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대만에 대해
아는 만큼(혹은 관심이 가는 만큼) 보인다고 여행 후 대만 뉴스가 자꾸 눈이 간다. 물론 ‘뉴스’ 자체가 많기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집어든 신문 1면부터 대만 얘기가 나왔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대만 마잉주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기사. 1949년 분리된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이 만났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의 만남을 ‘80초간의 악수가 66년의 비바람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92컨센서스’에 대해 재확인하고 양국 간 공식 핫라인 개통을 약속했다. 92컨센서스는 92년 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양측이 각자 해석에 따른 국가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분위기가 마냥 화기애애했던 것만은 아니다. 긴장감도 느껴졌다.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총통이나 주석이라는 부르는 대신 서로 ‘선생’이란 호칭을 썼다. 누가 누구에게 종속됐단 이미지를 풍기지 않기 위해 만찬 비용도 각자 반반씩 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며 대만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해졌다. 대만인의 대다수가 중국본토로부터 건너온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을 중국인이라 보는지, 대만인이라 보는지 아니면 중국에서 온 대만인이라 보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문제가 대만 내에서도 중요한지 대만 정부는 92년부터 국립정치대학교에 위탁해 매년 1만명을 뽑아 정체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선 ‘대만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다’고 답한 사람이 59.0%로 가장 많았다. 대만인이며 중국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33.7%로 줄었고 중국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3.3%에 불과했다.
대만-중국 관계를 생각하던 중 ‘쯔위 사태’가 터졌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는 마이리틀텔레비전 인터넷 방송에서 대만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중국 사람들로부터 ‘대만 독립운동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후속조치다. 쯔위는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해협양안이 하나이며 전 제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깁니다”라며 사과문을 읽고 머리를 숙였다.
대만은 경제력 등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의 입지가 좁다. 중화민국(Republic of Taiwan)으로 유엔에 가입되어 있던 대만은 71년 중국이 유엔에 들어오면서 밀려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이후 국제 공식석상에서 대만국기(청천백일만지홍기)는 물론 대만이란 이름도 사용하지 못한다. 올림픽에는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란 이름으로 출전한다.
다른 나라와 수교도 맺지 못하고 있다. 과거 관계를 갖고 있던 국가들은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대만의 손을 뿌리쳤다. 한국도 92년 대만과 단교했다. 중국과의 수교 직전까지 사실을 알리지 않아 대만에선 ‘쫓겨나듯 떠났다’는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만 내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역사의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에 첫 여성 총통으로 취임한 민진당 차이잉원은 총통 당선 기자회견에서 “한 국가의 국민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모두가 존중해야 할 정당한 권리다. 누구도 국민이 자신의 국기를 흔드는 걸 억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쯔위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선거 전 이 일이 터지면서 공분한 젊은이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해 민진당 승리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에 집권한 민진당은 대만 고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직전 집권당인 국민당은 중국과의 재통일을 지지한다. 장제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단적인 예가 타오위안 공항과 중정기념당 명칭 변경이다.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은 집권 후 중정공항은 타오위안 공항으로, 중정기념당은 대만민주기념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정은 장제스의 호다. 대만 각지에 설치된 장제스 동상도 철거됐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당이 집권하게 되면서 대만민주기념관은 다시 중정기념당으로 현판을 바꿔 달게 됐다.
매시 정각 이뤄지는 교대식.
*참고자료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최창근
-한겨레 ‘쯔위의 나라’ 대만을 이해하기 위한 8가지 핵심 키워드(1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