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미 Feb 18. 2020

그래도, 인생은 9회 말 투아웃부터 <스토브리그>

2020 상반기 SBS 금토드라마

*아주 주관적일  있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기본정보

작가: 이신화 (2016 mbc 드라마 공모전 당선)

감독: 정동윤 (SBS 엑시트)

제작사: 길픽쳐스 (JTBC 우리사랑했을까 KBS 어서와)

장르: 스포츠, 히어로, 성장



로그라인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에 다년간 '우승 후 해체'이력을 가진 젊은 단장이 부임하여 뼛속부터 갈아엎어버리는 이야기

(기존 로그라인: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



셀링포인트

캐릭터/대본구성/연출/배우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단연 구조적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설정과 전개 모두 구조적이다.


[처음부터 깔아 놓은 '우승 후 해체' 조건]

우승이라는 최종 목표가 확실히 설정되어 있어서 드라마가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 16화를 탄탄하게 이끌 수 있었던 이유다. 또 1화부터 '우승 후 해체'를 못 박고 시작했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고 정말 해체될까?'라는 궁금증과 긴장감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달려 나갈 최종 목표와 그것을 언제든 무너뜨릴 긴장 요소가 16화 내내 공존한다면 일단 그 이야기는 몰입력을 확보한다.  


[간결한 인물구도: 팀을 지키려는 자 vs 팀을 해체시키려는 자]

인물 설정도 명확하다. 팀을 우승시키려는 백승수 단장 쪽이 있고, 팀을 해체시키려는 재송 그룹 쪽이 있다. 물론 그 안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굳건하다. 이때 대표 안타고니스트 권경민 구단주가 팀 내부의 인물이므로 갈등은 더욱 교묘하고 아이러니해진다. 


[철저히 계산적인 갈등 관계]

갈등의 동기가 원한이 아닌 이해관계다. 이 드라마가 담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권경민 구단주를 비롯한 재송 그룹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드림즈와 백단장의 파멸을 보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음과 동시에 비교적 질척거리지 않고 개운하게 갈등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위협 세력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전개]

<스토브리그>는 보통 한 화에 한 소재를 다룬다. 대부분 야구와 야구단에 관한 것이다. 기술이든 사람이든 팀의 우승을 방해하는 요소를 하나 잡아 해결하는 식이다. 해당 소재로 시작된 갈등을 마무리 짓고 다음 회차 떡밥을 던지며 끝난다. 덕분에 16부작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인 '늘어짐'이 적었다. 또 '야구 드라마'라는 정체성이 뚜렷했다. 물론 최종 보스는 재송 그룹이지만 백 단장은 매 회차 싸움 상대가 달라졌다. 이는 <보좌관>보다는 미드 <지정 생존자>와 비슷한 구조다.


초반 화- 임동규, 스카우트 부장 등 야구단 내 박힌 돌 빼내기

5화-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타구단과 갈등 --> '로버트 길' 스카우트

6화- 데이터 야구, 비선수 출신에 대한 폐쇄적 문화

7,8화- 선수들 연봉 협상

9화- 백승수 단장 개인사

10화- 비시즌 자발적 훈련 관련 갈등

11화- 전지 훈련지 국내로 변경 --> 우승 당시 환경 재연

12화- 유민호의 볼넷 트라우마 극복

13화- 약물 사건 --> 임동규 영입

14화- 드디어 우승을 꿈꾸기 시작하는 드림즈 --> 강두기 트레이드한 구단주

15화- 구단주의 드림즈 해체 기자회견과 백단장의 매각 제의

16화- 날카롭고 효율 중심적인 대표 상대로 매각 성공


[만년 꼴찌팀이라는 설정이 주는 메리트]

보통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스토브리그>도 만년 꼴찌라는 메리트를 놓치지 않았다. 시작부터 그 자체로 연민과 감정적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드라마틱한 감동을 보장해준다. 죽어가던 팀에 돌풍을 일으킬 구원자가 등장하여 멱살 잡고 끌고 간다. 그가 지쳤을 때 감화된 주변 인물들이 적극 조력하여 함께 팀을 살린다.

의외로 감성팔이는 적은 편이었다고 느낀다. 길창주 선수의 국적 문제, 유민호 선수의 가난, 장진우 선수의 퇴보, 백승수 단장의 유산, 임동규의 차별당하던 과거 이야기 정도? 이렇게 적고 보니 또 상당히 있었네. 그래도 워낙 목표가 뚜렷하고 강력한 드라마라 늘어지기보다는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 즈음에만 야구팬이라면 가슴속에 하나쯤 품고 있을 추억(이를테면 어렸을 때 아버지와 야구장 와서 치킨 먹던 기억)을 좀 많이 언급했던 것 같다.


[과하지 않은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

많은 주변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영화보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억울하게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 하나로 자기 능력을 인정받은 백승수 동생 이야기, '미소씨가 해줬으면 좋겠다'며 자신을 콕 집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엄마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애나 중년의 이야기로 너무 빠지지 않고 적당히 잘 다뤄준 것 같다. 역시 중심이 잘 잡혀있는 드라마였다.



개선점

[백 단장처럼 건조한 드라마]


드라마를 보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끝나고 메모장을 보면 답답하고 경악스러워서 적은 감정들이 마구 흩어져 있는데 <스토브리그>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있다. 큰 여운이 없다. 보면서 짜증이 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소장 욕구가 든다거나 마음이 움직여 반하게 되는 드라마도 아니었다. 


백승수가 말했다.

성적은 단장 책임, 관중은 감독 책임. 전 그걸 믿는 편입니다. 단장은 팀이 더 강해지도록 세팅을 해야 되고, 감독이라면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들의 가슴속에 불을 지펴야죠.

성적은 시청률, 불은 마니아층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불이 지펴지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잘 짜 맞춰서 완성도 높은 이야기는 만들어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그래도, 인생은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충분히 마음을 자극할만한데, 그게 드라마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백승수는 항상 자신만만하고, 대부분의 문제 상황을 다 알고 있고, 금방 뭔가 해결책을 들고 왔다. 우리 편이 잘 되니까 좋긴 하지만 그만큼 임팩트는 적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그 밑바닥에서 진솔하고 간절한 감정이 많이 묻어났다면 좀 더 여운이 짙어지지 않았을까? 

<스토브리그>는 감정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돌아가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캐릭터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함께 우는 거라고 생각해서 좀 아쉬웠다. 보통 성장 드라마가 사람들 가슴속에 많이 남는 이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과 야구를 멋들어지게 비유한 감수성 풍부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타깃적중률/시청률/화제성

타깃은 남녀 상관없이 2049. 잘 적중시켰다.


시청률은 경쟁작이었던 tvN <사랑의 불시착>과는 14-17%를 오가며 비등한 편이었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스토브리그가 종영한 영향도 있겠지만) 사불 승. jtbc <초콜릿>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어쩌다 보니 세 드라마를 다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사불이 가장 재밌었고 초콜릿은 주인공들이 너무 순수+착함병에 걸려서 볼 마음이 안 들었다.


화제성은 괜찮았다. 같은 시기 방영 드라마들 중에는 <스토브리그>,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정도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 같다. <낭만 닥터 김사부 2>는 방영 초반에는 좀 화제였다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관련 작품

[영화 '머니볼']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번 기회에 봤다. 이 영화에서조차 큰 감명을 못 받은 걸 보면 스포츠 영화/드라마가 취향이 아닌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고아라 작가님 <파도를 걷는 소녀>는 재밌게 봤는데ㅠ

어쨌거나 확실히 영화라서 긴 호흡 쌓기는 없다. 드라마는 데이터 야구 이야기도 나오지만 한 단계씩 비리를 척결해 나아가는 구조를 설계한 반면, 영화는 데이터 야구 하나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걸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구단이 받아들이냐 마냐, 그걸로 우승이 되냐 마냐 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지막 노래가 가장 여운이 남는다. Just enjoy the show. 야구를 인생에 빗대기로는 이 영화가 더 우위다.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사실 이 영화가 나를 야구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스포츠팀의 팬이 되면 완전히 색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로망을 뿜뿜! 아주 잘 충족시켜준다. 나도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 되고 싶을 정도. 맨날 욕하면서 86년을 기다린 팬심도 존경스럽고, 마침내 우승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상상도 못 하겠다. 밤비노의 저주를 알고 보면 훨씬 더 푹 빠져들 수 있다. 이건 정말 괴짜 그룹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스포츠 팬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참고하기 좋을 듯하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매거진의 이전글 흑사병에 맞서는 뭉클한 SF역사소설 <둠스데이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