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입니다.
우울증이 왔을 때 세계의 내노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저의 친구였습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 작가를 좋아합니다. 그의 작들은 다 본듯하지요. 일상의 서정적인 이야기들에 감정선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무릎을 치게 합니다. 주말 오후의 볕이 창 너머로 게으를 정도로 느리게 들어올 때쯤 소파에 눞다시피 한 체로 그의 글들을 읽어가는 맛. 몇 년 바쁘게 지내오다가 근자에 책 좀 읽어볼까 하다가 찾아보니 마음에 드는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간 기록해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하나둘 각색해 보았지요. 자전적 단편소설에 가깝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소설일까 에세이일까 고민스럽습니다. 물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적으로 작가의 서사에 대한 이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진 않았습니다. 거기엔 주변에 영향을 줄 민망함도 있겠고, 억울함도 오해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고, 그런 소동을 사실에 가깝지만, 멀찍이 이야기들을 풀어가고자 했습니다.
굿즈-. 내 손으로 굿즈를 만들곤 싶진 않았습니다. 작가 내지 크리에이터로 기억되고 싶었지요. 굿즈는 뭐랄까 마치 뜨내기 장사치 같은 뉘앙스였거든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그런데 가만 보니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이미지라고 하는 것의 태생은 갤러리가 아닙니다. 결국 사람은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표면의 질감을 느낄 때 감각이 확장되지요. 디지털 작품을 해오면서 ‘실물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화가에게 캔버스가 무엇이 될까라는 화두와 마찬가지로 ‘나는 어디에 프린팅을 할까?’라는 화두가 생겨버렸습니다. 아무렇게나 대충 컵에 이미지를 떡 붙인다고 될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굿즈는 이뻐야 합니다. 살 때만큼이라도 기분전환이 되면 좋겠지요. 그것으로 목적에 반은 도달한 셈이 됩니다. 소소하고 다정히 그리고 위트 있게 굿즈가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는 TA입니다. 한글로 타라고 불러도 타씨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씨라고 불러주는 게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들리거든요. 마흔을 보고 있고, 유물 사진을 촬영하는 일을 합니다. 보통의 회사원처럼 출근할 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하는 직장인입니다. 아아-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하면 되니 저도 제가 부럽습니다. 하하. 주말엔 어딘가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