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본 '대만, 지우펀'

#7_친절한 나라

by Zak

지우펀의 매력은 홍등이 켜지는 순간 발산된다.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도 눈길이 가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해가 아니라 계단 위에 떠오르는 붉은 빛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골목 안으로 향했다. 지도 없이 여행을 온 터라 헤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어둡고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는 사람, 망고젤리를 구매하는 사람 등 온갖 사람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가게가 즐비했지만 초조한 마음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홍등 켜질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도착한터라 시간에 맞춰 사진 속에서 봤던 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신경이 곤두섰다. 가는 길을 찾아놓고 구경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감에 의존해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지쳐갈 때쯤 여행자 안내소가 나타났다. 잠깐 앉아 쉬고 싶은 마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원하던 의자는 없었지만 원하던 풍경이 있었다. 안내소 좁은 창문을 배경으로 몇몇 사람들이 연신 사진을 찍길래 내다보니 애타게 찾던 바로 그 풍경이 펼쳐졌다.



나방이 불에 이끌리듯, 붉은 빛이 하나둘 켜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사람이 많아 거리를 찍은 건지 구경 온 사람을 찍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풍경을 바라봤다. 계속 쳐다봐야 바뀔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쉬이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침내 마음을 먹고 떠나려던 찰나 옆에 있던 여자가 “곧 점등 시간이라는데 안 보고 가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서로 여행 ‘인증사진’을 찍어주다 몇 마디 주고받은 사람이었다. 그 말에 또 발이 묶여버렸다.


5시30분(이었나). 말한 시간이 지나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라는 듯 빗방울마저 한 방울씩 떨어졌다.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중국어 풍년 속에 귀에 쏙 들어온 “이 계단 내려가면 정류장 금방이야”란 한국말이 길잡이가 됐다. 내려가는 동안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전날 사놓고 숙소에 두고 온 우산이 간절해졌다. 지우펀에 비가 자주 온단 얘긴 들었지만 ‘나는 피해갈 수 있을 거야’ 생각했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 밑으로 피신지만 빗방울은 나뭇잎 사이를 파고들었다. 결국 건너편 가게 처마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도자기 작품을 파는 가게 안에는 주인과 손님들이 있었다. 안에서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초조해졌다. 몇 분 지나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우산을 쓰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행렬이 이어졌다. 내 머릿속에선 지금 가야 하나,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질문이 이어졌다.


“Do you need?"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고 가게 주인이 휴지를 내밀었다. 처마 한 귀퉁이를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비를 맞은 객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었다. 여행 오기 전 대만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실제 그 순간을 맞닥뜨리니 대만이 한층 더 좋아졌다. 한국에서 길을 헤매는 듯한 관광객이 보여도 도와줄까 말까 망설이기만하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돌아선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내민 손이 더 감사했다.



+)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비를 맞으며 남은 계단을 내려왔다. 혹시나 싶어 편의점 앞에서도 우산을 살까말까 망설였다.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아 줄을 선 끝에 우산을 하나 집어 들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대부분 택시투어를 하거나 돌아갈 콜택시를 불렀다. 버스 정류장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걷다가 타고 왔던 버스가 편의점 앞 정류장으로 가는 걸 보았다. 혹시나 싶어 뛰어가 물어보니 기차역으로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비가 그쳤다. 혹시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우산은 역 구석에 세워두고 기차에 올랐다.

작가의 이전글돌아와서 본 '대만, 스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