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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r 11. 2020

멋진 해답, <러시아 인형처럼>

2019 netflix 8부작

*스포일러 있습니다


잘 만들었다.

특히나 깔끔한 엔딩. 한번 보고는 뭐가 좋은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어서 두 번 봤다.

결과적으론 담백함이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


3화까지 봤을 때는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계속 봐야 되나 싶었는데 나디아의 트라우마가 나오면서부터 완전 몰입. 결국 상처 받은 남녀가 서로를 구원해준다는 다소 진부한 전개일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변주 덕에 느낌이 전혀 달랐다.


로그 라인

죽으면 매일 자신의 생일파티 날로 다시 돌아오는 타임루프에 갇힌 여자 나디아.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남자 앨런을 만나 그 이유를 더듬어 나간다.



셀링포인트

[퇴폐적인 여자, 귀여운 남자]

퇴폐적이고 히피스러운 여자와 착하고 감정적인 남자의 조합. 반전으로 여자는 꽤나 과학적이고 똑똑하다. 기존에 잘 보지 못했던 조합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둘이 나이 차이도 나 보여서 그냥 우연히 같은 문제에 처한 파트너 정도로만 봤는데 성적으로 엮이는 걸 보고 또 되게 새로웠다. 이렇게 걸걸하고 깡다구 있는 여자 캐릭터 좀 좋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무자비한 앨리사도 좀 생각나고. 그렇게 세상 걱정 없이 막사는 것 같던 나디아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밝혀지니 훨씬 몰입하게 됐다.



[인생: 타임루프=프로그램: 버그라는 새로운 해석]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버그일 뿐이죠. 계속 다운되는 프로그램 같은 거요. 코드에 버그가 있을 때 다운되는 증상이 나타나요. 죽음이 우리를 다운시킨다면 우린 그 순간을 찾아가서 버그를 수정하면 돼요.


버그는 누가 뭘 잘못했다기보다는 그냥 시스템 오작동이다. 인생을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보고, 타임루프를 버그로 본 해석이 신선했다. 보통의 타임루프 물은 인과응보다.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뭔가 잘못을 해서 타임루프가 시작되고 (약간 원죄 같은 느낌...), 주인공은 사죄하는 마음으로 일을 바로 잡아 루프에서 빠져나온다. 그런데 <러시아 인형처럼>은 우리가 크게 뭘 잘못했다기보다 그저 시스템 오류에 우연히 던져졌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점들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위로가 됐다.



[연옥, 그러나 신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흔히 SF라고 하면 어딘가 붕 뜬 느낌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잔뜩 힘준 cg가 날아다닐 것만 같다. <러시아 인형처럼>은 그냥 일상적이다. 전혀 멋있는 척하는 cg나 연기 없이 그냥 어둡고 담담한 일상인데 그게 연옥이다. 여기서 신선함을 느꼈다.  연옥이라고 하면 뭔가 미드 <LOST>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거나 수염을 잔뜩 기른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앞으로는 부담스럽지 않게 SF를 녹여내는 게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환상적인 분위기 없이 그냥 일상에 불쑥 나타나는 SF. 저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저번에도 말한 것 같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생각나는 게 어바웃 타임, 나를 보내지 마, 그녀 등이 있다.



[관객의 정서를 고려한 섬세한 연출]

나디아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학대받았다. 이 학대의 기억을 되게 비-자극적으로 보여줘서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엄마에게 막 맞고 폭언을 듣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수박을 잘랐을 뿐이다. 심지어 화면은 예쁘고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심각성을 알아야 한답시고 폭력적인 장면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그냥 못된 심술보 같다. 그럴수록 감정적으로 공감하기는커녕 불쾌해져 채널을 꺼버릴 뿐이다.


특히나 감탄했던 연출은, 어렸을 적 엄마가 깨버린 거울 조각을 다 큰 나디아가 식당에서 뱉어내는 장면. 나디아는 어렸을 때 살고 싶어서 엄마가 아닌 다른 보육자를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있는데, 그 당시의 거울 조각을 아직도 몸 안에 품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서로 다른 우주에서 깨어나 각자 새로운 상대와 가까워지는 앨런과 나디아를 보여주는 연출도 좋았다. 잘 보면 나디아의 폭탄머리가 세 개 있다. 이는 더 수많은 우주가 있음을 보여주는 거겠지? 아마 제목이 '러시아 인형처럼'인 것도, 미트료시카처럼 한 세계 안에 또 한 세계, 또 한 세계... 이런 식으로 여러 우주가 있다는 뜻일 것 같다. 더 많은 나디아와 더 많은 앨런이 행복해졌길. 아무리 팍팍한 삶에도 가끔은 멋진 버그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 시즌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고 말하는 나디아에게, 보육자 루스는 말한다.

내 말 잘 들어. 넌 그때 어두운 흙에서 빛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치던 작은 씨앗이었어. 넌 살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지. 지금도 그 마음이 있니? 나디아, 요즘 널 보면 어떻게든 죽기 위해 달려드는 애 같아. 아가, 이 세상에 속하려고 기를 쓰던 그 멋진 아이는 어디 갔니?





구조

-어떻게 발악해도 죽으면 같은 자리에서 깨어나는 일이 반복된다.
-자신과 똑같은 운명에 처한 남자를 발견하고, 둘은 동시에 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특히 남자의 경우, 연인의 바람을 목격하는 최악의 밤 반복
-남자는 자신의 첫 번째 죽음이 기억나지 않고, 직감적으로 그게 열쇠라고 느낀 둘은 남자의 반복되는 사이클을 함께 밟아보기로 한다.
-열쇠를 깨달은 날부터 사이클에 조금씩 금이 간다. 깨어나는 장소에 조금씩 오류가 생기고, 사람들도 증발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공포 분위기).

-그리고 첫 죽음이 기억난 남자. 옥상에서 자살했다.
둘이 죽던 날 식료품점에서 마주쳤음을 기억한다. 둘이 서로를 도와줬다면 죽지 않았을 것.

여자는 죽음이 프로그램이라고 했을 때, 이 반복이 일종의 버그라고 생각한다. 버그를 수정하기 위해 죽던 첫날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하되 서로가 죽지 않도록 도와줘보기로 한다.

-마지막 환생. 다시 식료품점에서 모든 걸 되돌려 놓으려 하는데. 각자 다른 우주에서 깨어난다. 진실로 상대방을 살려야만 하는 것. 그래서 자기들이 아는 정보로 상대를 믿게 한 다음 결국 목숨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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