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본 '대만, 타이페이'

#8_여행을 기대하게 한 영화들

by Zak

여행 전 대만영화 혹은 대만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들을 찾아봤다. 대만영화의 대명사격이 된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대만판 <건축학 개론>으로 불리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지우펀 모습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봤거나 보려고 생각했지만 지나친 영화들을 봤다.


#피아노 배틀이 전부가 아니었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4188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워낙 피아노 배틀 장면이 유명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 인기가 많으면 한번쯤 관심을 갖고 볼 법도 한데 이상하게 끌리질 않았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데 피아노 장면은 생각보다 초반에 나왔고, 계속 남녀 주인공 얘기가 알콩달콩하기보단 오글오글 거려 ‘이게 왜 인기있나’ 심드렁한 자세로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화 장르가 바뀌었다. 로맨스에서 호러(?)로. 전반부와 후반부 두 영화를 하나로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이 영화 속 주걸륜과 계륜미가 다니는 예술학교는 단수이의 ‘담강중학교’다.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사람들에겐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근처에 홍마오청, 진리대학교도 맑은 날 사진으로 남기면 막 찍어도 화보가 되는 곳이라 많이 찾는다. 아쉽게도 늦게 단수이에 도착에 여긴 못 갔다.


대신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했다. 이곳은 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단수이역에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 워런마터우 정류장에 내렸다. 정인교에 올라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스타벅스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멋지다기에 근처 스벅을 찾았으나 이 스벅이 그 스벅이 아니었다. 그냥 커피 한잔 하며 쉬다 나왔다.



단수이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서둘러 왔어야 했다. 강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야시장에 들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듯하다. 페리를 타고 파리에 가는 것도. 원래부터 일몰만 보겠다고 간 거긴 했지만 막상 그것만 보고 돌아서려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도대체 첫사랑은 왜 이렇게 지질한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6343


된소리로 [찌질]이라고 발음해줘야 더 느낌이 살긴 한다.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건지 아닌건지 자기 마음도 제대로 모르고, 설령 좋아한다고 해도 표현이 서툴렀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이 남자는 자신의 결혼식에 가는 걸까,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 중인 걸까.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누구 하나 먼저 속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졸업 후 맞은 크리스마스에 함께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서로의 소원을 적어 풍등을 날린다. (말로하지 왜 쓰기만!)


핑시선 투어에서 풍등 날리기로 유명한 곳은 ‘스펀’이다. 기차가 매일 오가는 기찻길 양옆으로 풍등 가게 등이 줄지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적은 뒤 기찻길로 나와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소원을 간직하지 않고 날려버리는 게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풍등 날리기는 하지 않았다.(혼자 가서가 아니다) 대신 풍등에 소원이 적힌 기념품을 사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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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에서 가장 카메라 플래시가 많이 터지는 순간은 기차가 지나갈 때다. (법적으론 철길에 내려가는 것이 불법이니) 방금까지 걷던 철길로 기차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갈 때는 괜히 짜릿해진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지나가는 기차와 함께 풍등을 날리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한다.



#홍등이 켜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364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반, 부모님이 음식을 마음대로 먹다 돼지가 되어버리고 길을 헤매던 치히로는 하쿠를 만난다. 하쿠는 저녁이 되면 위험해진다며 치히로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한다. 그때 홍등이 켜지며 낮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배경의 모델이 된 곳이 지우펀이다.


사실 지우펀과 관련해서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비정성시>였다. 숙소에서 타이페이역으로 매일 걸어가면서 ‘2.28평화공원’을 지나쳤다. 안에 들어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큰 의미도 두지 않았는데 대만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곳이었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2746


2.28사건은 1947년 대만 본토출신 대만인(본성인)과 대륙에서 온 외성인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타이페이역 근처에서 전매품인 담배를 팔던 본성인 여성을 전매국 단속원이 구타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만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이 군중에게 발포해 사상자가 나왔고, 이후 파업과 시위가 이어졌다. 당황한 국민당 정부는 대대적인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2만8000명(정부 추산) 희생자가 발생했다. 계엄령은 87년까지 이어졌다.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2.28사건은 금기어가 됐다. 88년에야 진상조사가 이뤄졌고, 95년 타이베이 공원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령비가 세워졌다.


<비정성시>는 지우펀을 배경으로 2.28사건을 모티브로 해 지우펀에서 촬영됐다.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이제는 사라진) 시네코드 선재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 전작전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장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못갔다. 이후 <비정성시>를 보려고 여기 저기 뒤져봤지만 도통 볼 방법을 찾지 못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건 자막이 없는 버전 뿐. 심지어 DVD를 사도 볼 수단이 없다. 아 진짜 불치병같은 게으름을 빨리 치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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