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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Sep 09. 2015

그게아니고

다 잘될꺼야

포근하다못해 정신없는 잠자리였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꿈자리들에 시달리다가 전화벨에 깼을 때
오늘 할 일이 이미 반은 날아갔음을 알았다.
간신히 뜬 한쪽 눈으로 세상의 가쉽거리들을 훓어 내리며 정신을 한쪽으로 몰아갔다.
어쨌든 나에게는 내일도 있지.

휘어진 허리가락
달달한 코끝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냄새와
낯설어서 살짝 어지러운 홍대거리를 헤치고 다니다가
화가났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것인지
세상에 화가나고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악담을 퍼붓고
기구하다고 느껴지는 팔짜에 서러운 아침이었다.
.



볼일을 마치고 물 한모금 축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 날아가버렸다.

일한테도 차이네.

아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은 아직 남아있다.

삼일째 감지않은 머리를 빗으며 이쯤 해두자며 거울속으로 가식적인 미소를 날려본다.
내 DNA에서 과감하게 생략된 방향감각과 조물주의 시크함에 놀라워하며 지도를 보면서 길을 잃고 잃고 또 잃었다.
오분에서 십분 거리를 삼십분만에 도착했다.
이미 급히 쑤셔넣은 칼로리들은 바닥이 나고 가벼운 현기증에 불안증세가 밀려왔지만 다행이게도 나는 성인으로 살아온 나날이 적지 않았다.
강한 멘탈.
십여년을 끌어온 일을 단 일분만에 해결해 버리고 나오는 길은

지난 밤에 지나쳤던 이정표들과 상점의 간판, 벽에 그려진 우습지도 않은 벽화 까지도 세세히 보여주었다.
이삼분만에 기꺼이 제로가되어버린 나의 상태에 감사하며 나머지 해결해야할 일들을 곱씹으면서도 광합성하는 즐거움은 잊지 않았다.
입을 옷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한껏 꾸며보리라 마음을 먹어본다.
그리고는 곧 그것이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하며 나에게 그런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할 일의 1/3이 아직 남아 있었고 그것은 가장 까다롭고 복잡하고 잘못하면 오늘 하루를 날려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유일 재산의 IT기기들을 총 동원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려고 돌머리를 굴려본다.
꽃단장의 꿈은 산산히 뭉개졌지만 나는 도시여자의 시크함을 휘날리는 척 택시에 몸을 싣고 홈런을 날려주리라 방망이를 쓰다듬는 4번 타지마냥 의기양양했다.
딱딱하면서 매너 좋은 도시여자로 빙의되어 앉으며 차분히 행선지를 밝혔다.


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되라.......


싱끗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내 뱉는 내 입술을 찬양을하며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찝찝함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곳곳에서 소나기의 소식이 있지만 콧등으로도 안들린다.
그리고 나는 감정에 충실하며 남은 하루를 보낼것이다.
묘한 담담함을 안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걸 꼭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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