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그리고 뒤샹은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개척한다. 디자인사를 공부 하다 보면 시대의 철학성은 곧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뒤샹의 소변기 작품에서 전시공간에 대한 프레임을 깬 지점에서 박수를 치지만, 그의 소변기는 나에게 심플함으로 다가온다. 소변기가 심플하게 생겼다는 뜻이 아니고 투박한 오브제가 전시공간에 덜컹 놓을 생각을 했다는 생각의 단순함이다.
생각을 간소화시키듯 삶을 간소화시키는 것. 비움이고 내려놓음이고 덜어냄이다. 덜컹 덜어내고 덜어 내다 보면 곧 덜어내지 말아야 할 요소만 남는다. 나의 작품은 그 사이 오브제의 경계선을 탐구한다. 한없이 덜어 내다 보면 캔버스엔 흰 점만 남을 수 있다. 그것은 곧 오브제의 뜻이 상실된다. 적어도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작품 자체로 알아야 하지 않는가가 나의 철학이다. ‘도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은 실패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작품에서 덜어냄은 한없이 쉬어짐으로 가는듯하다. 그렇다고 손쉽게 쉬워진다면 그것 또한 촌스럽다.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에 있는데, 이게 여간 어렵지 않다. 갖고 있던 가방을 버리고, 또 버리고, 필요한 상황에 맞는 가방 몇 개만 둔다는 것. 어떤 것을 하는데 필요한 소품들 몇 개만 갖고 있다는 것. 지금 필자의 가방을 뒤적거려보니, 두통약, 회사 출입카드, 휴대폰,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 자동차 키. 전자담배 이게 전부다. 몇 년 전에 책을 버렸다. 괜히 공간만 차지한다. 나중에 또 보겠다 싶은 생각은 생각일 뿐 두 번째 열어보지 않는다. 그럴 땐 도서관을 이용하자. 부모님 집에 기생하기에 다행히 살아갈 소품 몇 개만 있으면 된다. 그것들은 전부 필요를 채우는 것들이다. 그 외의 것은 눈 질끈 감고 버려도 될 법한 것들이다. 여기서 더 채울 것은 없다. 오래 입은 바지가 무릎이 나와서 바꿀 요량인 생각을 갖고 있다. 딱 생각만 같고 있다. 보트 슈즈도 하나 장만해야 할 텐데, 매일 신던 신발만 신고 있다. 더 빨리 떨어진다. 여분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돌려 신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것을 지겹게 신던가, 일 년에 여러 개를 돌려 신던가 선택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을 바로바로 처리하는 습관은 일과 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긴 하다. 있어야 할 것은 있고 대체할 것은 대체하고, 없어야 할 것은 없다. 이것은 마치 수학의 개념처럼 분명하다.
요즘의 시대 철학은 다양하다. 이것이 철학이면 취향이고, 저것이 취향이면 철학이 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 미니멀이라는 단어에 끼어 맞춘 삶의 양식이 아니라, 생각대로 살아가 보니 주변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시는군요!"라고 이야기한다.
"그게 아니고, 이렇게 살아감을 추구하는 거라고요!"
라고 이야기한들 돌아오는 답변은
"그게 미니멀이에요!"
미니멀이 먼저인가 살아감이 먼저인가. 이럴 땐 져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미니멀이군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