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관상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어간다. 쾌창한 오후를 지나 맞이하는 여름날 저녁의 정원은 특히 별미다. 퇴근 후, 해가 떨어질세라 서둘러 집에 오겠금할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다. 가을과 겨울은 해가 짧아 느긋하게 관상할 겨를도 없다. 종종 동네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또 하나의 감상적이지만, 우선 춥다. 추위엔 감상이고 뭣도 없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봄,‘음- 딱 이게 봄이다’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달력에 쓰인 춘분이 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끼리의 약속이지만, 시골에 있다 보면 온 자연이 계절을 말해주고 있거든. 그래서 달력이 말해주는 것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캠핑의자에 기대어 저 멀리 능선을 바라보다 보면 하늘의 빛깔과, 나뭇잎들의 색, 새초롬한 바람에서 시원하다고 여겨지는 기분으로부터 봄이 옮을 아는 것이 좀 더 나에게 설득력 있다. 계절을 느끼기 위해 해가 떨어지고 산 밑으로 그늘이 지면 산책을 나간다. 아카시아 나무가 군데군데 심겨 있어 그 밑을 지나갈 때면 향이 아득하다. 아카시아 향만큼 봄을 알리는 냄새도 없다. 근래에 이웃집에 라일락 나무가 심겨 있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라일락 향까지 맡고 집으로 돌아오면 완벽해지는 저녁.
늦겨울에 심은 배추와 상추씨앗에 순이 돋고 어느새 꽃잎처럼 새파랗게 활짝 피었다. 뙤약볕에 시들지 말라고 스프링 쿨러를 잔디밭에 틀어놓는다. 그 물은 소나무, 채소를 지나 계속해서 뿌려댄다. 주말마다 안동을 나가곤 하는데 요즘은 일이 없어 계획 없이 나가진 않는 편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나이가 차고, 중년이 되고 노년을 맞이하는가 싶다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은 생각과 마주한다. 마치 38선에 있는 것처럼 생각은 그렇게 마주 보고 있다. dmz에 오염되지 않는 야생화들처럼 조금은 권태와 불안과 만족과 환희와 즐거움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본다. 아직은 좀 더 두고 보자 싶어서 타협 중이다. 정원을 관상하는 법은 그러한 경계선에서 가만히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 삼겹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