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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못 사도 인류애는 얻었습니다.

-여행 중독자가 부모님께 드리는 최후 변론

by taasha


차 한 대보다 값진 것


이 글은 이제 여행 그만 다니고 돈 모으라는 부모님께 드리는 부모님 전 상서이다. 쉬지 않고 여행을 다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 말씀 바친다.

"그 돈 모았으면 차 한 대는 뽑았을 거야."

지극히 상식적인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차는 감가상각이 크지만 여행 경험은 새로운 버전의 나를 만드는 생산적인 활동이라 감히 주장하고 싶다.


여행은 노는 게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여행 가서 노는 줄만 아신다.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여행, 특히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여행은 중노동이다.

집을 옮기는 달팽이마냥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어깨가 빠질 것 같은 고통과 땅에 닿을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신발 속 물집은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여실히 증명한다.


낯선 곳에서 나는 바보가 된다.

언어를 몰라서, 그 나라의 규칙이 달라서, 내 예상과 어긋나서, 이방인이라서

나는 원주민들의 호의와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다.


20대의 유럽 여행, 길을 찾았다


20대,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첫 장기 여행이었고, 혼자 여행의 로망을 실현하느라 겁도 없이 유럽 이곳저곳을 다녔더란다.

나는 길치였다.

지도를 잘 못 봤다.

같은 길을 빙빙 돌다가 "아이쿠, 여기 있었네." 하며 코앞에 있던 목적지를 찾기 일쑤였다.

핸드폰 화면엔 언제나 내가 여러 갈래로 나눠진 길 위에 점으로 찍혀 있었다.

점은 나보다 조금 늦게 따라왔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하루하루였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런던 한복판에서 핸드폰이 소명을 다하고 말았다.

"제발, 호스텔까지 조금만 더 버텨줘."

기도했지만 매정하게 꺼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호스텔의 이름뿐,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멘 채 인파에 휩쓸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쩔쩔 맸다.

어쩐지 걸으면 걸을수록 호스텔과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에게 호스텔 이름을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다행히 한 할아버지가 어디서 본 것 같다며 방향을 알려줬다.

기대를 안고 갔지만, 비슷한 이름의 호텔이었다.

절망스러웠다.

날은 깜깜해졌고 내 관절은 어서 누우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하철에서부터 장장 몇 시간을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호텔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때 금발 머리를 우아하게 올린, 긴 다리를 더 길어보이게 하는 하이웨스트 바지를 입은 세련된 런더너가 지나갔다. 나는 무작정 그녀에게 다가가 호스텔 이름을 대며 그곳을 아냐고 물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 모르지만 택시를 태워줄 수 있어요."

런던은 택시가 꽤 비싸다고 들었다.

처음 본 여행객을 위해 택시를 잡아준다니...가격이 얼마나 나올 줄 알고!

순간 tv에서 봤던 택시 납치와 기상천외한 소매치기 비법들과 세상의 모든 부정의한 것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그녀는 나도 마침 택시를 잡으려던 참이었다고, 남편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눈동자 색깔은 파랑이나 초록이나 헤이즐넛 색깔이었을 것이다.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눈빛은 기억난다.

진솔하고 단호한 눈빛.

나는 그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곧이어 검은색 택시가 도착했다.

짐을 실을 수 있을만큼 큰 택시였다.

캐리어와 배낭을 실었다.

무게가 덜어지니 정말로 살 것 같았다.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으려 배낭을 꼭 끌어안았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정말 남편을 만나러 가는 건 맞는 걸까?’

택시가 느리게 가니까 뛰어내려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차문을 열고 뛰어내릴 태세였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계속 말을 걸었다.

"진짜 남편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신경 쓰지 마요."

영국식 악센트로 딱딱하고 낮은 목ㄱ소리였다.

택시는 몇 분 뒤 내가 찾고 있던 호스텔에서 멈췄다.

살았다!

단전에서부터 땡큐쏘머치가 흘러 나왔다.

다급하게 지갑을 찾았는데, 그녀는 택시 유리창을 내린 채로 괜찮다고 말했다.

좋은 여행 되길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택시가 떠났다.

나는 호스텔 앞에서 얼이 빠진 채로 택시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약속 장소엔 잘 도착했을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나를 짓눌렀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나를 그 사람은 왜 기꺼이 믿어줬을까? 왜 먼저 손을 내밀었을가?

그건 정말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

소매치기와 벌이는 쉐도우 복싱과, 캣콜링과, 여행자의 고독함과 세상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보다 더 커다란 인류애!

정말로 나는 새로 태어났다.


나에게 여행이란 통로다.


그래서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에게 여행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연결되는 통로를 찾는 일입니다.

여행이 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꿨는지는 설명을 잘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순간의 인연에도 성심을 다하려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마음과 신뢰를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일.

다시 볼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이득을 주지 않을 사람이라도,

내가 뿌린 인류애라는 씨앗이 누군가로부터 또 다른 열매를 맺을 것이기에,

나는 모르는 사람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외국인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삶이 소풍이라면, 우리는 모두 지구별로 내려온 여행자들이 아닐까요?

삶이라는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 저는 항상 여행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 내년에도 또 떠날 것 같습니다. 저도 압니다. 여행은 돈이 많이 들어요. 그

돈으로 차를 살 수도 있고, 그 돈을 오랫동안 모으면 집도 살 수 있겠죠?

하지만 여행이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베풀게 만든다는 걸 믿어요.

여행은 제게 단순한 소비가 아닙니다.

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좋아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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