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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asha Jan 01. 2021

불운 경보기

서른 맞이 신점과 사주 본 후기

 서른은 싱숭생숭한 나이다. 그래서 신점과 사주에 대략 30만원을 썼다. 30대의 시발(始發)비용이다. 첫 번째 신점은 대학 동기의 간증에 홀린 듯이 예약금을 걸었다. 대학 동기의 친구가 여기서 신점을 봤는데 세상에 들어가자마자 술사가 친구의 사정을 다 꿰뚫어 봤다더라 뭐라나...현실로 인해 힘겹게 접었던 꿈을 다시 펼치라는 따뜻한 조언에 어찌나 위로를 받았던지 눈물을 한바탕 쏟고 왔다고 했다. 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말에 예약을 잡으려면 자그마치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시간은 빨리 가니까 1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복채가 자그마치 20만원이었는데 사회초년생에겐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지만 나의 인생지도를 알 수 있다면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몇몇 정치인들도 대선 전엔 거금을 주고 술사에게 점을 친다고 하니까...


 생전 처음 보는 신점에 예약 전날부터 잔뜩 긴장이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자네는 곧 죽어.’라던가 ‘차를 조심해.’와 같은 말을 들을까봐 걱정이 됐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맘의 준비라도 할텐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준다는 곳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취소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동기에게 메시지가 왔다. ‘우리 내일 1시에 만나기로 한 거 알지?’ ‘그럼그럼’ 기대감을 한껏 품은 듯한 라이언 이모티콘을 보냈다. 다음날 이모티콘과 같은 표정으로 동기를 만났다. 그런 곳을 갔다 오면 교회나 절을 한 번 들렀다 가야 한다, 어느 지역이 기가 쎄서 그런 술사들이 많이 산다더라, 기가 약한 사람은 신점 보고 귀신이 붙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더라 등등 불운과 관련된 온갖 민간 설화와 요법을 나눴다. 우리는 k-구복 신앙에 막 발을 들이던 참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강남의 한 빌라였다.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점을 되게 잘 보나 봐.” 술사는 아직 로딩이 필요한 듯 보였다. 신당이 있는 방에서 종종 나와 물을 마시고 들어갔다. 일상복을 입어서인지 인상은 평범하게 보였다. 그래서 더 비범해 보였다. 대기 시간이 꽤 있었는데 그동안 거실 쇼파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핸드폰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마침내 로딩이 끝났다. 친구가 먼저 들어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신당의 문이 열렸다. 친구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기가 약해보이지 않으려 척추 기립근을 꼿꼿이 세우고 신당으로 향하는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무당이 교자상에 기대어 의미심장한 한마디로 나를 맞이했다. “한량이네.” “어...어떻게 아셨어요?” 나의 본질을 꿰뚫는 ‘한량’이라는 두 글자에 척추기립근의 긴장이 일순간 무너졌다. 준비한 기자 수첩과 볼펜을 야무지게 손에 쥐고 첫 단어를 적었다. ‘한량.’ 메모를 하라는 것은 이곳을 소개시켜 준 친구의 팁이었다. 술사가 엄청나게 많은 말을 내뱉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잘 까먹더라는 것이다. 녹음을 하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그건 안된다고 했다. 왜냐고 재차 질문했더니 그러면 무당이 신경 쓰여서 신빨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존중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내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술사는 뭔가를 마구 적더니 “언니는 뭐 무난해. 선비인데 망한 양반집 선비야.”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적었다. ‘망한 양반집 선비’ “노는 걸 좋아하네.”“네! 저 노는 거 좋아해요.”“응. 직장 절대 그만두지 마.”“네.” 다음 줄에 적었다. ‘노는 걸 좋아함. 직장 그만두지 말 것.’ “언니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녀야겠어. 노는 걸 좋아해가지고. 안정적인 직장 다니고 있지?” “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잘 선택했어.” 미심쩍었지만 하하하 웃어보았다. “32살부터 잘 풀리는데 잔병치레 조심해. 그리고 사람때매 구설수가 생겨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뭐 살다보면 잔병치레 없는 사람 어딨고, 사람때매 구설수 안 생기는 사람이 어딨냐마는 ‘잘 풀릴거야.’라는 말 하나로 술사가 정말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길 빌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본론은 후반에 몰아친다.


 "그런데 남자는 절대 만나면 안돼. 엄마 줄에 남자 복이 없어." 비혼 인구가 넘쳐나는 시대이고 나 역시도 1인 가구를 고려하고 있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나의 미래를 단정 짓는 태도에 불쾌해졌다. 그러니까 혹여나 영안으로  흑빛 미래가 눈에 보이더라도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기분을 좀 더 배려할 수는 없나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슬쩍슬쩍 조상줄을 언급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심해야할 것들을 읊어대는데 마치 내게 숨겨져 있던 주홍글씨가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을 향한 악담 아닌 악담을 계속 늘어놓았다. 엄마와 아빠 팔자가 어떻느니, 자식은 그 팔자를 벗어나지 못하느니하며 나의 열등감과 두려움을 수도 없이 찔러댔다. 엄연한 손님이었음에도, 무당에게서 나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무례함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현실에 만족하고 살라는, 인생의 방향키는 네가 쥐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한 시간 동안이나 들은 것이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내가 그 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끝까지 받아적었다는 것이다.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기자 수첩에 눈을 고정시키고 쪽집게 강사의 수업을 듣듯 그의 말을 기록했다. 사실은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맞받아치면 무당의 입에서 그보다 더한 저주나 찝찝한 예언들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인생의 방향키를 운명에 맡기려던 자의 굴욕적인 결말이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다가 유명 유튜버가 전화 사주를 본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상담 내용과 인생 항로가 비슷하다는 말에 또 한 번 혹했다. 지난 번의 찝찝한 점괘를 덮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당장 전화했다. 역시 구복신앙의 나라답게 점괘를 받으려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했다. 복채는 5만원이었다. 20만원보다야 싸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입금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의 통장은 늘 빈곤할 수밖에 없다. 예약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을 때 즈음 확인 문자가 왔다. 사주팔자에 담긴 신묘한 미래가 개봉박두되는 순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된 시간에 전화를 받았다. 상쾌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장밋빛 미래를 예보해줄 것만 같아 안심이 되었다. 예상대로 나의 사주는 아주 무난하지만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적당히 만족했다면 그분과의 대화는 아름답게 끝났을 것이지만, 추가 질문이 문제였다. "제 최종 꿈이 작가인데요, 가능할까요?" "아니요, 못해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운이 사주에는 있는데요 대운이 안 따라줘요.85세 때 들어오는데 그때 와봤자 뭐할거야?선생님은 크게 되진 않아요. 그게 좋은 사주에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저도 크게 되고 싶어요!""선생님 사주로는 안돼요." 더 이상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대충 통화를 끝내고 수심에 잠겼다. 내가 원하던 삶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역술가들이 그려준 나의 미래를 받아들고 깊은 우울감과 절망에 빠지는 것인가. 심지어 그 그림은 명확한 형태도 없다.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언어들이 나의 자존감을 구체적으로 좀먹고 있었다. 역술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실해진 건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스무살 때는 내가 서른이 되면 무언가 되어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진짜 어른이라 여겼던 서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엔 모르는 것 투성이다. 스무 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게 됐다는 것이다. 질문을 줄였고 고민들을 여유 있는 미소 뒤에 숨겼다. 내가 점을 보는 이유는 안정제를 구하는 절박한 행위였다. 사실 난 보기보다 약하고, 그동안 너무 많은 실패를 했고, 그래서 더 이상 스스로를 믿기 어려우니 잠시라도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마취제를 달라고 구걸하고 있던 것이다.  갑자기 내가 불쌍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한 인생의 청사진을 과감히 찢어버리기로 했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쓰면 된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절약부터 시작하면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부터 기르면 된다. 성공과 실패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대체로 실천력이 부족하면서 성공과 실패에 집착이 강할 때 삶의 통제력을 잃게 된다. 삶은 우연과 인과의 혼합물이란 걸 알고 있다. 우연의 알고리즘을 계산하려 힘 쓰기보다는 하루하루 인과의 연결고리를 채워나가려 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맺는 인과 관계가 단단해지고 풍성해질수록 우연한 악운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우연한 행운에 겸손하게 대응할 것이다. 불운 경보기를 잠시 꺼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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