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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 진 Aug 22. 2024

우연히 만난 초보 점쟁이

 사주팔자로 운명을 들켜버린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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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겪는 고통이 남들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은 편리한 변명일 뿐이다 -- 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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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9년 전에 일이다. 나는 소규모 건축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경기가 지금보다 좋았던 덕분인지 특별한 사업전략이나, 개선 방향도 잘 모르면서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고, 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높은 30대 후반의 젊고, 철없는 건축업자였다. 졸업 후 건축 분야에 근무했던 시간이 10년 이상 되어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분야에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연이 되었던 건축주나 협력업체 사람들과의 소통문제로 곤란한 상황을 자주 겪었던 시기였다. 철없는 건축업자는 이 시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효율적인 소통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업무서류를 여러 번 개선하면서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내가 만나는 건축주(고객)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상인, 의사, 교수, 사업가, 공무원 등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협력업체 사람들도 전문영역의 숙련자들로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이가 많고, 일에 대한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모인 이 사람들은 경제력이나 성격, 학력, 업무영역, 일정이나 역할이 모두 달랐다. 계약된 프로젝트의 따라 역할을 배분하고, 업무를 조율하면서, 목표하는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업무는 예상보다 큰 노력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관계와 소통>이 안전과 업무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나로서는 최대한의 예의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그 당시 나로서도 <관계와 소통>은 어렵게 느껴지고, 해결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도 수십 년 동안 소중한 인연으로 안부를 묻고, 식사나 여행을 함께하며,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는 고마운 분들도 있지만, 그중에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도 결코, 다시는 잠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감정적 변화나 주변 인물의 의견, 개인적인 상황에 따른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거의 절망적으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고의로 괴롭히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내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들 같았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어울릴 수는 없지만, 만나면 힘든 사람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력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고 생각되었고, 철저히 “운”이 나쁘면 만나게 되는 일로 느껴졌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변화시키는 기술보다 사람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돈을 번다”라는 선배들의 말을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기술자로서 실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불편한 아집이 있었다.     


 철이 없었고, 세상을 몰랐으며,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가 전문가이며, 전문영역에서는 내 판단이나, 책임을 중요하고,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막연히 극복할 수 있는 시절이 올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부끄럽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옆 사무실에 지인이 방문했다. 친구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점술가에게 점을 보고 왔는데 너무 잘 본다는 수다스러운 잡담을 들어야 했다. 지인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까칠하고, 예민하며, 냉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의심이 많던 지인이 점술을 보고 추천하는 모습은 재미있었지만, 관심을 만들지는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지인의 소개로 점술가를 찾아간 다른 지인들에게도 전화 연락이 왔다. 그 점쟁이 용한 것 같다며, 한번 만나보라는 내용이었다. 솔깃하긴 했으나, 내키지는 않았다. 젊은 나이에 창업한 터라 답답한 마음에 유명하다는 무당집이나 철학관에 6번 정도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나, 내가 만난 점술가들은 내 삶을 변화시킬 의견이나 실마리를 주지는 못 했었다. 점술가를 경험한 내 기억은 좋지도 나쁘지 않은 평범한 경험으로 기억났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고 화가 나고 답답했던 날이었다. 정성을 다해 준비했던, 계약이 무산되었던 날로 기억된다. 까칠한 지인은 자기가 말하던 점쟁이가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지인 사무실로 놀러 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재미로 한번 만나보라는 권유에 약속을 잡았다. 별 기대도 없었지만, 다른 일정도 없었다.     

 약속 시각이 되자 키가 170cm가 훨씬 넘는 30대 중반의 젊은 아가씨가 방문했다. 인사를 나누고 잠시 대화를 시작해보니, 말투에서 외모보다 어린 나이가 느껴졌다. 이렇게 어린사람(애송이)에게 무슨 점술을 들을 수 있을까? 혹시 타고난 능력이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그 젊은 아가씨 점술가는 알 수 없는 눈빛과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첫인상은 진솔하지만 거침없는 모습이었고,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아 상담내용이 번복되기도 하고, 순서를 지키지도 않아 어수선한 느낌이었으며, 내가 만났던 점술가들 보다는 훨씬" 초보 점쟁이"처럼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는 생년월일을 물어보고는 이제부터 해주는 이야기는 녹음해서 여러 번 들어보라는 말과 함께 처음 본 나에 운명에 대해 이런저런 자신의 점술을 풀어내고 있었고, 나는 의심과 호기심으로 그녀의 점술을 30~40분쯤 듣고 있었다. 다른 점술가에게 들었던 내 운명에 대해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는 순간, 나는 이 점쟁이에게 나를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나에 대해 어떻게 이 정도까지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어떤 의도나 생각도 없이 이런 질문이 나와 버렸다. 

    

 “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무당처럼 신의 기운을 받은 건가요?  - 비법이 무엇입니까? ”        

 그녀의 대답은 관심이 있어 ”사주 명리“ 분야를 공부 중이며, 누구나 배우면 알 수 있다”라는 답을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친구들과 지인에게 그 점쟁이를 소개하였고, 상담을 경험했던 사람 중에 배우고 싶은 분들

4인이 함께 듣는 명리 수업을 만들었다. 그렇게 그 시절 우리는 아가씨 점쟁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주 명리 공부를 시작했다. 명리를 처음 가르치는 점술가 초보 선생과 함께 우리의 순수한 “운명탐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낮에는 각자 일하고 저녁에 함께 모여 명리 수업을 들었다. 새벽까지 수업이 이어지기도 하고. 식사나 간단한 술자리도 함께했다. 우리가 모인 자리에는 항상 “운명과 사람”이라는 대화가 이어졌고, 서로의 운명에 대해 웃음과 한숨이 오고갔다. 겪려도 하고 응원도 하면서 웃으며 지냈던,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명리”라는 운명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운명이라는 비밀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운명과 사람”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인간관계, 자기계발 분야 서적들을 열심히 읽으며 지냈던 기억이 있지만, 명리 공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이해 하게 했다. “사주 명리”라 불리는 운명론에 스스로 점점 깊게 빠져들었고, 신기했으며, 재미있었다.  그 시기는 명리학 기준으로 보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는  살아온 "대운 30년"을 지나 살아가야 하는 "30년 대운"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명리학” 의 만났고, 그 후로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리 공부”를 하며, 집을 짓거나 꾸미는 일을 하고 있다. 나와 주변인들의 “운(運)과 명(命)”을 찾아 일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측하기도 하고, 주변사람들의 변화로 명리 이론을 검증하기도 하며,  운명을 개척하려는 여러가지 노력도 해보면서 살고있다. 세월의 통해 배운 지혜도 있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표현하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

 “운명”이나 “명리”, “점술”을 믿고, 안 믿는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다른 또 하나의 “사유의 시선”을 즐기며 살아간다.  짦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즐거움을 글로 적어보려 한다.

-   누군가,  인연이  닿는다면 또 하나의 우연처럼 보이는 "운명"으로 이 글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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