동생이 나오는 서사를 보면 무장해제된다고 했다. 자기가 누나한테 미안한 게 많아서 그렇단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겪은 상황일수록 신파가 아닌 감동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구의 이야기로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여러 회차에 걸쳐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매체인 것 같다. 저 부분을 읽고 영화 <클래식>도 잠깐 생각났는데, 너무 오래전에 봐서 가물가물하다. 엄마 옛날 연애편지 발견하면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안 그래도 요즘 아련지수 0인데 다시 봐야겠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호텔델루나>가 잠깐 생각났는데, 거기서는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관내 분실>은 남은 자의 후회와 미안함을 들어주는 것에 집중했다. 도서관의 '마인드'가 실제 죽은 사람의 자아일지 그냥 복사된 데이터일 뿐일지는 끝내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죽은 자와 산 자는 손을 잡고 눈물 흘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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