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구일까. 사회주의혁명을 이룬 레닌이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면 어딜 가든 ‘표트르 대제’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 북방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군사적 요충지를 세우기 위해 새로운 도시 건설에 나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으로 열린 창’으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이자 러시아가 유럽으로 뻗어나기 위한 발판이었다. 습지대를 도시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완성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12년부터 1918년까지 모스크바 대신 수도 역할을 맡았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뒤엔 그를 기리며 ‘레닌그라드’로 불리기도 했다.
유럽을 꿈꿨던 왕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처럼 느껴졌다. 러시아는 ‘러시아’의 모습일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러시아는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르미타쥐엔 당시 왕족들이 유럽 각지에서 사 모은 렘브란트, 다빈치 등의 작품이 걸려있다. 건물 역시 유럽에서 건축가를 데려와 비슷하게 짓도록 했다. (유럽에 가보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유럽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늪에 세워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건물에 반지하가 많다. 길을 걷다 갑자기 발아래 놓인 과일을 보며 ‘뭐지?’ 생각하고 보면 작은 창으로 가게가 들여다보였다.
유럽을 향하고 있는 궁전. 유럽을 바라보며 서구화를 다짐했을 표트르 대제를 떠올려볼 수 있는 곳이다. 궁전 앞 분수 뿐 아니라 아래 공원 곳곳에 배치된 분수도 재미있는 볼거리다. 특히 '장난분수' 앞을 지날 때면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분수를 작동시키는 사람이 사람들이 지나갈 때 갑자기 물이 나오게 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데, 이미 이걸 아는 아이들은 그 옆에서 '언제 분수를 트나' 눈치를 보고 있다 분수가 솟구치면 재빠르게 도망치며 깔깔댄다. 물세례를 받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남 몰래 웃었을 왕을 생각하면 왠지 나도 웃음이 난다.
파블롭스크는 예카테리나 2세가 아들 파벨 1세에게 선물한 궁전이라고 한다. 러시아 고전주의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벨 1세가 사망한 뒤에는 부인이었떤 표도로브나가 거주했다.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궁엔 그녀의 수공예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세계대전의 흔적은 이곳에 아직 남아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차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 하나다. 도시 전체를 보호하고 싶었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 시내를 사수하기 위해 교외지역인 이곳에까지 힘을 쏟을 수 없었다. 피해를 덜 입길 나중에 돌아와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유물 약탈 뿐 아니라 폭격으로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졌다.
복원으로 새로 태어난 궁 곳곳엔 복원 이전 모습과 복원 과정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옆엔 복원을 위한 모금함도 놓여있었다. 어떤 곳은 검게 그을린 벽면을 그대로 남겨두기도 했다. 전쟁의 참혹함 역시 보존해야 할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록해두었다.
1717년 표트르 대제 당시 항후 예카테리나 1세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궁전 앞 공원이 조성되고 또 주변에 여러 건물이 들어섰다. 각 시기 어떤 풍이 유행했는지, 궁의 주인이 어떤 풍을 좋아했는지에 따라 건물들이 들어서 이 곳에선 고전주의, 로코코양식 등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예카테리나 궁전의 백미는 6t 호박조각으로 꾸며진 '호박방'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호박방을 해체해 들고가버린 뒤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1979년 독일의 지원으로 받아 25년간 복원했다고 한다. 2003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예전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요즘엔 촬영을 할 수 없다. 사실 궁 전체가 너무나 화려해서 이 방이 유달리 화려한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의 주인 예카트리나 대제가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는지는 옷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가 죽은 뒤 1만3000여벌의 옷이 남았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벌씩만 입는다고 해도 약 36년이 걸리는 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