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은 다시 돌아오는 데에 있다.
여행의 목적은 다시 돌아오는 데에 있다고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스토리텔링에도 이런 법칙이 적용된다.
주인공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자기의 자리에서 떠나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의 안식처에서 떠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주인공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만화는 취미로만 하시는 게 어떠세요?"
"성원 씨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2015년 겨울에 작가님의 말은 , 당시 나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작가님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저 이대로 잘 따라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식의 내 행동을 잘 꼬집었던 말이었다. 자신을 직면하지 않은 채,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의 말을 꾸역꾸역 주워 담기만 하던 나에게 이야기가 써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귀국 후, 보게 된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유독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의 대사가 뇌리에 남았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라고요, 이 슈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스파이더맨은 토니 스타크가 건네준 슈트만이 자기를 완벽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이토록 스파이더 맨에게 감정이입이 된 것은 그가 아이언맨을 닮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나도 작가님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림만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요, 그림이 아니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림만이 나를 사람들 속에서 빛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행동이 없는 열망은 사람을 낭떠러지로 몰아간다. 주야장천 동경하기만 했을 뿐 행동의 변화는 없었다.
만화를 즐겁게 그리지 못하는 현실과 작가라는 꿈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네가 슈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이 슈트를 가질 자격이 없어
스파이더맨에게 아이언맨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의 행동에는 그를 닮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었고 곧 자신이 동경하는 아이언맨에게 배신당한다.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에게 이런 일침을 놓았던 건 슈트에 의지하지 말고 온전히 너 자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열망을 가진 사람일까? 내게 주어진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스스로 이 질문 앞에 서야만 했다.
동시에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하고 싶은 일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어떤 날엔 돗자리를 들고나가서 밤하늘을 감상하고 그걸 그려보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안에 할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아해서 하는 일을 꾸준하게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말이 이해가 되고, 나를 아프게만 했던 작가님의 말이 이제야 긍정이 된다. 머리로만 아는 걸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머리에서 심장까지 불과 30센티도 안 되는 이 거리가 세상 어떤 곳보다 멀다고 한 걸까?
떠나기 전 막연함과 두려움으로만 가득했던 워킹홀리데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던 것처럼 어쩌면 그림과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어렵기만 했던 스토리도,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써나간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한 글도 이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