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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Apr 08. 2020

미쳐 돌아가는 <이어즈&이어즈>의 세상

2019 상반기 BBC/HBO 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닥터 후> 메인 작가 러셀 T 데이비스 각본


셀링포인트


[눈치 보지 않는 정치적 비관론]

드라마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을 많이 건드린다. 오히려 보는 내가 '이래도 돼?' 하며 조마조마할 정도다.


미국이 중국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시작으로 정치적인 이슈는 물 흐르듯 전개된다. 은행은 줄줄이 파산 위기를 맞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심리로 우익 정당이 득세하며, 당장 자기네 나라 안위만을 따지는 정치인이 열광을 받는다. 난민을 막고 게이를 혐오하는 시대가 다시 온다. 영국의 신용등급은 떨어지고, 상비약도 구할 수 없게 되고... 그런가 하면 인공지능 기계의 발달로 대학 나온 사람들도 3d업종에 겨우 종사하고, 이마저도 잘릴까 조마조마해한다.


마치 미래학자의 말을 듣는 것 같다. 어떤 미국 기자의 칼럼에서, 전염병 같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과학을 떠올리지만 사실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봤다. 극 중 대니의 말마따나 뉴스가 지루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무슨 문제부터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드라마는 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치, 산업, 기후위기 등이 얼마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일반인의 삶에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지를 매끄럽게 보여줘서 좀 섬뜩해진다.


이런 극단적인 상상과 그 상상을 필터링 없이 보여주는 강단이 작품을 자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걸 풀어내는 연출이 일품이다. 빠르고 기괴한 생일 축하 장면과 중간중간 삽입하는 뉴스 화면으로 국제 정세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몰입이 장난 아니다. 



[적나라하게 튀어나오는 인간의 본심]

특히나 트럼프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돌발적으로 중국을 겨냥해 미사일 발사했다는 1화의 전개는 충격적이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던 가족은 전시체제에 돌입했다는 뉴스에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한다.


패닉 한 와중에 할머니는 식구들을 안심시키고자 '우리 집에도 중국인 있으니 안전하다'며 손자를 쳐다본다. 중국인 아버지를 두긴 했지만 영국에서 나고 영국에서 자란 아이인데 말이다. 급박한 상황이 되자 사람을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본심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이렌이 울리다가 멈추자 곧 폭탄이 떨어질 거란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때 대니는 함께 있던 연인을 한 번 쳐다보더니 차를 몰고 다른 곳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 자신의 마음이 진짜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것이다. 만약 이게 종말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본능적인 움직임 이리라.


위선적이지만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이성을 잃는 상황에 놓이면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기에 더 오싹한. 장르의 매력이다.



[진지하고 섬세한 월드 빌딩]

어느 날 딸은 자신이 '트랜스'라고 고백한다. 부모는 성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줄 알고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준비를 하는데 알고 보니 '트랜스 휴먼'을 뜻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걸 넘어 자신의 육체를 없애고 데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지경에 이른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핸드폰 들고 다니는 것도 너무 무겁게 느껴지던 터라 흠칫했다. 영드 <휴먼스>에서도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했을 때 아이들이 받는 영향을 보여주는 게 신선하다. SF의 생명인 월드 빌딩을 진지하게 생각한 느낌이다.



[SF의 백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질문]

뮤리엘 할머니는 말한다. 정부, 은행, 불경기. 잘못된 일은 모두 우리 탓이라고. 우리는 1파운드짜리 티셔츠를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산다. 그 싼 값 뒤에 희생된 이들이 누구인지 생각할 의지는 전혀 없다. 가끔 깨어있는 시민인 척 비난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힘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냐는 핑계로 참고 넘어갔고, 내심 편리한 그 방법을 더 좋아했다.


방사능 피폭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디스는 자신의 뇌 데이터를 이전해 기계로 다시 태어나기로 한다. 육체를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그 과정에서 이디스는 말한다. 당신들이 다운로드 한 내 기억들을 그냥 데이터로 여기지 말라고. 그건 내 가족이고 연인이고 엄마라고. 그리고 죽은 내 동생이라고. 생생한 내 사랑이라고.


내가 날갯짓 한 세상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죽기 전 침대에 누워 최선을 다해 사랑했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지겨울지 몰라도 또, 사랑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가족]

드라마는 어려운 SF 이야기를 영리하게도  가족을 중심으로 풀어나갔다. 가족, 어릴 적 친구들, 연인. 그러니까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화자를 설정한 것이다. 판타지 로맨스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와의 연애는 가장 빠르고 쉬운 신뢰를 형성하니까. 시청자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댈 구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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