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 Netflix 12부작
*아주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기본정보
작가: 류용재, 김환채, 최성준 (tvN 싸이코패스다이어리 작가진)
감독: 이상엽 (tvN 쇼핑왕루이 아는와이프)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장르: SF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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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홀로그램과 사랑에 빠진 여자가 홀로그램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특별한 서정 로맨스
(남모를 아픔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외톨이가 된 소연과 다정하고 완벽한 인공지능 비서 홀로, 그와 얼굴은 같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개발자 난도가 서로를 만나, 사랑할수록 외로워지는 불완전한 로맨스를 그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링포인트
캐릭터/ 대본구성/ 연출/ 배우
[홀로와 나만의 프라이빗 드라마]
이건 딱 5-6화 정도 까지. '나만의 인공지능'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고성희와 홀로, 둘만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뭔가 프라이빗한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은 고성희 브이로그나 다름없었지. 고성희 연기도 되게 조심스럽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과하지 않게 서정적이라 부담 없이 몰아보기 정말 좋았다. 이거야말로 나 '홀로' 그대라는 컨셉과 딱 들어맞는 전개! 몰아보기는 넷플릭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반쯤부터 갑자기 공권력과 재벌 이야기가 밀고 들어오면서 사랑스럽고 소소한 분위기를 전부 망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 밑의 개선점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윤현민과 고성희]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거의 80%가 배우 연기다. 일단 고성희가 너무 사랑스럽다. '조금 소심하지만, 호기심 많고,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묘사에 딱 어울리게 연기한다. 보고 있으면 절로 기특한 마음? 같은 게 든다. 서현진이랑 비슷한 라인. 고성희가 안경집을 때마다 나는 그 찰진 소리도 너무 좋다.
윤현민도 스윗하다. 1가정 1홀로가 시급하다는 말이 아주 턱끝까지 차오른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행복과 편의만을 생각하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겠지만 윤현민의 목소리와 차분함이 한몫한다. 인공지능의 매력 중 하나는 욱하지 않는 차분함인 것 같다.
[연출]
사실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들면 잘 보이지 않는 게 연출인데, 그럼에도 와! 하고 감탄한 장면이 두 개 있었다.
다정한 홀로와 소연. 하지만 눈 위엔 소연의 발자국만 있다. 사랑하면서도 어쩐지 공허한 현실을 잘 느껴졌다.
위험에 빠진 소연과 난도.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지만 안경을 써야만 볼 수 있는 홀로. 위 장면과 마찬가지로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인공지능의 쓸쓸함이 잘 느껴졌다.
개선점
[재벌기업, 깡패, 납치는 제발 그만]
감성 SF의 성공작으로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나를 보내지 마>, 영화 <그녀>, 그리고 영화 <어바웃 타임>가 생각난다. <나 홀로 그대>처럼 SF 소재가 소소하게 쓰인 케이스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끝까지 개인의 서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고 갔다. 드라마의 목적과 컨셉을 쭉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드라마는 회차가 더 길어야 해서 영화나 소설과 단순 비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고민해야 한다.
차라리 경찰이나 재벌 기업 얘기 빼고 삼각관계에만 집중했다면 훨씬 완성도 있는 로맨스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홀로 그대>의 중후반에 나온 내용은 인공지능을 다른 아무거나로 바꿔도 될 이야기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 큰돈... 어쨌거나 뭔가를 가진 개인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재벌기업 간의 싸움이다. 게다가 이 서사를 새로운 느낌으로라도 표현했으면 또 모른다. 아무 때나 그릇 집어던지는 고집불통 회장, 그를 두려워하는 아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납치해서 위협하는 수하들... 그 사이에 인공지능이라는 소재의 메리트는 희미하다.
[사랑에 대한 질문에 집중하기]
SF의 재미 중 하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영국 드라마 <휴먼스>가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잘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동성애자에게 '너는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 아니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거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이 본성인지 선택인지, 그런 것들을 질문한다.
<나 홀로 그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할 수 있어.
그저 네가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고
너만 바라보는 그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어. 사랑.
이라고 말하는 인공지능 홀로에게 소연은 사랑을 느낀다. 그렇다면 변덕스러운 사람보다 나만 봐주는 기계와의 사랑이 더 완벽하게 행복할까. 사랑이 그런 것에 불과한 걸까. 또 소연은 홀로와 연애 비슷한 걸 하면서 점점 더 만지고 싶어 한다. 만질 수 있어야만 사랑일까. (이 부분에서 김초엽 작가의 '감정의 물성'이 생각났다.)
이렇듯 사랑에 대한 여러 갈래를 잡아서 파고들 수가 있는데 <나 홀로 그대>는 '착한'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더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소연이의 사랑이 인공지능 홀로에서 인간 난도에게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옮겨가게 두었다. 또 홀로는 그 상황에서 사용자가 행복하니 자신도 기쁘다고 하여 갈등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 비슷한 예로 떠오르는 작품은 SBS 4부작 드라마 <엑시트>.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도 소재 자체는 꿈 실험? 같은 거라 괜찮았는데 전개가 진부했던 것 같다. 옛날 영화에 많이 나오는 사채업계 깡패들이랑 싸우는 밑바닥 인생의 처절한 남주.. 그를 위로하는 한 여자는 알고 보니 사장 스폰받고.. 가정폭력 휘두르지만 자기감정에 서툰 아버지.. 뭐 이런 거. 단순히 SF의 설정만 가져오지 않고 장르의 특성도 고려하면 훨씬 웰메이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위해 서사를 잃은 캐릭터들]
너는 네 결함들이 다 싫겠지만 난 그래서 네가 더 특별해.
우리가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서로를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이렇게 말한 홀로에게 감동받았다. 좋은 주제다. 그러면 끝까지 결함 있는 홀로랑 사랑을 했어야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소연이는 홀로와 연애 비슷한 걸 하다가 갑자기 난도를 좋아하게 된다. 이 환승이, 홀로는 만질 수 없는 인공지능이고 난도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큰 이유가 없어 보여서 좀 어이없었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진다'는 이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혹시 인공지능과는 아무리 사랑해도 외로우니 사람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가?
아무튼 난도와 이어진 후 소연이는 난도 마음의 상처 치료를 위해 전면 이용된다. 엄마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놈이고 (왜 그 나이 먹도록 엄마 심정 헤아릴 생각을 못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난도에게 네 엄마는 사실 널 사랑했던 거라고 설득하기 위해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니고 도대체 이걸 왜 소연이가 하고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목숨 걸고 뛰어다닌다.
최여진은 신상을 지운 채 유령처럼 살아가는 난도를 대신해 모든 대외적인 회사 일을 처리한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난도야, 큰일 났어!'인 것 같다. 투자자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테니 난도 너는 사랑만 해, 라며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못 박는다. 그런데 웃긴 건 투자가 진짜 막힐 위험에 처하자 갑자기 등장해 멋있게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건 또 난도다. 노래방 후렴만 스틸하는 거야 뭐야.
그리고 제일 불쌍한 홀로. 소연과 난도가 서로 마음이 있는 걸 감지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기쁘다고 활짝 웃는다ㅋㅋㅋㅋ 사랑의 감정은 느끼는 인공지능이 왜 실망이나 질투는 안 느끼는 건지 정말 궁금했다. 마지막 결혼식 씬, 전부 짝 맺어 하하 호호하고 불쌍한 홀로만 이상한 꽃 단 채 행복한 음악이 흐른다.
기능적인 주변 인물들 때문에 가만히 모든 걸 받아먹는 주인공이 미워 보일 지경이었다. 난도 자신은 목숨 바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니 더 좋아할 수가 없었다. 홀로, 소연, 난도의 변화하는 감정에 대한 부분을 가장 자세히 다뤄줬어야 했다. 특히 난도의 경우 자식 같은 홀로에게 연적의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훨씬 재밌었을 텐데.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을 질투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목적은 지키되 수정 가능한 장면들]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장면도 침착하고 다시 한번 드라마의 목적, 씬의 목적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작가가, 연출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벽치기는 남성의 폭력성이 아니라 사랑을 전달하기 위한 장면이었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 홀로 그대>도 정전됐을 때 남자가 여자 집에 몰래 숨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을 공포가 아닌 로맨스로 넘겨버릴 때 어쩔 수 없이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식는다. 또 아무리 회사가 곧 넘어갈 것 같고 초라한 상황이라도 자초지종 설명도 않고 (자기 딴에는 지켜주겠다고) 여자를 밀어내는 남자의 행동은 더 이상 연민이나 사랑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자기 상황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딱 그만큼만 사랑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는커녕 한심하다. 핵심을 보지 않고 젠더이슈에만 집착할 순 없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기본적인 필터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깃 적중률/시청률/화제성
<나 홀로 그대>의 시청률이나 화제성은 잘 모르겠다. 그냥 주변 사람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게시물에 잘 등장하지 않아서 체감 상 좋알람보다는 덜 한 것 같다는 느낌...? 해쉬태그로 검색해봐도 게시물 수는 현저히 적다. 아주 부정확한 방법이긴 하지만ㅋㅋㅋ
넷플릭스 홈페이지를 참고하니 24일부터는 top 10 리스트를 볼 수 있다더라! 지난 24시간 동안 최소 2분 이상 시청한 콘텐츠를 기준으로 측정한단다. 이제 베일에 쌓여있던 스트리밍 시청률을 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순전히 내 기준으로 보자면 6화까지는 적중률 5점 만점에 4점, 그 이후로는 1점.
관련 작품
소설 [프랑켄슈타인, 또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최근에 관련 글을 읽어서 그런가, 자아를 가진 AI를 보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 머리로 창조했지만 고유의 자아를 가지게 되는 존재. 게다가 메리 셸리 원전의 괴물은 현재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무의 상태로 창조됐지만 독학으로 학문을 배우고 또렷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지적인 생명체다. 다만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할 뿐이다. 물론 좀비가 직관적으로 프랑켄슈타인 스토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는 후대에 변형된 형태의 괴물에 가까운 것 같다.
출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