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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r 04. 2020

자라나라 상상, 상상! 끝까지 가는 인조인간 <휴먼스>

영국 드라마

*스포일러 있습니다


기본정보

<Humans> season 1-3 (2015-2018)

British TV series

Channel 4, AMC

Sci-fi


로그 라인

인간과 거의 흡사한 최첨단 로봇이 가정의 필수 아이템이 된 세상, 우연히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된 로봇이 한 가정에 판매된다. 그리고 연대한 로봇들과 일부 사람들은 모든 로봇을 각성시키는 코드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구조

시즌 1

각성한 인조(=로봇)들이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긴장). 한 명이 대표로 흩어진 각성 인조 형제들을 모으기 시작한다(목적 1). 한 가족과 엮여 아지트가 생긴다. 인조들 간 가치관 차이로 멸종 vs 정복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프로그램을 밝힌다(목적 2).


시즌2

아버지의 프로그램으로 인조들이 임의적으로 각성한다. 이들을 구하려는 자들 vs 빼앗아 연구에 이용하려는 자들. 소중한 인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전체 각성 코드를 작동시킨다. 이제 전 인조가 각성한 세상이 온다.


셀링포인트

[마음을 울리는 관계 설정]

많은 등장인물 중 '오디'라는 인조에게 가장 마음이 갔다. 이미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자주 고장 나는 오디를 주인인 조지 할아버지는 철부지 아들처럼 챙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인조지만, 오디는 이제 정든 가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가 죽기 전 셋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던 추억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의지해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둘. 고장 난 오디가 '할아버지는 살구잼을 좋아했죠'같은 옛날이야기만 하는 게 꼭 치매 같아서 짠했다.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오디를 재활용하러 오기 전 자기 손으로 폐기시키려 하지만 차마 망치를 휘두르지 못한다. 그렇게 숨어 지내다가 결국 총에 맞게 된 할아버지. 극강의 신기술이라면 그와 반대되는,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을 써서 아날로그적으로 풀어내는 게 감동적이다.

'죽었군요, 조지.' 이 무미건조한 말투도 왜 이리 마음이 아프던지.


시즌2에서 강제로 각성한 오디는 '네 삶을 살라'는 말에 떠밀려 나름대로 세상을 기웃거려보지만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평생 삶의 목적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치이던 그는 결국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스스로를 초기화하고 만다. 그를 해방시켰다고 생각한 매티는 미안함에 통곡한다.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인조라... 심지어 고해성사하는 장면까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자유도 준비된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는 거다.



한 편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줘서 어딘가 짠했던 카렌과 샘. 역시 인공지능 드라마의 포인트는 이거다. 가장 인조적인 것이 가장 감성적일 때.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영화 <A.I>도 생각났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무슨 의미인가]

막 각성한 인조는 말한다.

이 과도한 감정은 쓸모가 없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 가장 비효율적인 장치다. 사람은 미련하게 상처 받고, 아파하고, 언쟁한다. 더 완벽한, 더 효율적인 이상향에 도달하려 애쓰면서. 그렇다면 이미 완벽하게 효율적인 인조가 아니라 왜 인간의 삶이 아름다울까?


삶이 불안할 땐 인생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싶다. 지금 죽을 것 같아도 난 결국에는 잘 될 사람일 거야. 사주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인생이 날 것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때 말이다. 내 말 한마디, 선택, 노력으로 결과가 바뀌어버릴 때. 그 생생함 덕분에 인생은 재밌어지고 가능성으로 풍부해진다.


만약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계산된 결과에 따라 모든 일이 흘러간다면 안심은 되겠지만 사는 재미가 없겠지. 불완전하지만 그 예측 불가함이 쌓여 독특한 인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찬란한가 봐.



[인조 혐오: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장르, SF]

시즌3, 세상에 각성한 인조의 존재가 알려지자 즉각 혐오가 나타난다. no인조 zone이 등장하고, 한 인조가 폭동을 일으켰다는 뉴스가 나오면 인간은 지나가는 인조를 무자비하게 팬다. 심지어 국가에서 지정한 구역에만 거주하도록 강제하기까지 한다.


동성애, 인종, 노인, 여성.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인식하는 태도. 현실과 너무 똑같다. 인조인간 이야기는 소수자 혐오에 대한 비유다. SF가 왜 현실을 반영하는 장르인지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드라마는 정치다]

각성한 인조 중에서도 자신의 종이 세상에 혼란을 야기하므로 전부 몰살시켜야 한다는 의견, 혹은 신인류로서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중에서도 폭력을 원하는 파가 있고 평화 통일을 원하는 파가 있다. 자신의 경험과 경계심의 정도에 따라 그 강도가 다 다르다. 인조를 변호하는 인간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죽다 살아나 반인조-반인간이 된 존재도 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게 있다면, 모든 드라마는 정치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둘 이상 모여 의견이 부딪히는 순간 정치는 시작된다. 필수불가결 요소다. 흔히 들어온 '드라마는 갈등이다'라는 말과 비슷한 듯 약간 다르다. 가치관이 개입되어 논리적으로 편 먹고 갈등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는 지루한 게 아니라 세상살이였다.



[핍진성]

'청년 인조 정체성 장애'라는 병명이 있다. 아직 어려 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 자신이 인조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질환이다. 주인공 가족의 막내가 이 질환을 앓으며 늘 아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무감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인조 없는 마을'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마을도 있다. 옛날로 돌아가 인조의 도움 없이 생계를 꾸려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혹은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단체도 있다. 인조에게 빼앗긴 인권을 되찾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반대편에는 불임 부부를 위해 인조 아이 '세라핌'을 개발하는 연구소도 있다. 좋든 나쁘든 인조로 인해 변화한 세상을 이렇듯 세밀하게 상상할 때 드라마의 품격이 높아진다.



각색 방향

[확실한 캐릭터와 장르에 집중]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다양한 인조와 인간들의 이야기가 너무 조금씩 나와서 감정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보통 많은 외국 드라마들이 여러 주인공을 두기는 하지만 여기는 너무 많다. 양을 줄이고 질을 높이면 좋겠다. 특히 매티를 내세운 학원물, 오디를 내세운 로맨스, 로라를 내세운 사회물, 카렌을 내세운 가족 미스터리물 등 집중하면 확연히 재밌을만한 캐릭터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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