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도시락 #2:차가운 바게트 VS 따뜻한 벤토

미역국의 부재를 메운 벤토

by 찰나 지나

사투 끝에 만난 작은 울음


저녁 5시쯤부터 슬슬 시작된 진통.

첫 출산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밤 10시 무렵 나는 이미 산부인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자궁문이 어느 정도 열려 '무통 천국'에 다다랐고,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며 아이를 기다렸다.

푸르스름하게 동이 틀 무렵,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지며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됐다.

남편은 곁에서 내 손을 꼭 잡고 과정을 함께했다. 간호사가 "푸세, 마담(Poussez, Madame! 밀어내세요, 부인)!"이라고 외치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숨을 참으며 아이를 밀어냈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금방이라도 세상 밖으로 나올 것 같던 아들은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아이를 끌어내야 했고, 그제야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감동을 만끽할 틈도 없이 병실 안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여러 명의 의사가 바쁘게 오가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심한 출혈로 인해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본인도 무척 애를 썼는지, 기대했던 우렁찬 소리가 아닌 작고 연약한 울음소리였다.


응애— 응애—

가냘픈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아기가 건강하다는 의사의 목소리, 내 품에 안긴 그 작고 가냘픈 생명을 마주한 순간, 그제야 비로소 모든 고통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경이로운 감동이 밀려왔다.


미역국만 없었을 뿐 완벽했던 벤토(도시락)


하지만 감동의 시간은 짧았다. 출혈이 심해 수혈까지 받아야 했던 내게, 프랑스 병원이 내놓은 첫 끼니는 차가운 바게트와 잼, 그리고 요구르트였다.

뼈 마디마디가 시린 이방인의 산모에게 그 식단은 허기보다 서러움을 먼저 채웠다.

친정엄마가 밤새 끓인 뜨끈한 미역국이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고 조금씩 일상이 시작될 무렵이었지만, 병원은 여전히 보호자 외 가족 방문을 금지했다. 그때,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이 왔다. 잠시 후 남편이 병실로 들고 들어온 것은 시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묵직한 보자기 꾸러미였다. 면회가 안 되니 주차장에서 남편에게 조용히 도시락만 건네고 집으로 되돌아가신 것이다.

비록 미역국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갓 지은 밥과 정갈한 반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병원의 허술한 식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온기였다.

그렇게 사흘간의 짧은 입원을 마치고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이었다면 친정엄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거나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추슬렀을 시기.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텅 빈 거실에는 앞으로 내가 지켜내야 할 작은 생명과 남편,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서 있는 나, 이렇게 셋뿐이었다.

산후조리라는 개념조차 희미한 이 낯선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울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 나의 처절한 홀로서기를 가엽게 여기신 시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꼬박 100일 동안 우리 집 현관 앞으로 도시락을 날라주셨다.


무너지지 않는 시부모님의 다짐


프랑스로 건너오기 1년 전.

딸을 향한 걱정으로 굳게 닫힌 부모님의 마음. 그 문을 두드리기 위해 시부모님은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만 리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오셨다

'떠나보내는 마음'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충돌하는 자리. 두 부모의 시선이 얽혔다.

각자의 입장은 달랐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이라는 공통의 언어가 그날의 무거운 침묵을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침묵 사이를 뚫고 시부모님은 일본 특유의 정중함으로 내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사람의 다짐을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저희가 뒤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테니 걱정 마세요.

평소 철저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신조로 삼던 분이, 사돈댁에 했던 그 무거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신의 루틴을 기꺼이 포기하고 100일 동안 도시락을 날라주신 것이리라.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 나에게 쿨하게 손주의 도시락을 요청하시는 모습 뒤에는,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도시락을 나르던 한 어른의 깊은 사랑과 신뢰가 서려 있다는 것을.

그 묵직한 진심에 서운함 대신 고마움을 담아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계란말이를 마저 도시락통에 담는다.

"아들~ 마미, 파피와 즐거운 시간 보내~"

아들 손에 들린 도시락가방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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