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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Sep 10. 2015

그게아니고

난 잘살고있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깨끗한 이별

무엇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금의 무력함과 멍청함에 메슥거린다.
어쩌면 아까 먹은 싸구려 순두부찌개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철저히 나를 찔러야 한다.
채찍질은 스스로 할때가 가장 아플테니까.
결국, 약속한 대로 된 것은 없고 나는 그에게 평소 사주고싶어했던 명품 지갑을 보냈다.
그동안 보내주었던 물건들은 소박하게나마 보내는 이별의 선물이었는데... 결국, 그것도 모자라 지갑을 보냈다.
다음 여름에는 썬글라스를 보내고 또 겨울에는 시계를 보내겠지. 크리스마스에는 스웨터, 설날에는 캐시미어 머플러까지 보낼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스스로를 책망하고 질책하는 것 뿐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될까.
사랑에 아파봐서 지금을 소중해하는, 내가 사라질까바 걱정하고 조마조마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잣대를 들이대면서 언제 떠날까말까, 궁금해하는 사람말고 떠날까바 걱정하는 사람.

경험을 소중히 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딱딱하게구는 사람말고 유연한 사람을 만나야겠다. 담배를 폈다가 끊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동안의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게해줄 그런 사람을 만나야겠다. 지난날의 아픔은 남아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해줄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 사람과  만나다보면 지워지겠지. 비워 버린 사진첩에는 그 사람과의 셀카로 채워지고 더 많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고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너무 많아서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보내야지.

그렇게 채우고 채워져서 지금이 그저그런 옛날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득채워져가는 내 책들을 보며 흐믓해 하리라. 밥을 하고 먹고 출근하는 그 사람을 배웅하고 청소를 하고 작업실에서 작업에 빠져 점심을 잊고 있다가 점저를 먹고 커피로 여유를 즐기다가 저녁이면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즐겨야지. 그리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며 손잡고 집에와서 과일을 먹고, 각자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원을 걷다가 설레는 계획도 세워보고 함께 티비를 보면서 세상 욕짓꺼리도 하다가 코메디프로를 보며 배꼽을 쥐고 웃겠지. 야근할때는 기다리며 책을 읽고 집필도하고 소소한 반찬도 만들고 돌아오면 널부러져 자기도하고 그렇게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하나둘씩 둘만하던 일들이 셋이하게 되고 넷이하게되는거다. 내 삶의 기쁨은 그렇게 더 많이 늘어가겠지.
신인시절의 작업을 보며 키득거리다가도 더 좋은 작업을위해 여행도 떠났다가 돌아오는길에 선물봇따리를 가득 들고 나타나고, 그렇게 그렇게 한살 먹어갈수록 깊어가는 향기를 뿜어내는 내가 되겠지.

안녕, 구 남친.

어찌되었든 그동안 고마웠네.
사과는 안하겠어. 사과받을일만 생각날테니.
서로 그렇게 이기적으로 돌아가자.
스스로를 보살피고 사랑해주고 지켜줄 때인것 같으니..
오늘은 수십번을 안녕. 내일은 수백번을 안녕. 모레는 수천번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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