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같은 조연배우들
지난 2017년 MBC 연기대상이 큰 화제가 됐었죠.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이종석과 함께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단역배우 최교식 씨가 대상 시상자로 나섰기 때문인데요. 연기대상을 연출한 박현석 PD는 “단역배우들은 주로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곤 한다. ‘연기대상’ 시상식의 대상 수상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이 대상을 단역배우가 시상함으로써 새 시대에는 주인공과 단역의 구분이 없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MBC 드라마 속 ‘감초’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이리와 안아줘 (2018)
윤나무와 길낙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드라마죠. 살인사건이 나오지만, 제목만큼이나 따뜻한 힐링 드라마였습니다.
윤종훈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의외로 생소해서 넣어봤습니다. ‘응답하라 1994’ 뺀질이 과대표, ‘청춘시대’의 스폰남, ‘리턴’의 악벤저스 중 제일 불쌍한 애라고 하면 기억하실까요? <이리와 안아줘>에서는 낙원을 깊이 아끼는 오빠로 출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짝눈 쌍꺼풀 덕에 선악 어느 배역을 맡아도 녹아들 수 있는 축복받은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남
살인자의 아들로 태어나 비뚤어진 애정을 갈구하는 캐릭터를 너무 짠하게 잘 표현했던 배우입니다. 어찌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짠내 심쿵 10종 세트’ 표정이 등장하기도 했어요. 특히나 여동생 앞에서 흔들리던 눈빛과 아버지 뒤에서 분노에 찼던 눈빛이 공존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주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갑니다.
서정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걸 크러쉬를 불러일으켰던 원칙주의자 부장님! <이리와 안아줘>에서는 살인자의 언변에 속아 그와 동거를 시작한 생활력 강한 여인으로 나옵니다. 배역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겨서 아예 몰라봤어요. 프로필 사진은 또 느낌이 다른데, ‘카멜레온’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을 만큼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인 것 같습니다.
박수영
왠지 모르게 얼굴이 굉장히 친숙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30편 이상의 영화와 20편 정도의 드라마에 출연했더라고요.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연산을 어린 시절부터 보필한 내관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따뜻하고 소박한 이미지처럼 ‘늘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배우입니다.
죽어야 사는 남자 (2017)
우리나라에서 아랍 배경 드라마라니, 신선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최민수 씨가 워낙 능청스럽게 갑부 역할을 잘 소화하기도 했고요. 문화적 간극을 좁히는 과정에서 오해도 있었지만 한국 드라마의 가능성을 넓힌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김병옥
강렬한 인상 덕에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배우죠. 코믹함과 애절함, 잔인함의 스펙트럼을 모두 품은 얼굴입니다. <죽어야 사는 남자>의 제작진은 그가 맡은 한 소장 역할과 그의 파트너 양양 (황승언 분)에 대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반전으로 작용될 인물들이다. 이들의 정체를 추리하면서 보시면 더 재미있게 드라마를 즐기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 중 제가 모르는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배우인 것 같습니다.
배해선
드라마 배우이기 이전에 60번 이상의 뮤지컬 공연을 올린 베테랑 뮤지컬 배우입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 덕분인지 주로 전문직 여성 배역을 많이 맡아 왔는데요.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는 귀여운 푼수 역을 맡아 신선한 재미를 안겼습니다. 서정연 배우와 함께, 앞으로 작품에서 보면 기대되고 반가울 배우가 될 것 같습니다.
W (2016)
만화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신선한 소재, 그리고 직관적인 연출로 호평받았던 드라마입니다. 후반 설정이 조금 미흡했지만 판타지 드라마 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될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기영
최근 종영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 때문일까요? 남자 주인공의 친구 이미지가 강한데요. 실제로 ‘W’와 ‘로봇이 아니야’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누구와 붙여놔도 자연스러운 ‘케미’를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얼굴에 서늘함이 서려있어 사연 있는 악역을 잘 소화해 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다채로운 그의 모습을 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기황후 (2013)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으나 황후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던 고려 여인 ‘기씨’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 낸 드라마입니다. 50부작이 넘는 장편 드라마였음에도 주변에 끝까지 봤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흡인력 강한 드라마였습니다.
이원종
<기황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액정궁 총책임자를 맡았었습니다. 언제든 한없이 푸근한 웃음을 지을 것 같은 분이 독한 역을 맡아 더 임팩트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야인시대 구마적’하면 ‘아~’ 할 분들 많으실 것 같은데, 영화와 방송을 합쳐 10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해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아깝지 않은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늘 신선한 캐릭터에 목말라한다는 그. 이번 MBC 주말드라마 ‘숨바꼭질’에서 유괴범(!)으로 출연할 예정인 그의 연기가 기대됩니다.
분량 상 언급하지 못한 배우들이 너무나, 정말 너무나 많습니다.
조연을 탐구해보겠다는 글에서 마저 분량을 따져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소개된 배우들을 공통적으로 봤을 때 ‘천의 얼굴’이라는 말이 딱 맞는 천상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라며 놀라게 되더군요. 그만큼 배역에 잘 녹아들었습니다. 어쩌면 ‘조연’ 혹은 ‘감초’라는 타이틀은 ‘가능성’의 다른 말이 아닐까 합니다. 얼굴 보면 ‘아!’하지만 정작 이름은 생소한 배우들. 한 번이라도 그들의 연기에 즐거웠다면, 오늘은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