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를 찾다.
일본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만 봤었던 그의 시가 가슴으로 와 닿는 계기가 되었다.
흔히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인 그가 느꼈던 부끄러움에 관해서 생각해봤다.
사촌인 몽주는 독립운동을 사람들을 모으고 행동으로 투쟁하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런 몽주와는 다르게 왜소하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하는 동주..
시를 쓰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라가 빼앗긴 상황에서 시를 쓴다는 건 동주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쉬는 날
어딘가에 가고싶은데 걸어서 갈 만한 곳은 없을까 하고 뒤적기리던 여행책자에서 도시샤대학교를 발견했다.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 대학이 교토에 있다는 것과 도시샤 대학 안에는 윤동주의 친필로 새겨진 비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사쿄구에서 도시샤 대학까지 걸어서 5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갔던 나머지 10분 정도를 더 헤맸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도착하고 나서 시비에 적힌 한글을 보고서 괜스레 마음이 울렸다.
윤동주의 시비 옆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두 시인의 시비 앞에 섰을 때, 전율이 느껴졌다
고향땅을 향한 그리움과 글을 쓰는 자의 비애가 느껴졌다.
영화에서 동주는 글을 쓰면서도 항상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면서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예술이, 그림이, 만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나 스스로 질문했을 때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 높게 쌓은 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온 길들을 다시 되돌아갔다. 반 세기 전에 나라 잃은 시인이 걸었던 길을 반세기의 시간을 넘어서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내가 걷고 있다는 게 과거와 현재가 서로 긴밀하게 엮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거리를 지나갔을까?
카모가와(鴨川)강변을 걷는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멀리 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빛이 강물에 비추이는 걸 보면서 고향땅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그들의 모습과 시가 내 가슴으로 걸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