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비 Apr 12. 2019

14. 4월, 5월

4월

편의점 점장에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당장 내일부터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4월 시프트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점장은 30분 내내 나를 회유하려 노력했다.

“지금 와서 멋대로 그만두는 게 맞니?”

“한 달만 더 해, 그 뒤에  안 되겠다 판단하는 건 점장인 나야 네가 아니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내 의사를 무시하며 일한 월급에 대해 지급제한이 있을 거라는 협박을 해왔다. 그것도 통하지 않자 일단 다음 출근 때 다시 얘기하자고 했던 점장은 다음 날 매장으로 출근한 내게, 사전 연락도 없이 그만 나와달라는 통보를 했다.


월급 지급명세서에 사인을 남기고 뒷맛이 좋지 않은 끝을 맺었다. 옆집 할머니에게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할머니는 오랜 경험이 느껴지는 말을 건네주셨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는 거야 일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 좋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힘내”

타국에서 마음 지키는 법을 터득해갔다. 나마저 나를 아끼지 못하면 힘든 건 나 자신이다.

편의점에서의 경험은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덕분에 일본 돈 계산에 능숙해졌고

라멘집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실수로 그릇을 깨거나 주문이 꼬이는 둥 연달아 실수하던 날이었다.

잦은 실수에 시무룩하던 내게 H군이 와서 말했다.


“나도 처음 들어와서 일했을 땐 많이 실수하면서 배웠으니까, 아직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한국에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이 말은, 나를 꾸준히 라멘집에서 일하게 해 준 힘이 돼주었다.



5월

일본에서 5월은 축제의 달이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일주일간의 긴 연휴기간인 골든 위크로 가게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덕분에 라멘집에서 할 일이 늘어났고 덩달아 내 기분도 한껏 고양되었다.


12월에 놀러 왔던  J군과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우리 집에서 머물기로 정해졌다.  나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픈부터 점심까지는 일하고 일을 마치자마자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놀러 갔다.

오랜만에 말하는 한국말이 어색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치 죠지에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만 봐왔던 축제였다. 사람들의 긴 행렬 중에는 아이와 어른들이 보였다.

아마도 이 축제를 위해 몇 달 동안 연습했겠지. 그 생각을 하면서 따듯하다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내가 살아온 환경은 먹고 사는데만 모든 에너지를 쏟게 했다.

아주 어릴 때만 해도 옆집이나, 몇 층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았던 거 같은데,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면서 누가 이웃인지 모르게 되었다. 가족 중 큰 어른들이 돌아가시면서, 친척들 발걸음도 뜸해졌다.

어렸을 땐 좋은 부분만 봤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고 환경이 바뀌면서 보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종종 아픔을 동반하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호기심 많은 스무 살 같은데 언제 이렇게 진로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됐지?


"20대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시기이고 30대에는 그 경험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40대에는 거기서 결과물이 나와야 해"라는 말을 들은 나에겐 초조함이 있었다.


어떤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마저 시작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에게 결정을 유예할 시간이 필요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봄, 3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