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3월, 나는 대학교 4학년 내내 건강을 까먹으며 열심히 준비한 회사에 입사했다. 아니, 회사원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이거보다 더 과거로 가야 한다.
14년 12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하는 삶을 살거라 의심치 않았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버린 탓이다. '극외향적인 내 성격이 과연 학자와 맞는가, 더 공부하기 위한 경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답을 찾지 않고 4학년으로 올라가기 무서웠다. 그렇게 휴학을 시작한 뒤 세계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식집에서 알바를 하다 말고, 친구들과 세상을 바꿔보자는 맘으로 사무실을 열고 닭발만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말고, 몽골로 봉사활동을 가서 NGO에 계속 있을까 생각해 보다 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걸 해보니 암만해도 나는 진득이 책상에 앉아있을 학자 스타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학자로 먹고살만큼까진 똑똑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중학생때부터 꾸던 꿈이 사라지자 그 빈 공간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모른다. 미래가 텅 비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이걸 메꾸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만든 꿈이 'UN 입사'였다. UN에 가기 위한 조건은 30살 이하, 최소 석사, 영어 능통이었다. 미국 대학원을 당장 가고 싶으나 돈이 없었기에 우선 전공을 살려 직장에 들어가 3년간 돈을 벌고 27살에 퇴사해서 대학원에 갔다가 서른 전에 UN에 들어가자,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에 내가 놓친 게 있었다.
일을 완벽히 마무리하며 자신감 있게 퇴근하고, 친구들과 좋은 식당에서 가격을 보지 않고 메뉴를 고르는 이 삶을 스물셋의 내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퇴사하지 못했고, 책임 진급을 코앞에 둔 채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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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 보면 입사한 뒤 한참 뒤까지도 회사를 참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거 같다. 회사는 그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세상이었다. 회사는 개개인의 욕망이 시스템화되어 돌아가는 작은 사회였다. 배우고 싶은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었다.
첫 입사 후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부서로발령받았다. 회사생활에 열정을 잃은 책임 말년차들의 워너비 부서였다. 입사 후 3년 간,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하는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선배들조차 딱히 내게 시킬 일이 없었다. 동기들은 끊임없이 신공정을 평가하고, 셋업하고, 회의하고, 회사욕을 해대며 툴툴대는데, 나는 너무나 평화로운 설비 앞에서 하릴없이 서성이는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나도 일이 있단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부풀려 말하곤 집에 가서 혼자 서럽게 공부를 했다. 동기들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UN이고 대학원이고 잊고 살았다.
입사 당시 나를 그 부서로 배치한 팀장은 지금 부사장이 되었고, 가끔 그를 회의에서 마주치곤 한다. 그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왜 나를 신입도 바라지 않았던 부서로 배치했을까, 연수생 기간 동안 열정을 다하지 않은 탓일까, 학벌이 좋지 않아서일까, 여자 엔지니어라 그랬을까.' 맘에 응어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일하고 싶다는 티를 꾸준히 내니 4년 차쯤에서야 일에 치여보기도 하고 야근도 해봤다. 일이란 게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건지를 배웠고 왜 사람들이 일을 하다 말고 화를 내는지 조금씩 알아갔다. 지금은 내가 어떤 걸 잘하는지, 더 노력해야 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첫 번째로, 회사는 꽤나 재밌는 곳이었다.
나는 성취욕 강한 K-장녀이다. 내가 잘하는 건 1등 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성취욕은 남들보다 가쁘게 달리는 것조차 즐겁게 만들었다. 또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고 남들이 주지 않은 책임까지 떠맡는 책임감 덕분인지, 회사생활이 아직까진그리 버겁지 않다. 심지어 (아주 친한지인들만 아는 사실인데) 나는 회사가 재밌다. 회사 가는 길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딱히 오늘 뭘 해야지,라는생각이 드는건아니지만 오늘은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흥미진진하다. 퇴근 전 오늘 한 일을 복기하며 '오늘도 밥값 했다' 느끼며 집으로 딜아가는길이 참 가볍다. 내가 못하는 거 같아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선배들만큼 연차가 쌓이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요즘 팀 상황이 안 좋아서 영찝찝한 일들 투성이지만, 이 또한 몇 달 안에 지나가겠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니까. 회사는 전반적으로 재밌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감동적인 것도 있다.
내가 다양한 유형의 어른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컸다는 사실이다.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란 나는 어디서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부모님, 이모, 이모부, 옆집 아줌마, 선생님 등등 다양한 성격을 가진 어른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며 배운 덕에, 어느 집단에서든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는데 자신 있는 사람이 된듯하다.
오래된 시트콤 <Sex and the City>에 이런 말이 나온다. "But I Survived, Because I have a good Safetynet.(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내겐 튼튼한 안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사랑이 내게 Safetynet이 되어 이렇게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듯 하다.
세 번째, 나의 파이터 기질은 회사에서 양날의 검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나는 약간 조현병과 공황장애 기질이 있다. 이것들은 내가 무시당했다는 자격지심이 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튀어나와 나를 파이터로 만든다. (이 기질은 아빠의 실수들로 생겨난 것이라 나는 아빠를 몹시 애증 한다.)
고백하자면 내 첫사랑은 나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친구의 전 남자 친구에게 개싸움을 걸던 그 순간, 너의 화가 많은 성격에 정이 떨어졌다'라고 했다. 친구의 전 남자 친구가 너무 무례하게 굴길래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얘기 좀 하다가 싸움이 된 적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미워 보였나보다. 그래서 나도 얼마동안은 이 성격을 많이 미워했던 거 같다. 지금은 다행히 한해 한해 날카로움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같은 성격이 아주 가끔은 회사에서 좋은 Tool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일 안 하는 사람들에게 일 시키기, 무례한 다른 부서 사람에게 더 무례하게 대하기 등등. 40대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이 회사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마구 목소리를 내고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랄까. 잘만 컨트롤하면 포켓볼에서 포켓몬을 내보내듯 내 화를 적재적소에 던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자아내는 나의 마음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화가 끌어 오르는지, 나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지금은 내 마음이 잘 읽히지 않지만, 10년 뒤엔 나를 잘 알고 화를 잘 다스리는 현명한 사람이 돼있길 바란다.
이래저래 나는 회사원으로 남기로 했다. 회사원으로서 내가 갈 수 있는 끝까지 올라가 보는 게 나의 목표이다. 물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목표는 금방 바뀌겠지만, 우선 서른이 된 나의 목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