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 진 Aug 22. 2024

" 운명(運命)"이라는 우연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운의 흐름을 읽어라.

-------------------------------------------------------------------------------

   운의 흐름을 읽어라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에는 

   운이 얼마나 자신을 돕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기질과 능력

   신체적인 특징을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발타자르 그라 시안 

 ----------------------------------------------------------------------------------


"운명(運命)"이라는 힘이 우리 삶에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운명(運命)을 믿는 사람도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미신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또는 상황에 따라 ”운(運)“을 믿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운(運)이란 관점에서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며,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쉽게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운(運)“이라는 영역으로 치부하거나. 타인이나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고민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 운의 흐름을 참고하여 선택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선택과 ”운(運)“의 방향이 같다면, 위안을 받게 되겠지만, 운의 해석이 자신의 선택과 다르다면, 선택과 운세를 비슷하게 해석하는 점술가를 찾아 이리저리 다닌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운(運)“의 해석은 쉽고 편하게 나를 지지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운(運)“이라는 도구는 ”사실“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하게 된다.     



 ”운명(運命)“이란 단어의 뜻은 ”운(運)“과 ”명“(命)이라는 글자가 합쳐진 용어로 "운(運)"은 : "움직이다", "돌다"는 뜻으로, 가변적인 시간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변하고, 움직이는 단위 기준은 60년, 30년, 10년, 3년, 1년, 3개월, 1달, 3일, 1일, 6시간, 2시간 등으로 분류하고 이를 조합하여 운의 흐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또한 "명(命)"은 생명, 성질, 천성으로 해석되고,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고유의 성질로 이번 생이 다하는 동안은 절대 변하지 않는 본성, 기질로 이해된다. 명리 이론에서는 사람의 ”명(命)“의 종류를 518,400가지로 분류하고, 우리나라에는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이 약 50명 정도 있다고 예상한다. 서로 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만나볼 수도 없고, 분류된 운명 모두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일도 어렵고, 방대하다. 이에 대해 예전에 평생 명리 공부를 하셨던 고수 한 분은 노후에 들어서 " 사주 명리 공부는 한 생애 동안 다 할 수 없는 공부"라는 말을 남기셨다. 어떤 분야에서나 평생을 배워도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 이지만, "운명(運命)"론 또한 마땅히 수 천년을 통해 정립되고, 발전되어 활용되는 무형의 유산이다. 적은 돈을 주고 재미로 보는 간단한 운명풀이부터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비법을 전수받아 평생을 공부해오신 절대 고수까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운명(運命)"이란 단어는 언제나 변하고 있는 "운(運)"과 절대 변하지 않는 ”명(命)“이란 개념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자연과 세상에서 삶의 여정을 만들어 간다고 보는 것이다. 흔히 비유하기를 "명(命)"은 자동차로 비유하고, ”운(運)“은 차가 다니는 도로에 비유된다. 소형차(명)로 태어나 고속도로(運)를 달리며 인생을 사는 것과 고급 차(命))로 태어나 굴곡진 거친 들판(명)을 달리는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한 극적인 비유로 쉽게 이해된다.  또 명(命)은 배로, ”운(運)“은 바다로 비유해서  작은 배로 태어나 가까운 바다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으며 비교적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과 먼바다에서 거센 물살을 견디며, 고래를 사냥하는 모험가의 삶으로 비교하여 서로 다른 운명을 설명하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나만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어떤 삶에도 굴곡은 주어지고, 거친 풍랑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 위에서 쉬는 때가 오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어려운 선택이다. 내 운명은 내가 선택한 것일까? 주어진 것일까? 어쩌면 이 운명의 삶이 끝나면,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겪은 심리적 함정이 있다. 빛나고 좋은 타인의 한순간의 모습과 어려운 시기의 나를 비교하며 허탈감에 빠져드는 시간이 있다. 노인은 젊은이의 건강함이 좋아 보이고, 젊은이는 유명해지거나, 많은 돈을 가진 부자로 살길 바란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노래도 잘 부르고 싶고,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집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자신으로 살면서 타인의 일부를 욕망한다. 안되는 줄 알지만 잠시라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다시 태어나면 -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복잡한 마음이 올라온다. 이룰 수 없지만 원할 수는 있다. 원할 수는 있지만 살아보지 못하는 삶, 이번 생에는 살아볼 수 없어서,  살아보고 싶은 내 "운명(運命)"의 영역 밖의 삶인 것이다.   

        

 내 삶에서는 운명(運命)을 예측하는 방법으로 우연히 ”사주 명리”를 처음 접하고 공부를 시작한 지 19년 지났다. 건축분야에 종사하면서 개인적인 여유시간으로 배우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틈틈이 명리 공부를 하며 살았다. 고수의 스승을 모시고 술법을 전수 받아 실력을 갖춘 사람이나, 학문적 기질, 영적인 재능을 타고나서 빠르게 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동안 1,000명이 훨씬 넘는 분들의 운명을 분석(해석)하는 시도를 하며 지냈다. 주변인(약 60명)의 생년월일(사주팔자)을 저장해서 일상에서 “명(命)”을 살피거나 “운(運)”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한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그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들을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운명(運命)을 해석하는 나만의 이론을 재정립해가는 별난 취미가 내게는 오래되고 익숙한 습관이다. 하지만 내게 보이는 운명(運命)의 예측은 어떤 일은 소름이 돋을 만큼 정확하게 맞을 때도 있고, 아직은 도무지 해석 할 수 없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더 흥미가 생기고, 계속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되는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변 분들에게 내 예견을 다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묻더라도 아주 사소한 힌트만 주고 만다. 일상에서 운명을 예측해보는 길지 않은 시간, 그 순간 그 시선 속에서 잠시 머물러있는 것을 그냥 좋아한다.          



 점술가에게 상담하면 내게 주어진 운명(運命)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살아서 오면서 20번 정도 상담을 받아 본 적이 있다. 무속인, 스님, 명리. 타로, 육효, 매화역수, 당사주, 맹파명리, 태어날 때부터 예지력이 있다는 분, 명상수련을 통해 고수가 되신 분 등 운명을 예측하는 분들과의 인연은 젊은 시절부터 많았던 것 같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방문하거나,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3개월을 기다린 곳도 있었고, 상담 전날 방문해서 하룻밤을 묶고 다음 날 만난 분도 있었다. 그 시기에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점술가들에게서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싶어 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고, 답답한 마음을 나누거나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고, 문이 없는 아주 긴 벽을 더듬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나에게 운명(運命)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직업으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동안의 명리 공부로 나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생긴 것도 아니다. 편하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운명에 대해 보이는 데로 알려 드린다. 질문에 대해 모르면 모른다 하고, 보이는 데로 이야기해주면 되니, 어렵거나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크게 웃으며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함께 눈물 흘리며 울었던 경험도 있다. 대부분 40분 정도로 끝나지만, 어떤 분은 연속 3일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왔던 기준을 다르게 만들고 싶어했고, 원하는 삶으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자신의 역할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숨기고 살았던 고민을 이해하거나 알아보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그 시기의 생각에서 벗어나 원하고, 변화된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운명을 만나서 상담하는 경험은 나에게 조금 더 깊은 질문을 만든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는 색다른 시선을 만들고, 타인과 세상의 관계에서 나를 돌아보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다.   

  

"운명(運命)"이란 힘은 존재하고 그 존재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스스로 무겁게 질문 해 보면 “존재한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어떠한 기준과 현상을 “운명(運命)의 작용”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남는 것뿐이다.    

  

 태어날 때 “고유의 성질”을 부여받는 일은 “명(命)”의 영역이다.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부유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일, 급하거나, 침착한 성격, 음식을 좋아하거나, 노래를 잘하는 재능,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할 수 있는 재능, 대인관계가 좋거나, 말을 잘 하는 사람, 예술적 감각이나 공감 능력 등 수많은 재능이나 취향, 기질, 성격은 결코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이렇게 “명(命)”의 영역에서 진단되는 성질은 개선될 수는 있으나 변할 수는 없다. 또한 “운명(運命)”이란 개념 중에는 명(命)을 제외한 운(運)의 영역은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를 겪으며 발생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몸이 상하는 일, 이사를 하게 된다거나, 뜻하지 않게 직장을 옮기게 되는 일, 상황이 급격히 바뀌거나, 다툼이 생기는 일, 공부가 더 잘되는 시기를 만나거나, 심리적, 육체적 슬럼프를 시기를 겪는 일, 결혼을 약속하거나, 연인, 부부가 헤어지는 일 등 수많은 변화를 겪어내는 일을 운(運)의 영역에 있다고 해석된다. “운(運)과 명(命)”의 영역은 구별되지만.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하는 건 재능이지만, 휼륭한 선수로 살아가는 건 재능과 구분되는 좋은 운(運)의 작용이 따라주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시간의 운(運)이 좋거나, 좋지 않게 흐른다. 하지만 그 시기와 진폭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더 세상이 원하는 시간에서 필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문제는 “명(命)”으로 허용된 존재로서 역할이고, 한정된 시간(운(運)) 내에서의 활동이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라는 니체의 말은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아는 일은 관계와 소통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말로 해석된다. 즉 자신의 명(命)을 알아가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용즉행 사즉장(用則行 舍則藏)’ “세상이 나를 알아주면 나아가고, 나를 버리면 조용히 물러나라”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내가 쓰일 때와 버려질 때를 알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쓰임에도 ”때“가 있어서”운(運)의 흐름이 존재(명(命))의 필요를 만들거나, 없애기도 한다는 뜻으로 “운(運)이나 명(命)” 이 두 가지의 작용과 쓰임이 달라서 분리되거나 합쳐지고, 둘이면서 하나로 본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으로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겪게 되는 활동을 “운명(運命)”이라고 가정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삶의 다양한 변화를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運命)”이라는 개념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은 이유도 수없이 많다. 어떤 기준을 갖는 것 보다. 중요한 건 또 하나의 “다른 시선”으로 타인이나 내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운명(運命)”이란 개념을 대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운명론(점술)을 활용하는 추천방법     

  1. “운명”에 대해 알고 싶은 내용을 질문지로 정리한다(재능, 진로, 성격의 장, 단점 등 상세하게 분류한다 

  2. 정리한 내용으로 추천받은 점술가나 인터넷의 점술을 3번 정도 보면, 각 문제의 해답이 공통적으로 

     해석되는 내용이 있다.   

  3. 내용을 정리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질문지의 내용을 주관식으로 질문하고 비교 정리한다. 

  4. 나와 나를 아는 주변인들, 나를 모르는 점술가의 내용 중에 일치하는 부분을 참조해서 정리해서 

     의미가  있다면 활용하고, 의미가 없다면,  운명 따위는 무시하고 살면 된다.

  5. 이 방법은 당신이 지금 “운명”과 만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정리된 내용을 얼마나 활용되는가? 그 또한 당신의 운명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히 만난 초보 점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